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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전혜빈 (6)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3. 오월의 신부





 혜빈의 작품에 대한 합평회 참석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은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물론 결말에도 대체로 공감도 못하고 이해도 안 간다는것이 참석자들의 반응이었던것이다. 따라서 혜빈의 심기는 불편해질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색한 기류가 형성이 되어버렸다. 참석자들중 어느 누구도 쉽게 무슨 말을 더 꺼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진행을 맡은 정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저기...제가 볼때는요 언니... ”

 정현이 혜빈을 바라보며 그녀를 ‘언니’라 불렀다. 사실 정현도 혜빈과 지금까지 그리 친분이 있거나 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이렇게 합평회 자리까지 갖게 되었고 진행자 입장에서 분위기를 이끌어가야하는 책무도 있어서 일단 그녀에게 친근함을 표하고 싶어 ‘언니’라 부른듯 하다. 하지만 지금 그 한마디로 자신의 작품이 혹평을 받은 혜빈의 심기가 바로 풀어지지는 않을것 같고 정현은 일단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어간다.

 “ 제가 볼때는...혜빈 언니 작품이...일단...내용은 있어요. ”

 ‘내용은 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용은 있다지만 그게 대체 어쨌다는 것인가. 정현은 혜빈의 작품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일단 그에대한 평가는 유보한채 그와같은 표현을 한 것이다. 다른 참석자들의 반응이 대체로 혜빈의 작품을 혹평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던것을 감안한다면 그런대로 혜빈의 마음을 풀어준답시고 나온 표현이 겨우 그것인것이다. ‘내용은 있다’ 하지만 내용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그런 말은 아니지 않는가. 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는 가운데 이번엔 승우가 입을 열었다.

 “ 저기...제가 이야기를 좀 해볼께요. ”

 승우도 혜빈의 마음이 너무 상해버린것은 아닌가 염려는 하는 상태이면서도, 그래도 어떤 충고나 조언을 하고픈 마음은 있는 상태에서 혜빈의 마음도 조금은 달래주려면 어떤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승우가 물 한모금을 마셔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어간다.

 “ 제 말을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진 마시고요...일단 제 이야기를 혜빈씨가 차분하

  게 들어주셨으면 해요. 이런 충고를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으시면 혜빈씨 작품

  에 발전이 있을수가 없어요. ”

 승우의 말을 어찌 받아들이고 있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혜빈은 별다른 대꾸가 없고 진지한 눈빛의 승우의 시선이 혜빈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그 강렬한 눈빛에 공연히 위축이라도 되었음인지 혜빈은 그의 시선을 살짝 피하고 그런 가운데 승우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일단 제가 볼땐 이 대본이...물론 혜빈씨 참 정성들여 쓰신것은 인정해요 그런

  데 전체적인 플롯구조나 스토리라인이 너무 짜임새가 없어요. 한마디로 전체적인

  기승전결 스토리를...혜빈씨가 그런걸 좀 더 잘 생각하셔서 드라마를 쓰셨으면

  해요. ”

 “ ...... ”

 “ 그...교육원 선생님들도 늘 하시는 말씀이지만 드라마든 소설이든 중요한건 그

  스토리 구조에요. 앞뒤 기승전결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 이야기를

  제대로 납득할수 있는 독자나 시청자는 아무도 없어요. 한번 혜빈씨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이걸 혜빈씨 자신이 직접 쓴 그렇게 애착이 가는 대본이라 생각

  하시지 말고 좀 더 침착하게 이 대본을 다시한번 읽어봐주시라구요. ”

 혜빈의 묘하게 떨리는 입술과 눈자위는 인지하지 못한채 승우는 그렇게 혜빈에게 충고의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혜빈은 공연히 물컵이 있는쪽에 자기 손을 가져가보았지만 원래 마시거나 할 생각은 없었던것인지 무의미한 손짓만 조금 까닥거리다가 손은 도로 내려놓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승우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드라마나 소설이 절대...방에서 혼자 읽고마는 일기장이 아니잖아요. 독자나 시

  청자가 이해하고 감동할수 있는 그런 스토리어야해요. 그런데 지금 혜빈씨 작품

  은...그런 독자나 시청자들을 설득시킬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요. 제가

  볼땐 결국 그게 가장 큰 문제인것 같아요. ”

 “ 이거 저희 외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란 말이에요. ”

 혜빈은 참석자들 앞에서 이미 몇 번도 더 한 그 항변의 말을 다시금 입에 담는다. 그러는 혜빈은 진짜 대본을 쓰면서 극중 주인공들에게 몰입이라도 했던것인지 - 정작 다른 참석자들은 아무도 이해 못한다는 그런 스토리의 드라마를 - 진짜 자신이 무슨 드라마속 여주인공처럼 억울한 오해나 누명이라도 받는것처럼 표정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승우는 일단 그런 혜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혀보려 하며 말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혜빈이 승우의 말에 설득이 되거나 할것 같지는 않다. 여하튼 승우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 네, 알아요. 혜빈씨가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소중한 이야기고 사연이라는것을...

  하지만 사연은 정말 소중한 사연인데...그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시청자를 설득시

  켜야한다는 그 준비가 전혀... ”

 “ 할아버지가 아니라 외할아버지라구욧 !!! ”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기까지 한 혜빈. 할아버지든 외할아버지든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인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혜빈은 여하튼 그와같은 말을 강조라도 하듯 큰 소리로 입에 담은것이다. 순간 그 혜빈의 버럭소리에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움찔할 지경이고, 혜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음성으로 그리고 당장 울음이라도 터트릴것만 같은 그런 말투로 다시금 항변의 말을 입에 담는다.

 “ 정말 다들 너무하세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사연인지 아세요 ? 어릴때 외할아버

  지로부터 들었던...참 재미있고...흥미로운 그런 사연이라서...그래서 드라마로 만들

  어본건데...그래서 언젠가는 꼭 한번 작품으로 써보고 싶어서 쓴건데... ”

 “ 누...누나 왜 이래요 ? 진정하세요 ! ”

 혜빈이 평정심을 잃은채 그와같은 모습을 계속 보이자 옆자리에 있던 그리고 오늘 합평회를 처음 제안하기도 했던 준식이 그런 혜빈을 만류해보려한다. 정현도 일단 혜빈을 좀 진정시키려 하지만 지금 혜빈은 그런 준식이나 정현의 말 한두마디에 쉽게 진정이 될것같은 상태가 아니다. 정말 너무나 억울하고 기가막힌 그 무엇이라도 있는지 부들부들 치까지 떨고있는 혜빈. 그러다 결국 울먹이며 자리를 뛰쳐나가고 만다.

 “ 아...아니 저 혜빈씨... ”

 “ 누나...누나...어디 가세요 ? ”

 당황한 준식과 정현등이 그런 혜빈의 뒤를 쫒아나가보지만 혜빈은 이미 커피숍 밖까지 나가버린 상태고 두 사람이 거기까지 달려가 혜빈을 다시금 만류하며 진정시켜보려 한다. 하지만 혜빈은 그런 두 사람의 손길마저 뿌리치고 그리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흐느끼며 울부짖는다.

 “ 정말 다들 너무해. 다들 너무하다고 !!! 이게 도대체 뭐야 !!! 이게 도대체 뭐하

  자는거냐구 !!! 엉엉엉엉~~~!!! ”

 “ 아...아니 저 누나... ”

 따지고보면 오늘 합평회자리를 제일 먼저 제안했던게 준식이 아니던가. 다만 자신이 평소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라 자신보다는 그래도 사람들 끌어모으는 능력이 있는 다른 동료수강생 박정현에게 부탁까지 해서. 하지만 그렇게 어렵사리 만든 혜빈의 작품 합평회 자리가 이 지경이 되어버리자 준식의 입장에선 혜빈에게 미안해 어쩔줄 모르고 있고, 일단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무슨말이라도 해야할것 같은데 워낙 말주변이 없는 성격이라 그런 이야기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다른 합평회 참석자들도 모두 그 자리까지 나와버렸는데 혜빈은 준식이나 정현등이 만류하는 손길을 거듭 뿌리치고는 혼자 엉엉울면서 저만치 걸어가버린다. 오늘의 합평회 자리가 무척이나 절망스럽고 수치스러웠던것 같은 그런 얼굴이다.





 합평회는 사실상 파장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전봉림과 김종아의 경우엔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합평회가 더 진행되진 못할거라 판단을 했는지 다른 약속이 있다며 그쯤에서 자리를 떠나버렸고, 승우의 경우엔 그래도 아쉬움이 좀 남는지 한 몇분정도 어정쩡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 역시 더 이상 여기 머무는게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을 했는지 다른 핑계를 대며 역시 자리를 떠버렸다. 한편 그때 준식은 저만치 울며 가고있는 혜빈을 뒤쫒고 있었다.

 “ 누나...누나 잠깐만요 !!! ”

 “ 놔 !!! 너하곤 말도 하기 싫어. ”

 사실 오늘의 합평회를 제안했던게 바로 준식 아닌가. 연수반 담임인 김수현 선생에게 뒤늦게 제출한 혜빈의 대본을 수현이 보지도 않고 ‘X같은 것’이라며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고, 그렇게 수현으로부터 당한 수모로 인해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럽게 울며불며 난리를 쳤던 혜빈. 그 모습을 그날 목격했던 준식이 그런 혜빈을 안타깝게 여겨 일주일후인 지난 수요일 강의가 끝나고 혜빈에게 제안을 해 마련된 합평회 자리다. 하지만 그 합평회에서 오히려 작품에 대한 혹평만 잔뜩 듣고만 혜빈이라 그 상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따라서 그 원망은 자연스레 이런 자리를 만든 준식에게 모조리 쏟아질수밖에 없다. 준식으로서도 딴에는 혜빈이 걱정되어 호의를 베풀고 싶어 만든 자린데, 그런 자리가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려 그 또한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울며불며 준식과는 진짜 더 이상 상대조차 하기 싫은듯 뿌리치고 가려는 혜빈을 준식은 뭔가 안타까운듯 거듭 만류하며 뭔가 설득을 좀 해보려했다. 같이 할 이야기가 좀 있으니 잠깐 이야기나 좀 나누자며 혜빈을 거듭 설득한 준식. 어차피 합평회는 이미 파장이 되어버렸고 다른 참석자들은 다 떠난 상태니 그걸 계속 진행하는것은 불가능하고 준식은 혜빈과 별개로 근처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 그녀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려한다. 아직 시간이 저녁을 먹거나 하기는 조금 어정쩡한 시간이라 인근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콜라 세트메뉴를 하나 시켜 그것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혜빈도 그때쯤엔 어느정도 마음이 진정이 되었는지 아까보다는 다소 차분해진 상태다. 준식이 그런 혜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 누나...저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만 여쭤볼께요. ”

 “ 뭐가 그렇게 궁금한건데 ? ”

 그나마 마음은 좀 안정이 되긴 했지만 준식을 원망하는 마음이 완전히 가신것은 아니라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듯한 말투로 혜빈이 그와같이 되묻고 준식은 콜라 한모금을 음미한뒤 그런 혜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어차피 빙빙 말 돌리는건 시간낭비일것 같으니...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려

  는건데...누난 왜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을 한거에요 ? ”

 “ 뭐라구 ? ”

 그러고보니 그 사이 혜빈은 준식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며칠전 준식이 혜빈에게 합평회 제안을 하며 말을 건넸을때 준식이 그녀에게 ‘누나’라고 먼저 부르긴 했지만, 혜빈은 별로 친분도 없는 준식에게 바로 말을 놓는것은 어색해서인지 오늘 한 조금전까지만 해도 준식에겐 대체로 존대를 하는편이었다. 헌데 준식이 그와같이 혜빈을 대하자 다소 편해진것인지, 어쩌면 합평회에서 그 혹평을 당하고 잔뜩이나 헝클어진 감정이라 준식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예의를 차려 대하고 싶은 감정은 아니었으리라. 그런걸 염두에 둔다면 지금 혜빈의 반말투는 준식이 편해져서라기 보다는 그에대한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말투로 보는것이 정확할것이다.

 “ 제 말은요...누나에게 교육원에 등록한 어떤 절실한 동기같은게 있느냔 말이지

  요. 가령 뭐...‘난 정말 이 길이 아니면 안된다’던가...또는 ‘난 꼭 작가가 되어야

  할 그럴만한 곡절이 있다’ 라던가...그런 어떤 절실하고 절박한 이유...그런게 있

  는건지 묻고싶어요. ”

 준식의 말뜻이 바로 이해가 되지 않은것일까. 혜빈은 자신의 콜라잔만 공연히 빨대로 휘휘젓기만 할뿐 별다른 대꾸는 없었다. 그런 혜빈을 바라보는 준식은 괜시리 안타까운 심정까지 들 지경인데, 여하튼 대체로 평정심을 찾으려하며 차분한 말투로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건네보려한다. 어쨌든 자신이 주선한 합평회로 인해 오히려 더 마음이 상해버린 혜빈이니 그런 그녀와 대화를 이어간다는것은 그리 쉬운일은 아닐것이다. 그런 혜빈을 바라보며 준식은 어찌보면 그녀를 좀 가르치려는듯한 말투로 뭔가 설명이라도 해주듯 말을 이어간다.

 “ 사실 전...교육원 등록하기 전에도 다른 대학에서 하는 문예창작 강좌도 좀 들어

  보고 그랬었지만...이런 문예창작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 태도가 대개는 그렇

  더라구요. ”

 “ ...... ”

 “ 적어도 제가 볼때는 수강생들의 한 절반 가까이는...어떤 절실함이나 절박함 같

  은게 보이지가 않았어요. 그러니까...문창과 강의든 방송작가 교육원이든...그냥 밥

  먹고 할짓없으니까 소일거리로 심심풀이 취미생활 삼아 오는 사람들인건지...실제

  가령 한 6개월 과정 강의라 치면 그 과정 도중에 한 절반 가까이는 공부 계속하

  는것을 포기해 버리잖아요. ”

 준식으로선 나름대로 그동안 문창과라던가 교육원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소회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는 셈인데, 그게 지금 헤빈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것이며 또 그녀와 무슨 상관이 있는 이야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준식은 그 나름대로 어떤 작심한것이라도 있는지 그의 목에 차츰 더 힘이 들어가고 있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 솔직히 그런 사람들 보면서...참 이해가 안 갔어요. 집에 돈이 남아도는지 원...

  어쨌든 몇십만원 수강료...분명 부담 안가는 적은 액수는 분명 아닌데...그 돈 내

  고 건성건성 다니며 시간때울 그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 뭐 중간에 그만두는 사

  람들 대충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면...핑계는 가지각색이에요...뭐 다른 알바를 새

  로 시작하게 되었다...집에 무슨 우환이 생겼다...몸이 불편하다...분위기가 적응이

  안된다...허허허...진짜 공부하기 싫은 핑계는 대기 시작하면 한 백가지는 넘을것

  같다는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어쨌든...핑계야 뭐 백명이면 백명 다 제각기 그럴

  싸하게 자기 입장과 처지에 맞춰 댈수야 있겠죠. 하지만... ”

 “ ...... ”

 “ 제가 안타까워한건 그런 수강생들일수록 어떤 절실함이나 절박함 같은게 보이

  지가 않았다는거죠. 절실하긴 커녕...그냥 좀 밥먹고 할 일 없으니까 소일거리삼

  아 이런 문창과 강의나 교육원 같은데 강의들으러 오는것 아닌가 하는 그런... ”

 김수현도 개강때 그런 경고를 하긴 했었다. 여긴 ‘노인대학’이나 ‘주부대학’ 아니라고. 나이들어 할 일없고 심심한 사람들 소일거리 삼으라고 받아주는곳 아니고 스파르타식으로 철저히 교육시킨다고. 하지만 어쨌든 전혜빈도 기초반부터 시작 그 뒤를 잇는 연수반까지 지난 1년 분명 성실하게 강의를 들은편에 속한 사람은 아니다. 지각도 잦았고 결석도 잦았다. 게다가 한번은 - 비록 딸이 그런데 다니는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의 짖궂은 장난 때문이긴 하지만 - 잔뜩 술에 취해 지각으로 강의실에 들어선적도 있고. 이쯤되면 정말 날라리도 이런 날라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 아닌가. 물론 혜빈도 고등학교 시절엔 문예반 활동도 했고 대학때는 학보사 기자로까지 활동했을 정도면 대체로 학창시절엔 공부건 써클활동이건 대체로 충실하게 임한 그런 모범생과가 분명할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원에서 지난 1년 다른 수강생들이나 김수현 선생 눈엔 전형적인 젊은 날라리 아가씨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것이다. 심지어 벌건 대낮에 술에 취해서까지 불쑥 강의실에 들어올 정도면 더 볼것도 없는 그런 대책없는 아가씨가 아닌가. 아닌말로 정말 집에 돈이 남아돌아 쓸돈이 없어서 이런데다가 투자(?)하는 그런 아가씨인 것인지. 적어도 다른 수강생들이나 선생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 딱 안성마춤일수밖에 없었던 혜빈의 태도. 물론 그런 혜빈이 준식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그러면서도 딴에는 김수현 선생에게 뒤늦게 제출한 습작품이 그 자리에서 찢겨져나가는 수모를 당하고 그 자리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혜빈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직접 나서 이런 합평회자리까지 마련한것이 아닌가. 그런 준식의 눈에 과연 혜빈이 어찌 보였던것인지 그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고 있는것이다.

 “ 전 누나가 그렇다고해서...정말 뭐...그렇게 한가하고 시간이 남아돌아 그래서

  이런데 등록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어쨌든...보통 그런 사람인

  경우 대충 기초반 6개월만 듣다 포기하고 마는데...어쨌든 누난 그 다음학기인

  연수반도 등록했고...비록 늦었지만 습작품도 제출했잖아요. 그렇다면 최소한...

  누나에게도 창작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어떤 절실함이나...아니 꼭 그런 절실함

  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동기가 있진 않았을까 해서 그래서 물어보는거에요. 누

  나, 다시한번 물어볼테니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요. 대체 교육원엔 왜 등록하게

  된 거에요 ? ”

 혜빈은 바로 대답이 없었다. 사실 다른건 몰라도 한가하고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 쓸데없이 교육원에 등록한것 아니냐는 그런식의 준식의 말에는 혜빈도 발끈해서 항변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몇십만원 등록금 내고 그런 교육원을 다닌다는것 어느정도 결심한 마음 아니면 쉽게 하기 어려운 선택일텐데, 그렇게 등록한 교육원을 그야말로 밥먹고 할짓없어 다니겠는가. 실제 문예창작과 관련된 강의는 3개월 과정이든 6개월 과정이든 보통 한 절반 정도는 강의 도중에 더 이상 수강하는것을 포기하는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그 사유야 일일이 따져 물어보면 이유야 백인백색으로 나올것 같긴 하지만, 굳이 큰 틀에서 분석을 해보자면 준식의 말처럼 어떤 절실함이나 절박한 열정 같은게 부족해서 중도에 그만두는것 같다고 보는게 정답에 가까울것 같다. 어쨌든 막연히 문예창작쪽에 꿈이나 열정 같은것은 있었는데 막상 강의를 듣고 시간이 가다보니 차츰 자신도 없어지고 이런 강의를 계속 듣는것에 회의를 느낀다고 봐야하는 것일까. 혜빈은 말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정히 준식이 작정하고 혜빈의 속내를 꼬치꼬치 캐묻는다면 어째 비슷한 취지의 답이 나올것 같기도 하다. 실제 혜빈이 그동안 강의에 결석이나 지각이 잦았던것은 딸이 이런 강의를 듣는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은근한 압력이나 방해도 있었고 자신을 결혼상대로 생각하고 다가오는 상기와의 관계도 여러 가지로 교육원 강의를 계속 듣는것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긴 했지만 따지고보면 결국 중요한것은 혜빈 개인의 의지다. 만약 정말 혜빈이 방송작가일을 해보고 싶다는쪽에 ‘정말 나는 이 길 아니면 안된다’는 강렬한 열망과 의지가 있었다면 아버지나 상기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방해요인이 있었더라도 보다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수업에 임하려고 그 결의를 더더욱 다졌을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놓고보면 혜빈이 지금까지 교육원 강의에 결석과 지각이 잦았던것은 개인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그것 이외의 다른것은 솔직히 핑계가 될수밖에 없다. 아닌말로 누가 억지로 다니라고 강요한것도 아니고, 자신이 가고싶다고 우겨서 다니게 된 곳을 겨우(!) 그런 이유로 자주 빠진다는게 말이 되는가. 혜빈에게 절박한 의지나 열정이 부족해 보인다는 준식의 지적, 거기에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인지 혜빈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있었다. 말없이 햄버거 두어조각을 베어물고난 준식은 그러다 콜라로 목을 축이고는 혜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누나...근데 아까요. ”

 “ ??? ”

 “ 그 드라마 대본...어릴때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드라마 대

  본이었다구요 ? ”

 아까 합평회때 자신의 작품이 혹평을 받고 결말조차도 오해의 의견이 계속 올라오자 억울하다는듯 항변하며 혜빈이 했던말. 따라서 준식은 당연히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것을 상기해내며 그쪽으로 대화를 다시 이어나가보려 하는데 혜빈이 이번에 다시 새삼 뭔가 억울한듯 강조하는 투로 한마디 한다.

 “ 할아버지가 아니라 외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라구요 !!! ”

 할아버지든 외할아버지든 어쨌든 어릴적 집안 어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것만은 분명한 사실인것 같고, 근데 그와같은 구분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의미인것인지 혜빈은 그 부분을 거듭 강조하고 그리고나서 설명을 조금 더 덧붙여준다. 어찌보면 아까 합평회때 마저 다 하지 못한 이야기기도 하다.

 “ 어릴때...시골 외갓집에 놀러가면...우리집은...아버지 고향은 서울이지만...외가가

  지방이거든...충남 OO군...어쨌든 그래서 어릴땐 엄마랑 같이 자주 시골 외갓집에

  내려가보곤 했었어. 그래서... ”

 “ ...... ”

 “ 그때 외할아버지로부터 몇 번 들었던 이야기야. 그러니까 우리집안 이야긴 아

  니구 평상시 할아버지랑 절친하게 지내시던 이웃 주민분과 관련된 이야긴데...

  무척 인상이 깊은 이야기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어. ”

 그러니까 출신도 불분명한 머슴살이 하는 젊은이를 자기 외동딸과 결혼을 시켰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결혼한 두 사람이건만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 혜빈이 쓴 대본에선 누가봐도 아이 엄마가 아이를 죽인걸로밖에 오해할수 없게 설정이 되어 있었지만 혜빈은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거듭 여러차례 항변했다. ‘(대본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여자가 아이를 죽인게 아니에요 !!!’ 라고. 글쎄, 어쨌든 실제 있었던 사건이 모티브가 되어 드라마를 쓴 것이라면 극중 이야기야 어찌되었든 실제 사건의 진상이 대체 어찌된것인지는 지금 이 자리의 준식이나 혜빈이 가려낼 방법은 없을것이고. - 어쨌든 그런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드라마 대본으로 써서 습작품으로 제출해보려 했던게 혜빈의 의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김수현 선생은 그 대본을 읽어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고 합평회의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대본 내용이 이해가 안간다며 혹평을 했다. 어쨌거나 혜빈으로선 어린시절 외할아버지로부터 우연히 들은 참 인상깊었던 이야기를 지금껏 소중히 가슴속에 간직해오고 있다가 드라마 대본으로 구성을 해 본 것인데, 그것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으니 그녀 입장에선 나름 억울할수도 있을것이다. 준식이 그런 혜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누나, 그런데요... ”

 “ ...... ”

 “ 저도 뭐 작가 지망생이 되면서...나름 소설작법이나 드라마작법 이런것과 관련

  된 책도 꽤 사읽어보고 그랬던 사람이긴 하지만... ”

 그리고는 잠시 침을 꿀꺽 삼키는 준식.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 물론 작품의 착상 동기가 되는...그와같은 동기 부여가 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것은 개인 경험이 바탕이 되어 착상동기가 될수도 있고, 주위 사람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 주변에서 간접적으로 해본 경험, 또는 어떤 사건이나 사고를

  접해보고 얻게되는 발상, 그 외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이슈

  가 발상의 동기부여가 될수도 있고...그런식으로 따지면 사실상 이 세상에 존재하

  는 거의 모든 것이 소설이나 드라마를 쓰는데 동기부여가 될수있는 소재이긴 해

  요. 그런데 문제는... ”

 “ ...... ”

 “ 소설이나 드라마는 수필이나 수기가 아니란 점이에요. 사실 수필이나 수기는

  결국 자기 체험을 있는 그대로 쓰는 이야기기 때문에 설사 납득 안가는 사건이

  거기 나온다 하더라도 충분히 양해가 되어요. 실제 있었던 일을 글쓴이의 시각

  에서 그냥 적어내려가는것에 불과하니 제3자가 봤을때 이해가 안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가령 예를들어 어느날 갑자기 출근하는길에 남편이 죽었다. 실

  제든 가상이든 분명 황당한 이야기죠. 그러나 실화라면 어쩌겠어요. 실제라면

  그런 황당한 사건일지언정 실제 일어난 사건이니만큼 그 실화 자체를 인정하고

  넘어가게 되지만... ”

 “ ...... ”

 “ 소설이나 드라만 달라요. 픽션이기 때문에 그만큼 개연성있는 스토리가 되어

  야 한다는거에요. 제가 봤을때 누나가 지적받은 부분은 결국 그런 문제에요.

  누나가 말한 어린시절 외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그 이야기...그게 만약 누나

  가 수필이나 수기로 썼다면...그냥 어떤 그 시절...아직은 인간들 사이의 정이 훈

  훈했던 그 시절...하지만 또 한편으론 아직 신분제의 잔재가 남아있던 그 시절

  어떤 가슴아픈 이야기로 받아들일수도 있어요. 대체 정확한 진상이 어찌된것인

  지 알지 못해도...그런 실화 자체가 있었던것 만으로도 독자들은 있는 그대로 받

  아들이게 된다는거죠. ”

 근데 지금 혜빈은 살짝 자존심이 상해있다. 어찌보면 준식으로부터 일종의 창작이론 비슷한 것을 듣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준식이나 혜빈이나 둘 다 수강생인 입장이고 게다가 준식의 나이가 혜빈보다도 몇 살 어린점을 감안한다면 그녀로선 그런 준식에게서 한수 가르침을 받는다는것 분명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이 윤준식이란 친구가 뭐라고 떠드는지는 마저 들어나보자는 생각인것일까. 아직 별다른 이의나 반론은 제기하지 않은채 묵묵히 준식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그의 말이 계속된다.

 “ 하지만 소설이나 드라마는 픽션이기 때문에...그 사건이 일어날수밖에 없는 어

  떤 개연성...필연의 곡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누나 작품엔

  그런게 없었어요. 무슨 밑도끝도 없이...40년대 후반...그 아직 신분제 잔재가 남

  아있던 시절에...신분차가 엄연히 있는 머슴과 부잣집 딸이 결혼하고...거기다 밑

  도끝도없이...결혼후 아이를 낳았는데...갑자기 아이가 죽고...이렇게되니...이걸 누

  가 이해를 하겠어요. ”

 “ ...... ”

 “ 제가 봤을땐 누나 진짜 문제는...상상력이 부족한것...그게 문제인것 같아요. ”

 “ 상상력이...부족하다구 ? ”

 준식의 말을 어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혜빈이 준식의 그와같은 말을 한번 곱씹어보고 준식이 그런 혜빈을 바라보며 설명을 마저 덧붙여준다. 그야말로 친절하게 그 무슨 창작이론이라도 가르쳐주는 문창과 교수같은 진지한 태도다.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보면 윤준식이 무슨 선생님쯤 되는이로 오해할지도 모를것 같은 상황. 어쨌든 준식의 말은 계속되고 있다.

 “ 저도 이렇게 작가지망생으로 습작품도 써보고 해봐서 알지만...필력과 상상력

  은 확실히 다른것 같아요. 제가볼땐 필력만을 갖췄다면 그 사람은 수필이나 수

  기 같은것을 쓰는데 딱 적격인 사람이죠. 하지만 소설이나 드라마는... ”

 “ ...... ”

 “ 상상력을 어느정도 갖추지 않으면 쓸수없는거에요. 필력 못지않게 따라줘야 하

  는게 상상력인데...소설과 드라마는... ”

 목이 마르는지 다시 콜라 한모금으로 목을 더 축이는 준식. 잔은 어느덧 거의다 비워져있고, 혜빈이 찬물이라도 하나 더 가져올까 했지만 일단 그것은 준식이 사양한채 그는 이야기를 마저 계속 이어나간다.

 “ 지금 누나한테 부족한건 상상력이에요. 비록 어린시절 외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어떤 가슴아픈 사연일지언정 또는 어떤 이상야릇한 사건일지언정 그것을 한편

  의 짜임새있는 이야기로 제대로 꾸며나갈수 있는 그런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건데... ”

 “ ...... ”

 “ 누나에게 상상력이 부족했던것. 그것이 그렇게...누나가 어린시절 외할아버지로

  부터 들은 그 소중한 이야기를 지금껏 고이 간직해오다가 작품으로 내놓았건만

  그것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인것 같아요. ”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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