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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전혜빈 (5)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3. 오월의 신부





 다음주.

 수요일 강의가 다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고 있는데 혜빈을 뒤에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교육원 동기로 같은 수강생인 윤준식이란 학생이다. 사실 혜빈은 지난 1년 대체로 그리 성실하게 강의를 들은편에 속하지는 않는지라, 같은 수강생이라도 얼굴이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는 학생도 제법 되었다. 하지만 준식의 경우는 어쨌든 혜빈을 기억을 하는지 조금 상기된듯한 목소리로 다소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혜빈 입장에선 수강생중 특별히 자신에게 용무가 있어 부르거나 할만한 사람은 없을것 같은데 다소 의아해하고 있고, 그러면서 뒤돌아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준식이 이미 혜빈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누나, 혜빈이누나 맞죠 ? ”

 준식은 다소 친근감있게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고 있지만 혜빈의 입장에선 준식이든 다른 누구든 그렇게 무슨 ‘누나,동생’ 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수강생은 없기에 자신을 누나라 부르는 준식에게 순간 당혹스러워하는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이럴때 자신은 어떻게 상대를 대하는게 적절할까 제대로 판단까지 되지 않아 머릿속이 잠시 혼란스럽기까지 한 가운데 일단 존대로 예의를 갖추고 그를 대한다.

 “ 네, 제가 전혜빈 맞는데요 그런데 무슨일로... ? ”

 “ 일단 잠깐 이야기좀 하죠. 실은 지난번에 누나 김수현 선생님한테 작품 제출했

  다가 혼만 나는거 봤었어요. 그래서... ”

 김수현한테 뒤늦게 자신의 습작품을 제출했다가 ‘X같은 작품’이니 어쩌니 하면서 모욕을 당하고 바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수현이 그 작품을 찢은것이 불과 1주일전의 일이다. 무엇보다 강의가 다 끝나고 수강생들이 우르르 강의실에서 나온 무렵이니 실은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거기서 선뜻 나서서 수현을 만류한다던가 혜빈의 역성을 들어줄만한 사람이 없었던것이고, 여하튼 준식도 그날 현장을 목격한 수강생중 한 사람인것만은 분명하고 혜빈 역시 준식을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기억하고 있는 처지인지라 그렇게 다가오는 준식을 어찌 대하면 좋을지 몰라 여전히 당혹스러운 가운데 있다. 준식은 숨을 좀 돌리고 차분한 어조로 혜빈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 사실 그날...김수현 선생님이 좀 너무한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

  다고 일개 수강생의 처지로 그런데서 나서서 뭐라고 좀 하기도 그래서...그냥 그

  자리를 지켜보고만 있었는데...여하튼 누나...그날 상처 많이 받았죠 ? ”

 “ 아...아뇨 뭐 그냥...괜찮아요 지금은... ”

 혜빈 입장에선 되려 그날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수강생이 있다는것에 민망하기까지 해서 그렇게 변명을 해댄다. 그리고 어차피 그날일 그리고나서 무작정 불러낸 남자친구격인 상기로 인해 그런대로 위로가 되어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헌데 그런 상황에서 준식이 다시금 그날일을 끄집어내 상기시키는게 되려 불편해지기까지 한다. 어쨌든 혜빈은 혜빈대로 난처한 감정으로 준식앞에 서 있는데 준식은 일단 혜빈을 강의실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공간으로 데리고 갔다. 혜빈 입장에서야 뭐 별일이야 있으랴 싶어 순순히 그가 하자는대로 이끌려왔고, 한적한 공간에서 준식이 다시 혜빈에게 말을 건넨다.

 “ 그날...누나 참 엄청 울던데...상처 많이 받았었죠 ? ”

 “ 아뇨...뭐...지금은 괜찮아요... ”

 혜빈으로선 솔직히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기도 해 대충 그런식으로 얼버무린다. 하지만 지금 그런식의 말을 준식이 그대로 믿어줄것 같지는 않고, 준식은 대체로 온화한 분위기속에서 혜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가운데 그의 말을 이어가고 있다. 혜빈도 긴장했던 속마음은 지금은 어느정도 풀린 상태다. 준식의 말이 이어진다.

 “ 저도 어쨌든...같은 수강생 입장이라...누나 심정 조금은 이해할것 같기도 해요.

  제가 만약 누나같은 일을 겪었다면...어휴...전 진짜 가만있지 않았을거에요. 선생

  이고 뭐고...당장 그 자리에서 대뜸 대들었을것 같은데...근데 누나 지금 정말 괜

  찮은거에요 ? ”

 “ 괜찮다니까요 정말로... ”

 똑같은 질문을 벌써 몇차례 반복하는 셈이라 혜빈 입장에선 살짝 짜증까지 날 지경이고, 준식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는지 일단 그 부분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자기가 이야기하고픈 본론으로 들어간다. 헛기침을 한번 해보이고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혜빈을 바라보며 준식의 말이 이어진다.

 “ 누나...실은 그래서요... ”

 “ ??? ”

 “ 그 작품...혹시 원본파일은 집에 있겠죠 ? 뭐 요즘은 다 컴퓨터로 원고작업을 하

  니까...원본파일이야 당연히 있을테고... ”

 “ 원본이야 당연히 집에 있죠. 근데...그게 뭐 어쨌다는거죠 ? ”

 “ 실은 그래서...누나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요...한번 우리끼리만이

  라도 조촐하게 합평회를 가져보는게 어떨까 그 생각을 해봤어요. ”

 “ 합평회를요 ? ”

 교육원이든 다른 문예창작강좌든 수강생이 자신의 창작물을 가져와 같은 수강생들끼리 돌려보며 작품에 대해 평하고 토론하는것을 보통 ‘합평회’라 부른다. 합평회는 보통 문예창작 강의 과정에서 일종의 교육과정으로 정식으로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사정이 있을때는 수강생들끼리 자신들끼리 모여서 별도로 그런 시간을 갖기도 한다. 혜빈의 경우엔 정식으로 수강생들이 작품을 제출 강의과정에서 듣게되는 합평회때는 작품을 제출하지 못했고, 그 합평회 과정이 다 끝나갈때쯤 돼서야 작품을 제출한것이니 교육과정에서 정식으로 혜빈이 합평을 들을 기회는 놓친것이다. - 지난주 혜빈이 뒤늦게 작품을 제출했을때 김수현의 반응을 봐선 김수현이 단지 그녀를 위해 별도로 합평 시간을 마련해줄것 같지도 않고. - 그래서 준식은 아마 궁리 끝에 그녀를 위한 별도의 합평 시간을 가져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 것이다. 막상 준식으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자 혜빈은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거나 하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제안 자체가 아주 싫지는 않은듯한 모습. 혜빈이 그렇게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준식의 설득이 이어지고 있다.

 “ 몇몇 수강생들한테 이미 이야기는 꺼내봤는데...뭐 다는 아니지만...여하튼 합평

  회에 참석할 용의가 있다는 반응을 보인 수강생이 몇 명 있어요. 그러니 그 사람

  들끼리 모여서라도...누나가 그날은 주(主)가 되는거니까 누나가 좋은 시간으로

  정하도록 하세요. 주인공이 누나이니만큼 누나가 편한 시간에 하는게 좋을테니까

  요. 언제 하는게 좋을까요 ? ”

 “ 뭐...저...저야 아무 때나 상관없어요. 그러니 좋으실대로 하세요. ”

 어차피 혜빈도 지금 직장생활을 한다거나 하는 몸은 아니니 시간이야 언제라도 상관은 없을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반응을 보이는것을 보면 혜빈을 위해 별도로 합평회 시간을 갖기로 하겠다는 준식의 제안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듯하다. 그렇게 혜빈이 사실상 그녀의 작품 합평회를 갖는것에는 동의를 한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고, 준식은 이번주 토요일로 잠정적으로 날짜를 정했다. 혜빈이 아무 날짜라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준식이 일방적으로 그와같이 시간을 정해도 별 무리는 없는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수강생들도 참석이 가능한 시간이어야 하는것이니 대체로 스케줄에 별 무리가 없는 토요일로 그리고 장소는 교육원 인근에 있는 커피숍에서 모이는걸로 합평회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 그럼 그날 합평회를 갖는 것으로 하고 준식은 그쯤에서 혜빈과의 대화를 마무리한다. 혜빈의 가슴은 지금 묘하게 요동치고 있다. 공연히 흥분된 자신의 마음을 달래며 차분한 얼굴로 귀가를 서두른다.





 약속한 그 주 토요일 오후에 교육원 인근에 있는 커피숍에서 혜빈의 작품에 대한 합평회가 열렸다. 사실 준식은 원래 성격이 이런 모임같은것을 주도하거나 사람들을 이끌만한 그런 성격이나 능력과는 다소 거리가 멀고, 따라서 합평회에 참석해달라고 다른 수강생들을 설득하는 일은 평상시 준식과 친분이 좀 있었던 다른 동기 수강생 박정현이란 여성이 맡았다. 성격이 다소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준식과는 달리 정현은 보통 이런 모임같은것을 주선하는데 제법 적극적인 성격을 보이는 여자다.

 그날 모임에 참석한 수강생은 평소 혜빈과도 약간 친분이 있고 따라서 강의가 끝난뒤엔 식사와 술자리를 몇 번 한적도 있는 전봉림과 김종아라는 여성 수강생. 그리고 이승우라는 또다른 남자 수강생이었다. 혜빈보다는 몇 살 어리고 대략 준식,정현등과 엇비슷한 연배인 전봉림과 김종아는 평소에도 친분이 있던 혜빈의 작품 합평회를 따로 갖겠다는 말에 대체로 관심이 가서 별다른 거부감없이 바로 그런 제안에 응했고 이승우는 평상시에도 교육원 강의에 제법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이고 창작 열의도 그만큼 뜨거운 학생이었다. 따라서 또다른 수강생의 합평회를 별도로 갖는다는 말에 바로 관심이 가서 참석하게 된 것이다.

 보통 교육원 정규과정중에 있는 합평회는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인 습작품을 수강생 숫자에 맞춰 담임 선생님이 복사를 해오거나 경우에 따라선 학생이 직접 비용을 부담 자신이 직접 복사를 해서 작품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눠준 작품을 각자 집에가서 읽어본 뒤 다음 강의때 그 학생의 작품을 놓고 토론과 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오늘 열리는 혜빈의 합평회는 그런식으로 진행할수는 없고 따라서 그날 모임 자리에 혜빈이 직접 여러부 인쇄한 대본을 가져와 먼저 참석한 학생들이 대본을 각기 읽어보고 그리고나서 작품에 대한 토론과 평가회를 갖는 것으로 순서를 진행하기로 했다. 혜빈은 인쇄를 모두 열부를 해왔는데 애초의 기대에는 다소 못미친 다섯명만이 참석한 합평회 규모에 약간 실망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섯명만이라도 어디랴 하는 생각에 인쇄해온 대본을 각자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그럼 대체 상기는 뭐하러 찢어진 대본 붙여주는 수고를 했던거야 !!! -.-)

 총 분량이 A4 용지로 20장이 조금 안 되는 대본을 모두 읽는데는 대략 30여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사실 보통 단막극 한편 분량이 A4 용지 30-35매 정도 되는걸로 알려져있는데, 그걸 생각해보면 단막극으로 보기엔 다소 짧은 분량의 대본인 셈이다. 한편 합평회 진행은 박정현이란 수강생이 맡기로 되었고, 본래 정현의 적극적이고 수더분한 성격탓인지 일부러 그와같이 정한것은 아닌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그와같이 형성이 되어버렸다. 평상시 붙임성있고 적극적인 면이 있는 정현에 비해 준식은 그런 성격과는 확실히 다소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이제 각기 대본을 거의 다 읽어보았을때쯤 정현이 ‘이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고 운을 띄웠고,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참석자들은 쉽게 입을 열지를 못했다. 이런 합평회 경험 이미 연수반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차례 가졌다면 합평회 자체의 토론이나 평가하는 분위기 자체엔 다들 익숙해져 있을텐데, 교육원 정규 과정중에 갖는 합평회가 아닌 자신들끼리 별도로 모여 갖는 자리다보니 다소 쑥스럽고 어색하기라도 한것일까. 아직 아무도 혜빈의 작품에 대해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혜빈도 그녀대로 과연 자신의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기대와 설레임 또 한편으로는 긴장감까지 감도는 그런 감정으로 앉아있었고, 여하튼 그런 가운데 아직 작품에 대해 쉬이 뭐라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정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자...오늘따라 분위기가 왜 이러지 ? 다들 아무도 쉬이 말을 못 꺼내고 있는것

  같은데...하아...저기 그럼...이승우씨부터 한번 작품을 읽어본 소감 말씀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 ”

 이럴땐 아무래도 진행을 맡은 사람이 참석자중 하나하나 직접 거명을 해가면서 순서를 진행하는게 효율적일것 같다는 판단에 정현이 바로 이승우란 수강생을 지목했다. 평소 작품에 대한 창작열이 누구보다 뜨거운 것으로 평가를 받는 그런 수강생이었다. 따라서 그런 승우라면 누구보다도 작품을 보는 통찰력도 예리할것이고, 무엇보다 그런 사람부터 이야기를 꺼내는게 오늘 합평회가 보다 적극적인 분위기속에 진행될수 있을것이란 정현 나름대로의 판단에 그를 먼저 지목한것이다. 정현이 자신을 직접 지목하자 승우는 순간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이고, 하지만 일단 지목을 받았으니 무슨말이라도 해야할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물을 한모금 마셔 목을 축인되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혜빈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도 이미 이승우를 향하고 있었다. 승우가 뭔가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속에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이게... ”

 “ ...... ”

 “ 6.25 직전인거죠 ? 사회...시대적 배경이... ”

 “ 네. ”

 아마 작품의 배경이 대략 그와같았는지 승우가 그와같이 물어본것이고 혜빈이 대체로 또렷한 목소리로 답을 해 주었다. 헌데 뭔가 아닌가 싶은것인지 승우가 고개를 한번 갸웃거려보고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 근데 이 대본...남녀 주인공말이에요... ”

 “ ...... ”

 “ 감정선이 좀 납득이 안가요.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것도 좀 납득

  이 안되고. ”

 “ 제가 볼땐 연애결혼보다 중매...아니 강제결혼 비슷하지 않나요 ? 제가 볼땐 그

  런것 같던데... ”

 승우의 말에 한마디 끼어든것은 전봉림이란 여성 수강생이었다. 그와같이 입을 열고는 옆자리의 김종아한테도 동의를 구하려는듯 한마디 건넸다. 전봉림과 김종아는 동갑이고 평상시 친분이 많이 쌓여져 있는 사이라 거의 말을 놓으며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교육원 수강생들 대개가 보통 기초반부터 시작해 다음학기인 연수반까지 이어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니 - 중간중간에 연수반이나 전문반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지만 보통은 기초반부터 수강을 시작한 사람들이 다음과정인 연수반,전문반 순서로 강의를 듣게된다. 물론 중간에 공부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 1년 가까의 그렇게 함께 강의를 들으면서 그 정도의 친분이 쌓여지는것은 당연한 일일것이다. 종아는 봉림의 말에 대충 동의하는것 같은 반응을 보이고, 그러면서 자신도 궁금한게 있는듯 이번엔 혜빈에게 자신이 질문을 건넨다.

 “ 근데...끝에가서 애기는 대체 왜 죽은거에요 ? 아기...여자가 아이를 죽인건가요

  ? ”

 “ 예 ? ”

 종아의 질문에 순간 혜빈은 뭔가 황당하다는듯 그와같이 물었고, 헌데 다른 참석자들도 다른것은 몰라도 종아의 그 말 만큼은 동의한다는듯 한두마디 거들었다. 대체로 드라마 결말이 여주인공이 아이를 죽인것이 맡다는데 동의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 이건 뭐...당연한거 아닌가 ? 그 상황에서 아이 죽일 사람이 여자밖에 없네. ”

 “ 그러니까...아이 엄마가 아일 죽인거잖아요. 근데 대체 이유가 정확하게 뭐에

  요 ? 그게 좀 분명치 않아보이는데... ”

 아마 드라마 결말이 그와같은 모양인데 하지만 참석자들은 대체로 그 결말 자체를 이해 못한다는 분위기였고,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를 죽인 범인이 여주인공이자 아이엄마가 맞다는 그렇게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헌데 순간 혜빈이 발끈하며 펄쩍뛰었다.

 “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이 엄마가 아이를 죽인게 아니에요 !!! ”
혜빈은 마치 뭔가 억울하고 기가막히다는듯 그와같이 항변(?)했고, 하지만 혜빈의 그 말에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혜빈의 그와같은 반응이 이해 안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먼저 말을 꺼낸것은 조금전 작품평에 대해 처음 운을 띄웠던 이승우다.

 “ 제가 볼땐...아이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하는 문제보다 아이를 죽인 이유가 분

  명치가 않아요. 대체 이 상황에서 그것도 갓태어난 아이를 엄마가 죽일만한 이

  유가 있는건가요 ? 이 대본 상에선 그런 설명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요. 아니, 솔

  직한 느낌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너무 뜬금없어요. 그렇게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그리고 갑자기 아이 엄마가 느닷없이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인다는게... ”

 “ 아니라니까요 !!! 아이 엄마가 아이를 죽인것이 아니에요 !!! ”

 혜빈은 마치 자신이 무슨 형사사건의 범인(?) 누명이라도 뒤집어쓴것만 같은 억울한 감정으로 발끈하며 항변했다. 물론 작가가 작품을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작품속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되거나 몰입이 되는 경험은 창작활동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한두번쯤은 다 해봤을법한 경험이다. 따라서 혜빈의 그와같은 펄쩍뛰는 심정은 창작활동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라면 이해하지 못할 감정은 분명 아니다. 따라서 그렇게 펄쩍뛰는 혜빈을 오늘 합평회 진행을 맡은 정현과 오늘 모임을 처음 제안했던 준식이 일단 진정시켜보려 했다. 한편 참석자중 승우는 자신의 평이 좀 과했나 싶은 약간의 미안한 감정을 담아 조금은 침착하게 혜빈에게 질문을 건네보았다.

 “ 죄송합니다. 저희가 뭔가 오해를 한것 같다면 사과드리죠. 헌데...그럼 대체 아

  이는 왜 죽은건가요 ? ”

 승우의 질문 의도를 이해못한 것인지 혜빈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고, 그런 가운데 승우는 물 한모금을 마시고는 다시금 침착한 어조로 혜빈에게 말을 건넨다. 일단 이 자리는 혜빈의 창작품을 평가해보는 합평회다. 그 본질을 벗어나서는 곤란하겠기에 작품과 관련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려는 것이다.

 “ 제가 그 질문을 여쭤보는게...대체로 마지막 장면이 너무 납득이 안 가서 그래

  요. 너무 밑도끝도 없이 갑자기 아이가 죽은거잖아요. 그것도 아이를 출산한지

  얼마 안 되어서...남편은 잠깐 자리를 비웠고...그 사이에 아이가 죽었다면...사실

  누가봐도 아이엄마를 의심할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

 “ 이거...저희 외할아버지한테서 들었던 이야기에요. ”

 “ 예 ? ”

 조금전 아이를 죽인 범인이 여주인공 즉 아이엄마가 아니라고 사뭇 억울하다는듯 항변까지 했던 혜빈은 기왕 말이 나온것 이야기는 좀 해야겠다는 생각인것인지 자신이 이와같은 작품을 쓴 의도를 설명하려 한다. 보통 이런식의 순서는 합평회 진행자가 주도하기 마련인데, 그런걸보면 굳이 정현이 그런 사회를 보지 않아도 되게끔 혜빈이 먼저 자발적으로 작가의 변(辯)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참석자들은 일단 집중해서 혜빈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다들 귀를 기울인 가운데 혜빈은 다소 평정심을 되찾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 저희 외할아버지한테서...어릴때부터 몇 번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꽤

  인상에 남는 이야기라...한번 드라마로 써보고 싶어 쓴건데... ”

 “ 그러니까 외할아버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한번 작품으로 써보고 싶었다...그

  게 혜빈씨 작의(作意)인 건가요 ? 이를테면 그런셈이네요 ? ”

 이번엔 역시 준식이 침착하게 혜빈에게 그와같이 말을 건넸고 시인하는듯 혜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이들은 혜빈이 국회의원을 두 번 역임하고 그 이후엔 10년 가까이 공기업 간부를 지낸 그런 명문가 집안의 막내딸임은 아직 알지 못한다. 혜빈이 일부러 그런것을 티내고 다니는 성격의 여자도 아닐뿐더러 지금까지 혜빈이 교육원에서 대체로 강의나 수강생들과의 친교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하는편도 아니었던만큼 혜빈의 그런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만한 그런 대화를 나누거나 할만한 시간이나 계기가 있었을법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령 혜빈과 몇 번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가진바 있는 전봉림이나 김종아 조차도 그런 자리에서 혜빈의 집안에 대해 물어보거나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는 아직까지 없었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혜빈이 이와같은 드라마를 쓰게된 그 동기부여가 일단 친가쪽의 사연은 아니고 외할아버지로부터 어릴적 들었던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편 이번엔 전봉림이 좀 납득이 안 간다는듯 혜빈에게 말을 건넨다.

 “ 근데 언니...전 이 드라마 남녀 주인공 관계가 더 납득 안 가요. 시대배경이 40

  년대 후반이라면서...이때 이런식의 결혼이 가능한가요 ? ”

 “ 아유, 왜 ? 가능은 하지...신분제가 없어진지가 언젠데...이때쯤이면... ”

 “ 아냐, 그렇지는 않아. 우리 아는 친척중에도 예전이 지방에서 행세좀 하고 살

  았던 그런분이 계신데...예전 기억에 보면 그분 고향분들은 아직도 그 친척아저

  씨 ‘어르신’이라던가 ‘나으리’ 이런식으로 부르기도 하던걸 ? 근데...40년대 후반

  정도면...신분제 잔재 아직 남아있을법한 시절이야. ”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혜빈의 짧은 드라마 - 총 분량이 A4 용지로 20장도 채 되지 않으니 단막극 분량도 되지 않는 양이다. - 스토리는 대략 이랬다. ‘40년대 후반 지방에서 제법 행세좀 하는 양반집이 하나 있었다. 헌데 그 양반집에 한 수년전부터 머슴으로 들어와 살던 만식이(가명)란 남자가 하나 있다. 만식이의 출생은 불분명했고, 어쨌든 대체로 집에서 좀 성실하게 머슴살이를 하던 그런 청년이었다. 헌데 그런 청년을 그 양반집에서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과 결혼을 시킨것이다. - 결혼을 시킨 이유조차 극중에선 불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 어쨌든 양반집에선 하나밖에 없는 딸의 결혼식이라서 그런지 그런대로 제법 신경써서 성대하게 치러주었고, 그렇게 결혼을 한 두 사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열달후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잠깐 집을 비운사이 아이와 함께 방안에 있던 여자. 아직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안 풀린 상태. 헌데 집을 비웠던 남자가 들어와보니 그만 아이가 죽어있었던것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밑도끝도 없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출신도 불분명한 그런 하인을 행세깨나 하는 양반집에서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과 결혼을 시킨다는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의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없어진것은 구한말 갑오경장때부터 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습관이란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닌법. 실제 일제시대를 거쳐 심지어 한 50-60년대까지만 해도 도회지에선 몰라도 지방엔 아직 신분제의 잔재가 적잖이 남아있던 시대였다. 실제 가끔 방송사에서 하는 60-70년대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봐도 지방출신중 나이많은 사람들 대사에는 ‘옛날로 치면 머슴살이 하던 녀석인데...’, ‘하유, 마님...지한텐 언제까지 마님이구먼유. 남들이 뭐라고 비웃어도 지는 죽는날까지 마님이라 부를거구먼유.’ 이런식의 대사가 종종 나오는것만 봐도 대략 그때까지만 해도 지방에 사는 나이많은 사람들의 사고나 가치관에는 신분제식 사고방식이 적잖이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다. 하물며 그때보다도 20년전인 40년대 후반에 그렇게 행세깨나 하는 지방의 양반집에서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출신도 불분명한 머슴살이 하는 청년과 결혼시키는게 가능한 일일까. - 가령 김유정의 ‘봄봄’ 같은 소설에서처럼 머슴살이를 시키기 위해 어루숙한 청년을 ‘일 잘하면 나중에 우리 딸네미랑 결혼시키겠다.’ 하는식으로 꼬드기는 그런 설정이라면 모를까. 그런 경우가 아닌다음에야 40년대 후반에 출신이 불분명한 머슴아이를 외동딸과 결혼시키는 양반댁이 있다는것.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쉽지 않은일일것이다. 혜빈은 거듭 자신의 드라마를 어릴때 외할아버지로부터 몇 번 들어본 이야기를 쓴것이라고 항변은 했지만, 드라마의 설정이 대본을 보고 작품평을 해줘야하는 합평회 참석자들 누가 봐도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설정. 그게 가장 큰 문제였던것이다. - 솔직히 요즘이라도 어느 행세하는 명문가나 재벌가에서 가령 자기 외동딸을 출신이 불분명한 자기집 운전사나 정원사쯤 되는 사람과 결혼시키는것 쉽지 않은일일것 아닌가. 하물며 배경을 40년대 후반이라고 해놓고 그와같이 밑도끝도 없는 내용을 드라마라고 썼으니 제3자의 입장에서 막상 대본을 읽어보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인것이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상황일것이다.

 하지만 그와같은 설정의 비현실성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더 결정적으로 합평회 참석자들을 의아하게 만든것은 극중 남녀관계만큼이나 뜬금없고 황당한 결말이 되어버린 드라마의 마지막이었다. 아무런 앞뒤 설명도 없이 잠깐 남편이 집을 비운사이 방안에 아이와 혼자있던 여자...그리고 남편이 돌아와보니 아이가 죽은것이다. 이쯤되면 웬만해서는 아이를 죽인 범인이 ‘혹시 여자가 아닐까 ?’ 의심하기 충분한 상황 아닌가. 게다가 혜빈은 마치 그와같은 의심의 상황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만식이란 남자주인공의 나레이션을 이와같이 넣으며 드라마를 마무리짓고 있었다.

 ‘ 당신이 고민 끝에 결국 아이를 죽였구려...그래, 당신이 저 아이와 함께 이 힘

  든 세파를 헤쳐나갈 그 고민을 하다보면...결국 차라리 아이가 죽는것이 낫겠단

  생각을 했던게야. 그래...당신이 힘들어서...당신이 고민하던 끝에 아이를 죽였구

  료... ’

 ‘ 당신이 고민 끝에 아이를 죽였구료.’ 작가가 직접 나레이션을 그와같이 넣어놓고는 나중에 ‘아이 죽인것 여자가 아니다 !’ 라고 항변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와같은 나레이션이 없었다면 느닷없이 아이가 죽은것에 대해 바로 여자를 의심하지 않고 다른 상황들을 생각해볼수도 있었을것이다. 헌데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당신이 아이를 죽였구료...’ 라고 해놓고 ‘아이를 죽인것이 여자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다니. 이쯤되면 그야말로 작가 입장에서 독자를 우롱하는 수준이 아닌가. 자기가 직접 나레이션을 그와같이 넣어놓고, 누가봐도 아이를 죽일만한 사람이 여자 외엔 없는 상황을 장면으로 만들어놓고 ‘보시면 알겠지만 여자가 아이를 죽인것이 아니에요 !’라니. 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항변이란 말인가. 전체적으로 보면 그날 합평회 참석자들은 혜빈의 A4 용지 20장이 채 안되는 짧은 드라마 스토리를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그와같은 분위기였다. 40년대 후반 정도되는 시대적 배경이 그것도 출신도 불분명한 머슴을 자기 외동딸과 결혼시킨다는것도 납득이 안 가고, 마지막에 가서 느닷없이 그렇게 결혼한 두 사람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죽는다는것도 황당하고 어이없기만 했다. 게다가 장면의 상황과 그리고 남자의 나레이션(‘당신이 고민 끝에 아이를 죽였구료...)’을 그와같이 넣어놓고는 오히려 자기입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자가 아이를 죽인것이 아니다 !!!’ 라고 항변하다니. 그럼 대체 누가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아니 이 말도 안 되는 단막극 줄거리와 주제를 이해해줄수 있단 말인가.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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