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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께 조문하신 분들께) 정치,시사




             부제 : 고 김영삼 전 대통령께 조문해주신 모든 분들게 전해올립니다


 우선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까지 직접 찾아주신 3만7천여 조문객, 그리고 분향소를 찾아주신 약 20만여 조문객 도합 약 23만에 이르는 모든 조문객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머리숙여 전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조문오신 모든 분들을 일일이 찾아 뵙고 짧은 감사의 인사라도 전해올리고 싶은 심정이나 현실적으로야 그러지 못하니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 글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와 분향소를 찾아주신 23만 조문객의 사돈의 팔촌이나 친구의 친구를 통해서라도 이 감사인사글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올립니다.


 ‘왜 그토록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에 신경을 쓰느냐 ?’고 물으신다면 일단 그 궁금증에 간단히 이렇게 한줄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는 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제 정치성향과 가장 닮아있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런다.’고요. 하지만 그래서 솔직히 불안했습니다. 무엇보다 IMF 실정으로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란 점 때문에 말년에 국민 대다수에게 그 이미지가 추락해버린 분이란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솔직히 내심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엔 공연히 요란하게 국장이나 국민장 같은것을 치르지 말고 조용히 가족장이나 사회장 정도로 조촐하게 치르는게 어떻겠나 생각했었고 ‘YS 사사모’ 같은데도 그런 건의의 글을 올린적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굴절될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현대정치사.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장기집권으로 가다 4.19로 무너졌고 이어 집권한 민주당은 신,구파 싸움 끝에 10개월만에 5.16으로 무너지고 그 뒤를 이은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명색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북한공산주의의 침략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과 경제성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잠시 유보’시켰던 나라. 그래서 야당은 자연스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노선을 걸을수밖에 없었던 그것이 우리의 현대사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80년 5.18을 거치면서 지역감정은 더 심화되었고 대학가엔 운동권 주사파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서 더 심하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 그 한쪽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제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노선을 닮았다는 이유는 YS는 남한의 군사독재에 반대하면서도 ‘북한의 민주화’역시 아울러 주장했던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 87년 대선때 TV 유세에서 색깔론 공세에 시달리던 DJ와 달리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도 민주화를 요구하겠다’고 말씀하시던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탈북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북한 민주화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하시는등 적어도 ‘북한 민주화’에 대한 의지만큼은 확실히 보여주셨던 분입니다. - 실제 탈북자중 몇분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북한인권단체를 이끌던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본 소회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것을 보면 ‘북한도 민주화 되어야 한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의지는 단순한 립서비스 수준은 분명 아니었던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한줄의 필설로는 다 말하기 힘든 작금의 정치과잉,이념과잉 현상. 하지만 여기서 안타까운것은 이 와중에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정치세력이 있다는 점 입니다. 그것은 남한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으면서도 ‘북한 민주화’도 함께 주장하는 세력입니다. 사실 지금와 생각하보면 한 80년대 중반 이후로 태어난 세대라면 모를까 90년대 pc통신이나 2천년대 초,중반 인터넷에서 만난 특히 60-70년대생 통신인,네티즌중엔 ‘난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도 싫지만 운동권 주사파도 싫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체감적으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작 그 세력이 ‘정치세력화’ 하는것은 쉽지가 않더군요.


 이른바 ‘뉴라이트’를 표방했던 전향한 운동권 출신들의 지향점도 결국 그랬습니다. ‘80년대에 전두환 독재에 맞서 싸웠던것처럼 지금부터는 북한 김일성,김정일 독재를 위해 싸우는것’이라고요. 사실 YS와 뉴라이트(전향한 운동권 출신)에 직접적인 정치적 연결고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결과적으로 정치적 공통분모가 형성되어서인지 뉴라이트에 몸담은 운동권 출신들은 자연스레 ‘YS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류가 만들어 지더군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엔 뉴라이트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역사관으로 채택하면서 그쪽과도 결별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저와 정치적 노선과 성향이 가장 닮은 정치인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는 뜻밖의 그림이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YS의 경우엔 재임시절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고(바로 이 부분이 조갑제씨가 김영삼을 가장 극렬 비난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강경하게 나오는등 적어도 ‘반일 민족주의’ 노선만큼은 확실했습니다. 헌데 그러고보니 (1) 반공 민주주의자면서 (2) 남한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던것처럼 북한 민주화도 주장하고 (3) 게다가 반일 민족주의 성향까지 있는 저는 결과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노선과 성향이 가장 닮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림이 그려지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그 현실이 너무 싫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IMF로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란 점 때문에 대중적 이미지가 가장 안 좋은 전직 대통령인데 하필이면...이런 비유는 좀 적절치 못하지만 그 당시 제 심정은 자신의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을 알고는 그것을 부정하려 발광하는 드라마속 여주인공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저 스스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그런면에서 재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져갔습니다. 그러고보면 남한에서 민주화운동을 한것처럼 북한 민주화를 주장하는것도 너무나 상식적인 일일텐데 그리고 돌이켜보면 인터넷에서 만난 6,70년대생중 ‘군사독재도 친북좌파가 다 싫다’고 한 사람들이 가장 체감적으로 많았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작 그 노선으로는 정치세력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점이 이해가 잘 안 가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거슬러올라가면 87-88년 당시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보이던 김영삼은 보수 안정층에서 지지를 많이 받았고 김대중은 대체로 보다 과격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더 열성적으로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남북분단과 냉전의 현실에서는 어차피 집권세력의 지향점이 반공일수밖에 없는판에 보수 안정노선으로 야당의 길을 가는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던것일까요. 그점을 생각해보면 YS가 ‘보수대통합’이란 기치아래 모였던 3당합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는 논리를 내세웠던점 나름 그 고뇌를 이해할수 있을것 같기도 했습니다.


 한편 시간이 흐르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그 추도하는 사회 분위기를 연달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의 경우는 그렇다치고 언젠가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나게 될텐데 그때는 어쩌나. 아무래도 IMF 경제실정과 퇴임후의 이런저런 행보 때문에 대중적 이미지가 너무나 추락한 대통령인데, 그런분이 세상을 떠났을시 사회분위기...솔직히 상상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내심 ‘YS의 경우엔 국장이니 국민장이니 하며 세상 시끄럽게 하는것보다는 가족장이나 사회장 정도로 조촐히 치르는게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을 ‘YS 사사모’ 같은데 올리기도 했던것입니다.


 일요일 이른아침. 드디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고 첫 느낌은 ? 솔직히 아찔했습니다. ‘아...드디어 올것이 왔구나...’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5일간의 추도기간을 보내면서 두 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첫 번째 눈물흘렸던 이유는 어쨌든 나와 가장 정치성향이 비슷했던 전직 대통령이 이제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유에 그만 가슴이 짠해져서 눈물흘렸고, 두 번째는 뜻밖에도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추도 분위기 그리고 빈소와 분향소에 이어지는 추모발길. 물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시 사회 분위기와는 비교될수 없었지만 그래도 여하튼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추모하고 애도하는듯한 사회분위기를 보며 그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두 번째 눈물을 아니 흘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약 23만명 정도로 집계된 빈소와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 모두에게 정말 일일이 찾아 뵙고 감사의 큰절과 인사라도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을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것은 불가능하니까 이렇게 인터넷에 공개 인사글이라도 띄우는 것입니다. 정말 23만명 추모객 개개인의 사돈의 팔촌이나 친구의 친구를 통해서라도 이 글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와같이 감사의 인사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 고 김영삼 선생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하고 조의를 표해오신 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올립니다.


 이제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시대는 정말 두 번다시 돌아올수 없는 역사속의 과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린 두 번다시 살아있는 YS나 DJ의 모습을 만나볼수가 없습니다. 민주화...사실 요즘은 심지어 일개 걸그룹 멤버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자기네 걸그룹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민주화(획일화’) 시키지 않는다‘는 동담을 입에 담을 정도로 ‘민주화’의 가치가 폄하되고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세상. 확실히 그만큼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민주화’의 가치가 그렇게까지 가슴속에 별로 소중하게 와닿지 않는듯 합니다.


 과연 고인들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화’된 세상은 어떤것일까요 ?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의 가치는 어떤것일까요 ? 솔직히 어리석은 필부(匹夫)는 후세들에게 답을 해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민주화의 개념이 추상적인 까닭일까요, 아니면 진정으로 완성된 ‘민주화’된 세상은 그만큼 만나기 힘든 이유에서일까요.


 고인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이 ‘화합과 통합’이라 했던가요 ? 차남 김현철씨의 전언에 의하면 말씀도 더 이상 하시지 못할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신 상태에서 필담으로 남기신것이라니 어쩌면 그게 자신이 이 세상에 남길수 있는 마지막 흔적이 될수도 있다는것을 예감하고 그와같이 쓰신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화합과 통합’도 그리고 ‘완성된 민주화’도 말이 쉽지 현실로 이루기는 쉽지 않은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 나머지들은 후세인 우리들이 마저 이루어가야할 숙제인듯 합니다.


 이제 영결식까지 모두 마치고 고인을 완전히 보내드린 마당에 필부가 이와같이 지껄여대는 이유는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전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합니다. 와주신 그 마음만으로도 23만 추도객의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제 그렇게 떠나간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완전히 저물어버린 양김시대. 어느덧 쌀쌀해진 겨울날씨속에 다시한번 고인이 평안히 잠드시길 빌며, 추모해주신 모든분들깨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말씀 전해올립니다.


 ‘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 /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리라

   이 봄도 산허리에 초록빛 물들었네 / 세상 번뇌 시름잊고 청산에 살리라

   길고긴 세월동안 온갖세상 변하였어도 /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서 살리라 ’

            -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때 불려진 추도곡 ‘청산에 살리라’

              (김연준 작사,곡)


 www.youtube.com/watch?v=-pdrtRguJ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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