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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가수 팬픽 - 아이비 (8.마지막회) 솔로가수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2. 노인의 사연





 “ 여보게 아이비... ”

 아침식사를 한참 하던 도중 종천이 다시 아이비에게 말을 건넨다. 종천은 대체로 큰 부담없이 아이비가 손수 끓여준 참치김치찌개를 들고있는 중이다. 종천의 부름에 아이비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종천의 말이 이어진다.

 “ 이건 뭐...내가 어제,오늘 갑자기 생각한것은 아니고...한 얼마전부터 좀 생각을

  해본건데 말이야... ”

 “ ??? ”

 “ 실은 이 집을 조만간 정리하려구...그 생각을 하는 중이었어. ”

 “ 예 ? ”

 순간 아이비가 괜한 당혹감까지 띠며 종천에게 그와같이 되묻는다. 지금의 이 50평이나 되는 넓은 집. 사실 칠십이 넘은 그리고 지금 별다른 하는일이 있는것도 아닌 종천이 혼자 살기엔 너무 큰 집이긴 하다. 게다가 아들도 며느리도 없이 이렇게 혼자 사는 집이라면 차라리 정리를 할까 그런 생각도 해보는것이 그리 큰 무리가 가는 판단은 아닐것 같기도 한데 다만 아이비는 종천의 그 말에 순간 괜시리 당혹스러워지는 감정을 느낀다. 여기가 무슨 자기가 사는 집도 아니고 아이비가 종천의 식솔도 아닌 다음에야 종천이 집을 처분하든 말든 그것은 아이비가 사는 문제와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는 일 아닌가. 근데 왜 괜히 순간 가슴이 철렁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아이비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종천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대체로 솔직한 자신의 속내를 그녀에게 털어놓고 있다.

 “ 뭐 어차피...이 집이 내 소유도 아니고 아들놈 명의로 되어있는 집이긴 하지만

  ...아들녀석은 보다시피 저렇게 중이 되어버렸고...게다가 며늘아이도 내 아들놈

  과 이혼후 독립해 따로 나가 살고있는 처지. 나 혼자 단독으로 결정하기에 좀

  복잡하고 애매한 상황이 있는것만은 사실이지만...그래도 나 혼자 이렇게 넓은

  집에 혼자 사는거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

 “ 그럼...이제 앞으로 어떡하실건데요 ? ”

 아이비는 진실로 종천이 걱정되는듯한 말투로 그와같이 묻고 종천은 물 한잔을 마신뒤 아이비를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나야 뭐...아이비한테도 여러번 말한바와 같이 아들놈이 날 서울로 부르기 전까

  진 한 50-60년 세월을 농사만 짓고 산 놈이니 다른거 할줄 아는게 뭐가 있겠나.

  다만 어쨌든 그렇게...교육원에 등록을 했던 동기는...내 이 억울한 사연 소설이나

  드라마로 세상에 좀 내놓아 호소라도 하고픈 마음에 그리한것이지만...이제 그마

  저도 무산되어버린 그런 상황이고... ”

 “ ...... ”

 “ 만약 이 집을 팔게되면 그 판 돈으로... ”

 종천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어제 아들 영식을 만나러 갔을때나 그 이전 아이비를 만났을때도 언급을 한 바가 없는것을 보면 종천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는것 만은 분명해보인다. 불과 한 두달반전에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을 했건만 거기서 정신나간 노인 취급을 받으며 쫒겨나 그 뒤로부턴 한동안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아무것도 못한채 그야말로 실의에 빠진 모습으로 살아왔던 종천이 아닌가. 그것을 생각해보면 집을 팔고나서 다른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확실히 그리 오래전부터의 일은 아닌 기껏해야 아주 최근들어 떠올려진 생각인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그렇더라도 어떤 즉흥적인 생각만은 아닌것인지 사뭇 비장한 모습이 되어 종천은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 뭐 어차피 나도 이제 다 늙어 힘도 없고 한데...이제와서 다시 농사를 짓는다던

  가 하는것은 쉽지 않은일일테고...그래서... ”

 “ ...... ”

 “ 아주 시골마을은 아니고 서울 인근의 조용한 소도시에서 구멍가게라도 하나 열

  어서 장사나 하며 사는게 어떨까...그 생각을 하는 중이야. ”

 “ 구멍가게를 하시겠다구요 ? ”

 아이비는 종천의 그와같은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것인가. 어차피 아이비가 지금 종천의 인생이나 선택에 깊숙이 관여를 해야할만한 그런 권한이나 이유가 있는 그런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간의 인연이 인연이라서인지 사뭇 종천이 걱정되는듯한 표정으로 그와같이 묻고 종천은 그런 아이비를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간다. 찌개와 밥그릇은 어느덧 거의 다 비워져가고 있다.

 “ 어쨌든 뭘 하면서라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아무리 다 늙은 노인이기로

  이렇게 그냥 백수건달마냥 하루종일 집에만 처박혀 있는것도 못할짓이고...그러니

  여하튼 뭐든 하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그래서 한 생각이... ”

 “ ...... ”

 “ 이 집을 내놓고...그 판 돈으로 서울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구멍가게라도 하나

  열자. 그래서 그거라도 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자 그런 생각을 하게된거야. ”

 “ 그러면... ”

 종천의 말투로 봐선 여하튼 그와같이 하고픈 의지가 제법 있어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종천에게 어떤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라도 하는지 아이비가 그를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건넨다. 표정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 소설 쓰시는 일은 안 하시려구요 ? ”

 자신의 억울하고 기가막힌 사연을 소설이나 드라마로 써보고 싶어 교육원에 등록했다던 바로 그 종천이 아니던가. 헌데 이제 그럴 생각은 정말 없는듯한 모습을 보이며 고작(?) 구멍가게나 열겠다는 종천의 모습에 웬지 실망하는 기색마저 보이는 아이비다. 아이비의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종천의 말은 이어진다.

 “ 아이비에겐 그리고...내 주책스러운 부탁같아 보이긴 하지만... ”

 “ ...... ”

 “ 가끔 이렇게 나를 만나서 말동무라도 좀 해주면 어떻겠나 ? 내 어제도 술주정

  처럼 말하긴 했지만...나 진짜 너무 외로우이. 누구든 곁에 속이라도 허심탄회하

  게 터놓고 이야기할만한 그런 벗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요즘은 정말 그런

  생각이 간절해. 그러니 아이비... ”

 “ ...... ”

 “ 뭐...늙은이 주책같아 보일수도 있겠지만 아이비가 그런 내 말동무나 가끔 해줘.

  그리고 말했다시피 조만간 집을 처분하려면 여하튼 그런 과정도 밟아야하니 누구

  내게 좀 도움을 줄만한 사람도 필요하고 하니...아이비가 좀 내 곁에서 날 도와주

  면 안 되겠나 ? ”

 “ 제가 선생님을 도와드릴만한게 뭐 있겠어요. ”

 사실 나이 칠순이 다 될 때까지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 아들 영식이 이제 농사일 그만 하시라고 저희가 모시겠으니 서울로 오시라고 했던 그때까지만 해도 -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전형적인 촌부였고, 아직 20대 중반의 젊은 아이비는 거기다 10대 중,후반에서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성장기를 미국에서 보낸 여자다. 여기 한국땅에서 집을 팔고사고 또 그 다음에 가게를 열고 하는 문제에 특별한 지식이나 정보 같은게 없는것은 둘 다 어차피 매한가지. 하지만 홀몸인 종천으로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고 백짓장이라도 같이 들고픈 심정인건지 아이비에게 거듭 그와같이 애원을 하고 아이비는 마지못해 일단 종천에게 긍정적인 답을 해준다.

 “ 뭐 선생님 가끔 만나서 말동무 정도 해드리는건 도와드리죠. 그건 뭐 저도 어렵

  지 않은 일이니까요. ”

 그러고보면 아이비도 교육원에서 해고를 당한지 어느덧 두달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아직 그 이후 새로운 직장을 잡지 못한채 백조로 있는 처지가 아닌가. 무엇보다 앞으로 뭘 해야할지 마땅한 목표나 계획이 있는것도 아니고 미래가 불확실하긴 아이비나 종천이나 피차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애초에 종천에게 관심을 보이며 전화를 하고 만나자고 했던것이 아이비임을 생각해본다면 앞으로도 계속 칠순노인 종천의 말벗 노릇이라도 해주며 시간을 보내는것 과히 나쁘지도 않을것 같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다. 다만 종천이 드라마나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그 의지를 접은것은 좀 아쉬워하는 듯한 모습이긴 하지만 여하튼 아이비는 자신의 말동무 노릇이나 해달라는 종천의 부탁에 그런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종천의 며느리 - 정확히는 전(前) 며느리 - 선희가 종천을 찾아온것은 그로부터 몇 달뒤의 일이었다. 실은 집을 팔기로 결심한 종천이 그 일을 한참 진행중일때 그가 먼저 연락을 취해 선희가 찾아온 것이다. 비록 아들과는 이혼한뒤 아이들과 따로 나가 살고있는 전 며느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이 이전에 살던 집이니만큼 사전에 언질정도는 주는게 도리일것 같다는 종천의 판단하에 그리한 것이었다. 종천을 찾아온 선희는 종천이 집을 판다는 이야기에 그리 크게 놀라지는 않은 모습이었고 대체로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냐 ? 아이들도 잘 있고 ? ”

 여기서 아이들이라 함은 선희와 영식 사이에 생긴 아이들 즉 종천의 손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선희는 그 물음에도 대체로 무덤덤하게 대답을 해준다. 선희의 표정은 대체로 이제부턴 종천이 어떤 선택을 하든 무엇을 하든 자신이 관심둘 일은 아니라는 그런 분위기였다.

 “ 아이들이야 뭐 학교 잘 다니고 잘 지내고 있죠 뭐. 그나저나 집을 파신다니...

  갑자기 그래야만 하는 이유라도 생기신거에요 아버님 ? ”

 이혼을 한 처지이긴 하나 아직 종천을 ‘아버님’이라 부르고 있는 선희. - 하긴 딱히 다른 부를만한 호칭이 있는것도 아니니 - 일단 갑자기 집을 팔게된 무슨 부득이한 사정이라도 생긴것인가 싶어 그와같이 묻고 종천도 대체로 담담한 어조로 대답한다. 아들 영식이 그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집을 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종천과 선희의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좋아보이지도 않는 그런 사이같은 느낌이다. 종천의 말이 이어진다.

 “ 무슨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긴것은 아니고...그저 노인네 혼자 이 넓은 집에 살

  다보니 너무 적적하고 쓸쓸해서 견딜수가 있어야말이지. 여하튼 그래서 집은 팔

  고 그 판 돈으로 나 혼자 다른 동네로 가서 작은 가게나 하나 열어 장사나 하면

  서 남은 여생을 보낼 그럴 참이다. 하지만 다만 이 집 소유주가 아범이지 난 아

  니지 않느냐. 그래서 그에대한 상의는 해야겠기에 널 부른거다. ”

 “ 저야 뭐... ”

 막상 종천으로부터 그와같은 이야기를 듣자 쭈볏거리며 말을 얼버무리는 선희. 종천을 잠시 흘깃 바라보고는 역시 여전히 별다른 억양없는 톤으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다.

 “ 저야 뭐...아버님이 이 집을 어떻게 하시든 관심가질 사안은 아니에요. 저야 뭐

  이혼할 때 그 사람으로부터 위자료도 받았고 양육권도 넘겨받았고...그러니 뭐 그

  이상 원하는건 없어요. 어쨌든 저도 약사로 저 하는일도 있고...다 그런대로 아이

  들 혼자 키우는데는 무난하니...이 집은 아버님 하시고 싶으신대로 마음대로 하세

  요. ”

 여하튼 선희는 종천이 집을 처분하는 문제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나 이의제기는 없는듯 하다. 따지고보면 선희가 이혼전에 남편 영식과 함께 마련한 집이니만큼 그 소유권이나 지분을 요구하거나 주장할수도 있을터인데, 그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별 말이 없는것을 보면 선희는 그런대로 별다른 재산욕심도 없고 성품도 선해보이는 그런 여자인 듯한 느낌이다. 다만 그녀 역시 전 남편 영식이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중이 된 것에 대해선 여전히 유감이 남아있는지 그에 대한 불만을 살짝 토로한다.

 “ 저요 솔직히 제가 아버님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뭣 하지만...그 사람도 참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더라구요. 아닌말로 제가...그 사람 성정이 아

  버님 반만 닮았더라면 좀 좋았을까 그런 생각 한적 한두번이 아니에요. ”

 다른것은 몰라도 멀쩡한 처자식이 있는 40대 가장으로 어느날 갑자기 그와같은 선택을 한 것 누가봐도 무책임하고 황당한일이 아닌가. 헌데 그것을 그것도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자 아내의 입장에서 그런일을 겪었으니 그때의 기가막힘은 또 오죽했겠는가. 선희도 새삼 그때의 억화심정이 되살아나는듯 해 순간 눈자위가 파르를 떨리기까지 하고, 종천은 이미 1년 반도 더 지난일 그때의 일을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는 않은지 그쯤에서 그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하는 뜻을 내비친다.

 “ 됐다. 그만하자. 이제와 다 지난이야기 해봐야 서로 마음만 상하지. 어쨌든 난

  이 집을 파는 문제에 대해 네 의견도 조금은 들어주는게 도리아닐까 싶어 부른

  거고...여하튼 넌 집 파는 문제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니 그리 알겠다. 그럼 정말

  이 집 팔고 그 돈 내 마음대로 어찌하든 아무 이견 없는거지 ? ”

 “ 네 아버님. 말씀드렸잖아요. 전 뭐 더 이상 다른 욕심은 없다고...그러니 아버님

  정 그렇게 여기서 혼자 사시는게 그리 적적하셨으면 집 파시고 따로 다른 거처

  를 마련하든가 하세요. 그리고 그이 문제 너무 마음아파 하시지 마시고...어차피

  각자 자기 인생인데...아버님도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생 마음 편히 사시구요. ”

 사실 나이 40을 조금 넘긴 영식이나 선희 정도의 세대라면 부부간의 재산분할 문제라던가 아내로서의 집이라던가 재산에 대한 소유권 주장 같은 그런 부부간 재산 문제에 대한 평등권,소유권 같은 개념은 충분히 있을법한 그런 세대다. 무엇보다 선희도 직업이 약사이니 그만큼 대학도 나와 그만한 전문직에 종사하는 나름 ‘깨어있는 여성’이 아닌가. 헌데 그 정도 되는 선희가 원래 전 남편 영식과 살던 집을 종천이 자기 임의대로 처분하겠다는데 거기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것을 보면 선희란 여자 생각보다 꽤나 성정이 착하고 재산 욕심도 별로 없는 그런 여자인것 은 분명한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집 처분 문제는 별다른 걸림돌 없이 무난히 진행되게 되었다. 선희는 그 과정에서 몇 번 종천을 찾아와 그가 집을 팔고 그 재산으로 구멍가게를 하든 무엇을 하든 새로운 무엇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자신이 도와줄수 있는 한도내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협조를 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그렇게 이기적인 남편 영식과는 달리 전(前) 시아버지 종천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있는 꽤나 착한 여자다. 그런 여자가 한때 종천의 며느리였던걸 생각해본다면 그래도 종천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나 할까. 다만 그렇게 집 처분 문제가 마무리 되어갈때쯤 선희는 종천과 늘 붙어다니는 아이비가 신경이 쓰이는지 별도로 그를 불러서는 몇가지 물어본다.

 “ 근데...저기 아가씨...잠시만요. ”

 종천이 자신이 너무 외롭고 쓸쓸하니 가끔 자길 찾아와 말벗이나 되어달라 부탁을 했었던 아이비. 그리고 아이비는 그런 종천을 실제로 자주 찾아와 곁을 지켜주곤 했다. 다만 아이비도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새 가게를 사고 하는 문제는 아는것이 별로 없어 종천을 곁에서 지켜주는것 외엔 실무적으로 도와줄만한 일이 거의 없었고, 그 문제를 거의 다 선희가 맡아서 처리를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종천과 늘 같이있는 아이비가 신경이 쓰이지 않을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진지하게 그녀를 별도로 불러 궁금한것을 물어보려 한 것이다.

 “ 근데 도대체...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물어본다 물어본다 하다가 늘 기회를

  놓쳤는데, 아가씬 도대체 저희 아버님하곤 어떤 관계인거에요 ? ”

 “ 네 ? 아...저 그게요... ”

 아이비는 약간 당혹스러운듯 잠시 망설이는듯 하다 선희가 납득하게끔 대충 해명은 해준다. 아이비로서도 이런 선희와의 대화가 다소 거북하고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 전 그냥...선생님께서 노인대학에 등록하셨을때...그때 거기서 일하던 사무처 직

  원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 사연이나 처지가 너무 딱해서 가끔 찾아 뵙고 이렇게

  말동무나 해드리고 있는 그런 몸이에요. 그 외 다른것은 없으니 오해하진 말아주

  세요. ”

 “ 노인대학 사무실 직원이었다구요 ? ”

 정확히는 종천이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하려 했을때 그곳의 직원이던 아이비 아닌가. 다만 종천이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하려 한적이 있었다는것을 그의 전 며느리 선희가 알면 또 어찌 받아들일지 몰라 일단 그런식으로 얼버무린것이다. 무엇보다 종천이 교육원에 등록을 했던 주 목적이 나이 40에 잘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때려치우고 중이 된 아들의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 때문에, 너무 기가막히고 억장이 무너져 그 억울한 사연이나 소설이나 드라마로 써서 세상에 알리고픈 그게 주된 이유 아니었던가. 따라서 그런 이야기를 선희한테 하는것은 더더욱 난감한 일이다 싶어 종천이 노인대학에 다니신적이 있다고 얼버무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 그런곳의 사무처 여직원이 그런 노인대학에 등록하는 노인이 한둘도 아닐텐데 그중 하필 유독 종천에게 관심을 두어 자꾸 찾아오는것도 좀 이상하지 않는가. 아이비는 그렇게 자신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선희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설명을 좀 더 덧붙인다.

 “ 너무 이상하게 색안경쓰고 보시진 말아주셨으면 해요. 그냥 전 선생님께서...너

  무 처지도 딱하시고 사연도 너무 가슴아파 보여서...그런 선생님 위로나 해드리

  고 파서 가끔 찾아오는것 뿐이에요. 그 외 다른 의도는 없으니 너무 이상하게 보

  시진 말아주세요. ”

 선희의 입장에서 아이비의 해명이 제대로 납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희는 일단 아이비 앞에서 사뭇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보이며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어쨌든 아이비보단 십여살위인 어른 아닌가. 바로 그런 자신의 입장은 분명해 해두고싶은듯한 그녀의 태도다.

 “ 뭐 어쨌거나...전 그이(선희의 전남편이자 종천의 아들 영식)하고도 이혼하고 아

  이들 양육권 넘겨받아 따로 살고 있는거니까...전 시아버지 사생활에 이러쿵 저러

  쿵 간섭하고픈 생각은 없어요. 뭐 어쨌든 아버님도 너무 적적하고 쓸쓸해 그 큰

  아파트 팔고 그 돈으로 다른데서 생활하고 싶으시다니까 그 마음 그런대로 이해

  도 가서 협조해 드린거구요. 하지만 저도 뭐 이후 더 이상 아버님과 인연 가질

  생각은 없네요. 굳이 그래야할 이유도 없을것 같구요. 그러니...아버님 인생은

  아버님 인생이니 제가 더 이상 간섭하진 않을께요. ”

 그렇게 말하는 선희의 태도는 종천과 자신은 이제 확실하게 남남임을 못박아 두려는 의도다. 아이비는 그녀대로 거듭 자신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입에 담고 선희는 아이비와는 별로 긴 시간 이야기하고픈 생각이 없는지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그로부터 다시 몇 달이 지났고 그 사이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기도 했다. 종천은 그때쯤에서야 서울 강북의 OO동에서 거처해오던 50평짜리 아파트를 팔고, 그리고 그 돈으로 지방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나 열게 되었다. 원래 종천은 서울 인근지역에서 구멍가게를 할 생각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사정이 여의치않아 서울 인근지역에 그와같은 가게를 내진 못했고 천안의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 상가건물에 가게입주가 이루어졌다. 어차피 종천의 주 목적은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작은 가게라도 하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픈 것이었으니 그 지역이 경기도가 되든 천안이 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내에 가게 입주를 하고 인근 동네에 작은 보금자리까지 마련을 했는데, 한편 그 무렵 종천은 아이비와 사실상 동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이비는 원래 애초에 혼자된 노인네 말동무나 되어달라는 그의 부탁이 있어서 가끔 만나 그의 적적함이나 달래주며 친분을 유지해오고 있었는데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비도 자신이 살던집을 처분하고 종천과 함께 살기를 희망한것이다. 그러고보면 아이비도 교육원에서 해고된지 그 사이 반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딱히 새로운 직장을 잡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앞날이 불확실했던 그녀가 궁극에 한 선택이 종천이 되어버린것이다. 그래서 아이비와 종천 마흔두살이나 나이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천안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고 함께 구멍가게를 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아이비와 종천의 그와같은 동거와 특히 그녀의 파격적인 행보가 가능했던것은 그녀가 미국에 있는 부모와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점이 그것을 쉬이 이뤄지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아이비가 부모와 가까운곳에 있어 그녀의 부모가 아이비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할수 있는 그런 위치였더라면 아이비의 그런 선택은 쉽지 않았을것이다. 허나 아이비의 경우 미국의 부모와는 근래들어 전화통화도 어쩌다 1년에 한두번 할 정도로 연락을 주고받는일이 뜸해졌고, 몇 년전까지 얹혀살던 이모네와도 아이비가 독립해서 따로 살게 되면서 왕래가 줄어들어 아이비는 그야말로 그녀가 독자걱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게 가능해졌던 것이다. 만약 아이비의 부모든 이모든 그녀의 이와같은 선택을 알고 있었다면 기를 쓰고 반대했을것이란 것은 불을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여하튼 이와같이 종천과 동거에 들어간 아이비. 종천 역시 아들은 그렇게 출가해 스님이 되었고 그 아들과 이혼한 며느리 역시 그때부터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따로나가 살고 있었으므로 종천의 사생활을 굳이 간섭하거나 해야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실제 종천의 며느리 선희는 아이비를 만난 자리에서도 전 시아버지인 종천의 사생활은 자신이 관심가질 사안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박지 않았던가. 따라서 그야말로 종천과 아이비의 지금 이와같은 기묘한 관계는 주위에 아무런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 전적으로 그네들 자유 의사로만 이루어지는게 가능했던 것이다. 하루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우며 종천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아이비를 안아본다.

 “ 아이비...고마와... ”

 나이 어느덧 70대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접어드는 종천. 젊은 시절엔 자신이 공부를 못한게 한이 되어 하나있는 아들이라도 출세시키기 위해 오직 그것에 자기 인생을 걸고 살아온 그런 종천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 아들이 명문대를 나오고 유력 언론사에 취직 간부자리에 올랐을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인생이 그래도 헛되지는 않았다는 나름의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던 종천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아들 영식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잘 나가던 신문사 기자생활을 때려치우고 중이 되겠다며 출가를 했고, 그때부터 종천의 인생도 모든 것이 바뀌어져버렸다. 무엇보다 자신의 70년 인생중 상당수를 바쳐 투자해온 아들이 그의 나이 40을 넘겨서 그런 기가막힌 선택을 한것이 종천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 분하고 억울하고 기구한 사연이라도 소설이나 드라마로 써보고 싶어 교육원에 등록을 했으나 실성한 노인 취급을 받으며 망신만 당하며 쫒겨나기까지 한 몸.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종천은 이대로 자기 인생이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것만 같은 막막한 그런 상태였다. 앞으로 이제 대체 무엇을 해야할지 뾰족한 수가 보이지도 않고, 차라리 어차피 이제 살 날도 얼마남지 않은 늙은이니만큼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했었다. 다만 그렇게까진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그런대로 살아남아 하루하루를 보내던 종천. 그런 종천에게 뜻밖의 인연으로 찾아온것이 아이비다. 처음에는 교육원에 등록을 할때 수강신청자들 접수를 받던 일개 말단 직원에 불과했던 그녀. 하지만 종천이 첫 강의때 망신을 당할대로 당하며 쫒겨나고 아이비는 되려 그런 종천에게 대관절 무슨 사연이 있는것인가 궁금해서 얼마후 그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종천은 아들도 그렇게 되고 며느리까지 떠난 마당에 차라리 말년에 적적함이나 달래는 말벗으로나마 아이비를 만나고 싶었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뜻하지 않게 진전되어 이제 둘이 함께 사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종천으로선 아이비를 품에안는 감회가 그저 여러 가지로 새롭기만 하다.

 “ 고마워 아이비... ”

 무엇보다 나이 70에 대단한 횡재 아닌가. 종천이 무슨 돈많은 재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나가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아닌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농사짓던 학력도 일천한 촌부에 불과했던 그런 몸이다. 게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중이 된, 그런 기가막힌 사연을 가진 늙은이가 이 나이에 새파랗게 젊은 여자와 이런 사이가 되리라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종천은 그야말로 나이 칠순에 정말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하게 된 것이다. 아이비는 종천의 품에 안겨 그녀도 그녀대로의 회한에 사로잡힌다.

 “ 선생님... ”

 “ ...... ”

 “ 오히려 제가 선생님께 감사함을 표시하고 싶어요. ”

 “ 내게 감사하다구 ? ”

 종천은 몰라도 아이비가 특별히 그에게 감사할만한 일이 있을까. 그녀의 경우엔 중학교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곳 생활에 적응을 못했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야할 나이가 되어서 도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동안은 이모네서 얹혀살면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우연히 알게된 학교 동창부모의 권유로 잠시나마 방송작가 교육원 사무실에서 일하게까지 된 그녀. 하지만 그 교육원에서도 꼭 종천의  문제가 꼭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해고를 당한 몸. 그렇게 앞날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만나게 된 사람이 종천이다. 그러나 종천은 무슨 젊고 건장한 청년도 아닌 칠순의 노인. 대체 아이비는 그런 종천의 어떤점에 끌렸던것일까.

 “ 처음엔 저도 선생님과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진전되리라곤 생각을 못했어요. 그

  런데... ”

 “ ...... ”

 “ 선생님의 사연을 쭉 듣고나서 선생님에 대한 동정심...연민의 정 그런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의 그렇게 아들도 손자도 며느리도 없이 혼

  자사는 그런 딱한 모습을 보니... ”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비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 그런 선생님의 남은 여생을 제가 지켜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에요.

  전 정말 선생님께 다른것은 바라는게 없어요 다만... ”

 “ ...... ”

 “ 남다르게 기구한 삶을 살아오신...그렇게 상처도 많고 사연도 많으신 선생님 곁

  에서... ”

 아이비는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 선생님의 인생을 지켜드리는 하나의 빛이 되고 싶었을 뿐이에요. ”

 “ 하나의 빛이라... ”

 “ 네에...선생님... ”

 한겨울이라 추운 날씨지만 그래도 난방이 되어있는 집이라 안에는 훈훈한 온기가 감돈다. 하지만 그 난방장치의 온기보다 한층 더한 웬지모를 따스함이 느껴지고 있다. 아무래도 아이비의 종천을 향한 진실된 따스한 마음 때문인것 같다. 그런 아이비의 마음이 종천의 마치 늦가을 날씨처럼 서늘했던 가슴 한켠에 새로운 위안으로 자리잡게 된다. 안온함으로 피어오른다.

 “ 선생님의 남은 여생에 작은 희망이 되어드리는 하나의 작은 빛줄기가 되어드리

  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선생님의 남은 여생을 지켜드리는... ”

 “ ...... ”

 “ 작은 버팀목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

 종천이 아이비를 꼭 안아본다. 방에 불이 꺼지고 두 사람은 이부자리에서 깊은 관계를 맺게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것이다. 새로운 역사를 일구고 있는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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