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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전혜빈 (1)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3. 오월의 신부





 1999년 5월.

 준식은 혜빈의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준식과 혜빈은 1년전인 지난해 봄부터 방송작가 교육원 OO기 기초반과 연수반 과정을 함께 거친 동기생 사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친분이 깊거나 한 사이는 아니었다. 준식의 경우 자신보다 세 살 많은 혜빈을 보통 누나라고 불렀었고, 그렇게 두 사람 사이는 그저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 알고 지내게 된 누나,동생 하는 정도의 사이지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그런 사이는 아니다. 여하튼 준식의 입장에선 같은 교육원 동기생의 인연으로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을 하게된 것이고 대체로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그런 정도의 감정을 가진 평범한 하객인 것이다. 결혼식은 강남의 제법 알려진 유명 예식장에서 성대한 분위기속에 치러지고 있었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도 제법 많았다. 결혼식이 정식으로 시작되기 한 10여분 앞서 도착한 준식은 혜빈에게 인사도 할겸 신부 대기실에 잠깐 들어가보았다. 허나 짙은 신부화장에 웨딩드레스 차림의 화사한 그녀를 순간 준식은 알아보지 못할뻔 했다. 아무리 그렇기로 신부 대기실에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신부이겠느냐만 순간 준식은 바로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혹여 내가 신부 대기실을 잘못 찾았나 싶어 당혹스러움에 주춤거리기까지 했다. 그때 다른 축하객과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던 혜빈이 그때쯤 들어와 저쪽에 서있는 준식을 알아보고는 손짓하며 그를 불렀다.

 “ 준식씨... ”

 준식보다 세 살 많은 혜빈이긴 했지만 말을 놓기는 어색해서인지 1년을 한 교육원을 다닌 동기생임에도 불구하고 혜빈은 평상시에 준식을 ‘준식씨’라 호칭해왔었다. 바로 평상시 그 모습 그대로 준식을 부른 혜빈. 그제서야 준식은 자신이 신부 대기실을 잘못 찾은것은 분명 아니구나 싶어 안도하며 신부 곁으로 다가갔다. 제법 신경써서 집에서 골라입은 양복정장이 준식은 그런대로 어울려보이는 분위기다.

 “ 누나...축하드려요. ”

 “ 고마워요 준식씨. ”

 준식은 혜빈을 누나라 부르는데 혜빈은 그런 준식을 말을 놓지 않고 존대를 하는 약간 어색한 화법으로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게 되고 그리고는 사진사의 요청으로 둘이 함께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리고는 특별히 더 나눌말은 없는지 신부 옆에서 살짝 헛기침을 해본 준식. 그런 준식을 보며 혜빈이 말을 건넸다.

 “ 준식씨...혼자오신거에요 ? ”

 혜빈은 살짝 서운한 감정이라도 드는지 준식에게 그와같이 물었고 준식은 일단 정직하게 담담한 어조로 그녀의 물음에 대답을 해준다. 신부 대기실은 아까 혜빈과 같이 있던 그녀의 친구들은 자리를 뜬 상태라 조금 한산해진 분위기다.

 “ 네...그냥 저 혼자 오게 되었어요... ”

 “ ...... ”

 “ 전봉림씨나 김종아씨 경우는 그래도 누나와 친분도 있었고 그래서...오려니 생

  각했는데...여하튼 다른 교육원 동기생들은 안 보이더라구요. ”

 어쨌거나 혜빈도 1년동안 교육원을 다녔는데 그런 수강 동기생 정도라면 결혼식에 한 몇 명이라도 참석해주었을 법도 한데 실제로 그녀의 결혼식에 축하하러 와준 하객은 준식이 유일한듯 하다. 사실 이쯤되면 준식의 성격에도 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책망할만한 일이다. 아닌말로 정히 그렇게 준식이 혜빈의 결혼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었더라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동기생들한테 ‘혜빈이 누나 그래도 1년동안 우리랑 함께 공부한 동기생인데 결혼식에 축하해주러 가야하지 않겠느냐 ?’ 이런식으로 말하거나 했어야 할 일이다. 사실 성격이 어느정도 수더분한 사람이었더라도 충분히 그런식으로 말해서 자신이 주도해서 몇몇 동기생들과 함께 혜빈의 결혼을 축하하러 와주던가 했을것이다. 허나 결국 숫기없는 준식 성격 그 자체의 문제인 것인지 그런식으로 자신이 다른 수강생들을 주도해 나가지도 못했고, 또 설사 준식이 그런식으로 말했다 할지라도 준식의 그와같은 말에 응해주었을법한 수강생은 그리 많지 않았을것 같다. 또 한편으론 준식의 천성 자체가 모임이나 교분 자체를 리드해 간다던가 하는 그런 성격과는 너무나 먼 사람이기에 설사 그런식으로 자신이 나서서 ‘혜빈이 누나 결혼식 축하해주러 가자’고 했을지라도 스스로 그렇게 나선것을 오히려 더 부담스러워했을 그런 사람이다. 여하튼 꼭 그런 이유때문만으로 볼수는 없겠지만 1년동안 교육원을 다닌 ‘5월의 신부’ 전혜빈의 결혼식에 교육원 동기생으로 축하하러 와준 하객은 준식이 유일했다. 막상 결과가 그렇게 되다보니 혜빈도 살짝 서운한 느낌이 드는것이 어쩔수 없나보다. 하지만 이 좋은날 기분을 잡치고 싶지는 않은지 바로 다시금 활짝 웃어보이는 혜빈. 준식과는 살짝 어색한 눈빛이 교차한다.

 “ 어, 오빠... ”

 어차피 신부 대기실에 자신이 오래 있는것은 별 의미가 없으니 그쯤에서 나가려할 때 들어서는 사람은 다름아닌 오늘의 신랑이자 이제 곧 혜빈의 남편이 되는 김상기였다. 어차피 곧 결혼식인데 그 사이 무슨 급히 전할말이라도 있는지 잠시 들어온 상기. 기왕 이렇게 된거 혜빈은 잠시 두 사람을 서로 인사나누게 한다.

 “ 오빠...여기 준식씨...오빠도 알죠 ? 전에 본적 있잖아. 나...그...교육원 동기... ”

 “ 아...어...알아... ”

 혜빈이 그와같이 말하자 상기도 바로 기억이 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준식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두 사람은 잠시 악수까지 나누게 되고 사나이다와 보이는 상기의 미소가 잠시 온화하게 퍼진다. 그리고 준식에겐 축하해주러 온 하객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하는 상기다.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장이 제법 잘 어울리시네요. 하마터면 못 알아

  볼뻔 했습니다. ”

 “ 아...네에...감사합니다 선생님. ”

 좀 긴장을 한 것일까. 혜빈이 비록 상기를 ‘오빠’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 혜빈보다 겨우 세 살 아래인 준식과 혜빈의 신랑 상기의 나이차이가 그렇게까지 많이 나지는 않을텐데 얼떨결에 그를 ‘선생님’이라고까지 부른 준식. 그리고는 상기에게도 다시한번 축하의 인사말을 건네는 준식. 그리고 그쯤에서 준식은 대기실을 살짝 빠져나간다. 그리고 이제 곧 결혼식이 시작될 예식장의 하객석으로 들어가 자리하게 된다.

 교육원 동기생중 참석한 사람이 준식 이외엔 없자 혜빈도 약간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혜빈이 1년간 수강한 ‘방송작가 교육원’ 동기생들중에 - 그것도 다른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것은 아니고 다만 각기 개별적으로 다들 공사다망한 사람들인지라 -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일뿐 결혼식 자체는 대체로 수많은 축하객들 속에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실제 혜빈은 아버지가 80년대에 여당 국회의원들 두차례 지내신 분이고 이후에도 10년간 공기업 간부를 지내시다 최근에 퇴임한 분이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혜빈의 아버지가 사회 각계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또한 혜빈의 신랑이 되는 김상기 역시 그 아버지가 중견 기업인이라서 역시 그 인연으로 아는 주변 지인들이 많았고 혜빈과 상기의 학창시절 친구들 또한 적잖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그렇게 신랑,신부의 가족,친지,직장동료,사회각계 지인들은 물론 양가 부모들의 사회적 인연으로 알고지내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하객들이 참석한 참으로 성대하게 치러지는 결혼식중 하나였었다. 다만 방송작가 교육원 수강 동기생중 유일하게 결혼식에 참석한 윤준식만이 그랬기에 결혼식장에서 웬지 위축되는 느낌을 다소 받았을뿐이다. 마치 자신이 교육원 동기생의 결혼식에 참석한것이 좀 주책스런 행동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준식 혼자만의 기분일뿐, 결혼식은 흥겨운 분위기속에 잘 진행이 되었고 신랑과 신부도 모두 행복해 마지않는 모습이었다. 다만 준식은 준식대로 혜빈과의 약간 애매모호했던 교육원에서의 지난 1년간의 인연이 한편의 영화 하이라이트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1년전.

 방송작가 교육원 OO기 기초반 강의가 시작된지 한달 정도가 지난 6월 중순의 일이다. 기초반 담임 김수현 선생이 한창 차분한 분위기속에 강의를 진행하는 중이었고 그렇게 강의 시작된지가 이미 한시간 가까이가 지났을때쯤의 일이었다. 빼꼼 강의실 뒷문이 살짝 열리는듯 하더니 들어서는 젊은 여성이 하나 있었다. 다름아닌 전혜빈이다. 본래 성격이 좀 예민한것인지 강의 도중에 들어오는 수강생으로 인해 문 여닫히는 소리로 이미 수현은 신경이 거슬릴대로 거슬린 상태다. 그런 담임선생의 심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혜빈은 강의실 뒤쪽 좌석에 다소곳한 자세로 조용히 자리해 앉았다. 헌데 그때였다.

 “ 거기 뭐니 ? ”

 그대로 담임선생에게 걸렸음일까. 김수현이 바로 그쪽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혜빈은 ‘아차 !’ 싶은지 일단 고개를 숙였고, 민망한 표정으로 긴장해서 앉아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방송작가 교육원이 중,고등학교도 아닐진대 그까짓(!) 지각 좀 한 학생이 있다고 뭐라 하기까지 하랴. 대충 그런 심사로 일단 버티고 앉아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런 혜빈을 절대 그냥 봐주고 넘어가지 않았다. 수현은 바로 혜빈이 앉아있는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너 뭐니 ? ”

 혜빈은 대꾸가 없고, 그냥 넘어가려니 생각했는데 뭐라고 한마디 하기는 하려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러잖아도 긴장한 상태인지라 식은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날도 한창 더워지는 여름이 아닌가. 강의실에 냉방장치가 되어있긴 하지만 그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혜빈은 바짝 긴장이 된 상태다. 수현이 그런 혜빈쪽을 계속 노려보며 손짓한다.

 “ 나와 앞으로. ”

 “ 예 ? ”

 설마. 아무리 그렇기로 이런데서 지각한 수강생을 놓고 뭐라고 하기까지 하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현은 마치 무슨 까칠한 고등학교 주임선생님마냥 지각한 혜빈을 거듭 재촉하고 있었다. 적당히 버티고 있으면 되려니 생각했는데 이미 그럴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듯 하다. 차가운 김수현 선생의 말소리가 다시금 강의실에 울려퍼진다.

 “ 앞으로 나오라니까. 지각생 주제에 어딜 그렇게 뻔뻔스럽게 앉아있어 ? 어서 나

  오라니까 ! ”

 진짜 뭐라고 단단히 야단이라도 칠 기세인 김수현. 설마 그렇다고 무슨 정말 국민학생이나 중고생마냥 체벌이라도 가하진 않을테고, 대체 뭘 어쩌려는 것인지. 어쨌든 일단 버티고 앉아있을수만은 없는 상황임을 깨달았는지 혜빈은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수강생들까지 공연히 긴장이 될 지경인데, 혜빈이 앞으로 나오자 김수현은 그녀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 너 돈 많냐 ? ”

 “ 네 ? ”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지각한 수강생을 불러놓고 나올 질문으론 그리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것 같은데. 수현의 의도를 여전히 짐작 못하는 혜빈은 그저 어리둥절해할 뿐이고, 수현은 그런 혜빈을 바라보며 사뭇 비아냥대듯 다시한번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 너네 집 돈 많냐구 ? 그렇게 부자야 ? 돈 물쓰듯 해도 되는 집안이냐구 ? ”

 사실 그때까지 담임인 김수현은 물론 수강생들 조차도 혜빈이 국회의원을 두 번씩이나 역임한 사람의 막내딸임을 모르고 있었다. 평상시 대체로 수수해 보이는 그녀의 옷차림 때문이기도 했지만, 혜빈도 특별히 그것을 과시하거나 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집안을 내세우는것 자체가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 판단하고 있었는지 혜빈은 적어도 자기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는 아직까지 한번도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수강신청서에 가족신상을 적어낼때에도 아버지의 직업은 ‘무직’이라고 써냈다. 사실 이미 나이 60대 중반을 넘긴 그녀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그와같이 써도 별로 이상할일은 없었다. 가령 평범한 일반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었다면 이미 정년퇴임을 하고도 남았을 그럴 나이가 아닌가. 그러니 가족신상에 적혀있는 혜빈의 아버지의 직업 ‘무직’을 굳이 뭐라하거나 관심을 가질만한 선생이나 관계자도 없을터이고 혜빈은 그녀가 자신이 어떤집안 딸이라는것을 내색한적이 없으니 다른 수강생들이 그녀의 집안에 대해선 알수가 없다.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김수현의 질문이 그와같자 그녀로선 기분이 괜히 묘해진다. 순간 차라리 ‘네, 저희집안 잘사는 집 맞는데요.’ 이렇게 답을 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런 장난을 칠 상황은 아닌지라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김수현은 혜빈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기까지 하며 다시금 빈정거린다.

 “ 니네집 돈이 그렇게 많냐구, 이 X아. 돈이 그렇게 많아 ? 비싼 수강료 내고서

  지각하고 결석할 그럴 생각이 드냔말야. 이 기집애야 ! 왜 ? 너네집 부자라서

  돈 함부로 그렇게 아무데나 수십만원씩 내고 물쓰듯이 해도 된다고 니네 애비

  에미가 그러디 ? ”

 아무리 그래도 10대 청소년도 아니고 이미 20대 후반의 여성에게 이쯤되면 너무 인격 모독적이고 그녀의 부모를 두고 ‘니네 애비,에미’ 운운하는것은 솔직히 무례한 언동이기까지 하다. 한시간이나 늦게 강의실에 들어온 혜빈이 뭐 그리 잘했다고는 말할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게 그렇게 그녀의 부모까지 ‘니 애비 돈 많아 ?’ 이런식으로 빈정거림까지 들어야 할 정도로 모욕을 당할일은 아니지 않는가. 순간 혜빈은 약간의 반발심에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까지 하고. 그런 혜빈의 심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수현은 혜빈을 바라보며 예하 그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어간다.

 “ 내가 강의 첫날 분명히 말했지 ? 여기 노인대학이나 주부대학 같은곳 아니라

  고. ”

 실제로 문예창작 강의 같은것을 하는데는 가령 주부대학이나 노인대학에서 중년의 주부나 현역에서 은퇴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상대로 심심 파적 소일거리로 여는곳도 많아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 가볍고 한가로운 마음에 강의를 듣거나 하는곳이 꽤 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작가 교육원’도 그런 비슷한곳쯤으로 알고 찾아오는 이들도 더러 있어 그것은 교육원 나름대로의 고충이자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강의를 시작하는 선생들이 종종 ‘여긴 스파르타식이다’라고 강조하곤 하는것도 실은 그런 이유다. 아무리 그렇기로 무슨 국민학생이나 사춘기 청소년들도 아닌 이미 다 큰 성인을 무슨 체벌을 가한다거나 말로 모욕을 주는 그런 행동까지야 할까. 다만 교육원생들에게 어느정도 긴장을 하고 수강을 해줄것을 요구하는 의미에서 그런식으로 강조하곤 하는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원을 적당히 다니다가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거나 하는식의 이탈생은 매 기수마다 늘 적잖이 발생해오곤 했었다. 자기 돈 내고 듣는 강의 자기가 그만두는데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것 같지만, 어쨌든 나름 방송작가를 정예로 양성하고 싶은 목적으로 만든 교육원 입장에선 힘빠지는 일이 될 수 밖에 없을것이다. 그런것들까지 다 머릿속에 담아두고 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나름의 책임감 때문인지 혜빈을 보며 다시금 모욕적 언사를 한옥타브 높이는 수현. 혜빈은 그녀 나름대로 묵묵히 그녀의 꾸지람을 듣고는 정중하게 그녀에게 사죄의 말을 올린다.

 “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

 “ 주의하고 뭐고 할게 아니라...내가 첫 강의때 말한 그대로야. 아직도 여기가 노

  인대학이나 주부대학쯤으로 생각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둬. 교육원이 무슨

  할 일없는 아줌마나 노인네들 소일거리로 놀러다니라고 개설한데 아니야. 한국

  방송작가 협회가 그렇게 할 일 없는곳인줄 알아 ? 다 그만큼 방송작가를 좀 더

  질적인 인재를 양성해야하는 그만한 이유와 사명감이 있기에 개설한거라구. 근

  데 도대체 어떻게 이것들은...아주 그냥...여기가 지들 심심해서 놀러다니는덴줄

  알아. 야, 여름에 놀러다니고 싶으면 피서갈수 있는덴 많아. 백화점도 있고 은행

  도 있고. 비싼 전기세 들여가면서 냉방장치 돌리는거 니들 여름에 피서하라고 그

  러는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여길 주부대학 놀러다니듯 다닐 그럴 X

  들은 지금이라도 그만둬. 알았어 ? 나도 여기 심심해서 놀러오는 애들 데리고 원

  맨쇼나 하고 싶어 이 지X 하는거 아냐. 알았어 ? 정신들 똑바로 차리고 하란말야

  이 기지배들아 !!! ”

 교육원 수강생중 젊은 여성이 아무래도 압도적이다보니 어쩌다 한두명씩 껴있는 남자 수강생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그냥 편의상 여성을 칭하는 대명사를 그와같이 입에 담는듯 하다. 여하튼 수현은 지각생 혜빈으로 인해 잠시 거슬렸던 심기를 대충 그런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뒤 나머지 강의를 마저 진행한다.


 기초반 오후반 강의는 보통 오후 2시에 시작되어 4시를 조금 넘겨 끝나게 된다. 하지만 혜빈은 그날 다른 수강생 몇몇과 함께 저녁을 먹고 다소 늦게 귀가를 하게 되었다. 오후 4시에 바로 저녁을 먹을수야 없으므로 이럴때는 보통 저녁때가 될 때까지 다른데서 시간을 보내던가 자기네들끼리 노닥거린뒤 대충 출출해질 시간이 되었을때쯤에 저녁을 먹게 된다. 혜빈의 경우 그날은 저녁을 먹고 다른 몇몇 수강생들과 3차로 술자리까지 갖게 되었다. 따라서 집에 도착했을때는 아직 알딸딸한 술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혜빈의 집은 강남에 위치한 2층짜리 제법 넓찍한 저택. 그녀가 집에 들어섰을때 그의 아버지이면서 80년대에 여당 국회의원을 두차례 역임한바도 있는 전광현이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딸이 집안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자 거실 소파에 앉아 독서를 하고있던 광현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서 딸에게 말을 건넨다.

 “ 학원에 다녀오는 길이냐 ? ”

 “ 아빠는...학원이 아니고 교육원이라니까요. 방송작가 교육원. ”

 딸이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곳이 어떤곳인지 광현이 아주 모를정도로 무심한 사람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 운운한것에 혜빈은 살짝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며 그와같이 자신이 다니는곳 명칭을 정확하게 일러준다. 그러나 광현은 그것은 그리 대수롭지가 않은 일이라는듯 무거운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 학원이나 교육원이나... ”

 말투로 봐서 광현은 혜빈이 그런곳에 다니는것을 그리 흡족해하지 못하는것 같은 느낌도 들고 어쨌든 술내까지 풍기는 몸을 아버지앞에 보이는것이 민망하기라도 한지 혜빈은 살짝 그의 앞을 피해 2층 자기방으로 올라가려 한다. 헌데 그때 광현이 딸을 부르며 말을건넨다.

 “ 혜빈아... ”

 못들은채 그냥 2층으로 바로 올라가버리려 했는데, 그런 딸의 의중을 알기라도 하는듯 목소리를 사뭇 높이는 광현. 또렷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온다.

 “ 상기군이 조금전에 다녀갔었다. 우리집에서 저녁을 들고 갔었지. ”

 “ 아빠... ”

 상기 어쩌구 하는 광현의 말에 혜빈이 살짝 난처해하는 모습을 띠고, 그런 혜빈을 바라보며 광현이 이리로 오라는듯 손짓을 하며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천천히 거실소파로 발걸음을 옮기는 광현. 무거운 그의 목소리엔 위엄마저 서려있다.

 “ 앉아서 잠깐 이야기 좀 하자. ”

 “ 아빠...저 피곤해요. 그리고 술도 한잔 했고... ”

 실제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기가 쉬울것 같지도 않고 또한 별로 내키는 대화일것 같지가 않아서인지 적당히 변명삼아 그와같은 말을 입에 담지만 광현은 한층 더 엄격한 목소리를 딸에게 건네고 혜빈은 결국 하는수없이 광현 앞으로 와서 마주 앉게된다. 광현은 아내에게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잔 내오게 하고 그것을 딸보고 한모금 마시라 한 뒤 천천히 말을 건넨다.

 “ 아빠는...일전에도 한번 이야기했지만... ”

 “ ...... ”

 “ 쓸데없는 짓 이제 그만 벌이고...이제 시집 갔으면 좋겠구나. ”

 “ 아빠아... ”

 하지만 그런 광현의 말이 불만스러운듯 뭔가 보채는듯한 투로 입을 연 혜빈. 그런 혜빈을 보며 광현이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목이 마른지 자신도 음료수를 한모금 마신뒤 그의 무거운 목소리는 여전하기만 하다.

 “ 상기군은...꼭 내가 그런 이유 때문에 입에 담는 칭찬만이 아니라... ”

 “ ...... ”

 “ 정말 요즘 보기드문 반듯하고 성실한 청년이야. 그러니 너도 그런 사람을 놓치

  게 된다면 아마 후회하게 될게다. 상기군...아버지도 그 집안과 인연이 어느덧 10

  년세월이긴 하지만... ”

 국회의원을 두차례 역임하고 이후엔 지난 10년 공기업 간부를 지낸 광현. 그런것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상기네 집안 역시 그 과정에서 알게된 인연이 있는 집안인듯 하다. 그리고 그런 집안의 아들을 광현은 막내 사윗감으로 점찍고 있는듯 하고, 허나 혜빈은 거기에 반발심을 갖고있다. 혜빈은 사뭇 목에 힘을주어 자기 주장을 펼쳐보려 한다.

 “ 아빠 아시잖아요. 저 고등학교때 문예반 활동도 했고 대학때는 학보사 기자로

  도 있었던 몸이에요. 그래서 저...저 정말 그런 저의 역량을... ”

 “ ...... ”

 “ 한번쯤 제대로 펼쳐보고 싶어서...정말 저의 능력과 역량을 제대로 인정받을수

  있는 그런 공간을 한번 찾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러니 아버지 제발... ”

 혜빈의 말을 귀담아 듣는것인지 아닌지 거기엔 별다른 대꾸가 없는 광현. 하지만 그런 광현의 모습에 더 애가타는지 혜빈의 말소리는 한층 더 간곡해지고 있다. 스스로의 열변에 목이 탔음인지 찬 음료수 한모금을 다시 들이키는 혜빈. 덕분에 술기운은 차차 가셔지는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술기운을 대화자리를 피하려는 핑계거리로 삼기는 쉽지 않아질 정도로 혜빈의 목소리는 차츰 힘이 들어가고 있다.

 “ 그리고 상기오빠도...네 뭐...저도 몇 번 만나 이야기도 해봤고...식사도 해보고

  그랬지만... ”

 “ ...... ”

 “ 상기오빠 좋은 사람인거 저도 알아요. 그건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그냥 제가

  내키지가 않아요. 상기오빠가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인건...흠잡을데 별로 없는

  사람인건 분명하지만 제가 내키지가 않는다구요. 결혼 자체도 아직 내키지도 않

  고 또 솔직히... ”

 “ 솔직히 ? ”

 “ 기왕이면 저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도대체가 요즘 세상에

  무슨 조선시대마냥 집안 어른끼리 짝지워주셔서 하는 결혼 저도 싫거든요. 그러

  니... ”

 “ 너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 ”

 자기 목소리를 드높이는 혜빈이 마땅치가 않은지 광현이 사뭇 나무라는 투로 그와같이 말하고, 살짝 딸아이가 찔끔해진 틈을 타 이번엔 광현의 말이 이어진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날따라 유난히 귄위적이고 준엄하게 들린다.

 “ 내 말은...이 애비도 이제 늙었다는 이야기다. 어느덧 애비 나이도 예순다섯...일

  반 직장은 물론이고 공무원 신분이었다고 해도 이제 정년퇴임할 나이. 그러니 이

  젠 쉬어야 할 때...이 애비한테 니 언니 둘 포함해서 딸이 셋이다만...니 큰언니,

  작은언니 이제 모두 출가(出嫁 : 시집)를 했고 이제 너만 남은건데... ”

 실제 광현에겐 혜빈 위로 혜진과 혜선이란 두명의 딸이 더 있고, 그 두 딸은 모두 이미 수년전에 시집을 간 상태다. 그것도 큰딸은 의사와 둘째딸은 검사와 그러니 모두 전형적인 우리 사회에서 그런대로 잘 나간다고 할 수 있는 집안에 딸을 모두 시집보낸 명문가의 형태를 띠고있는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광현이 막내 혜빈과 짝지워주려는 김상기란 청년도 그런대로 한창 잘 나가는 중견 기업가의 둘째아들. 그러니 그 정도면 딸 셋 나란히 모두 잘 나가는 직장이나 집안의 청년에게 나란히 시집을 보내는 그 구색을 모두 맞추게 되는 셈이다. 다만 혜빈이 여전히 그 상기란 남자는 물론 결혼 자체를 내키지 않아하고 있는것이 여전히 문제라면 문제. 그래서 광현은 다시금 딸을 설득해보려 이와같은 말을 입에 담고 있는것이다. 광현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 이 애비도 언제까지 천년만년 살수도 없는 몸이고, 솔직히 요즘은 하루가 다르

  게 몸이 지쳐가는게 확실히 예전과 내가 많이 다르구나. 늙었구나...그런것을 느

  끼는 중이다. 그러니... ”

 “ ...... ”

 “ 이런 애비 자꾸만 마음 쓰이게 하지말고 이쯤에서 그만 하고싶은거 다 접고 시

  집 가는게 좋을게야. 거듭 이야기하지만... ”

 “ 아빠아아... ”

 “ 이 애비에게 남은 소망은 다만 그것뿐이다. 그러니 그만...그 뭐...교육원이고 학

  원이고 이제 그만 접고... ”

 시무룩해진 딸의 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 광현의 말은 거듭 이어진다. 조금전 스스로 하루가 다르게 몸이 지쳐간다 어쩐다 하는 말까지 입에 담은 광현이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 준엄한 힘이 온 몸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광현의 모습이다. 혜빈은 그런 아버지의 카리스마에 눌렸음인지 더 이상 그 앞에서 아버지의 말대로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대답은 분명히 하지도 않은채 아버지의 잔소리를 조금 더 들은뒤 조용히 2층 자기방으로 올라가버린다.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운 혜빈. 공연히 상한 속 때문에 그 위에서 잠시 버둥거린다.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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