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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팬픽 - 한지민 (8) 기타 팬픽 (연예인, 그외)




                               부제 : 정순왕후 스토리 현대판 버전 재해석



 두달여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나고 그 사이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었다. 병일은 여전히 호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중이었으며, 그곳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자신보다 열 살 많은 김민아라는 여자와도 점차 가까워져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결혼말이 오간다거나 무슨 이성으로써의 교제를 전제로 하고 만나는 그런 단계로까지 발전한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 이후로 대체로 두 사람은 함께 만나서 식사를 한다던가 차를 마신다던가 심지어 영화를 보는 일도 종종 있었다. 다만 민아의 경우엔 어쨌든 이미 두 번이나 이혼을 한 경험이 있고, 더욱이 두 번째 이혼을 한 때로부터는 아직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라 남자와 어떤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는것까지는 대체로 조심하고 경계하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병일도 그저 한 직장에서 일하는 그리고 일전에 처음엔 병일이 자신이 도둑으로 몰릴뻔한것을 구해주고, 그 다음엔 자신이 병일이 호텔 욕실 수도관 수리중 다쳤을때 도와준 그렇게 한번의 신세갚음이 오고간 그런 다소 특별한 인연이 있는 직장동료이자 동생 정도로만 생각하고 만나는 중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다만 그 사이 병일이 그의 바램대로 민아의 집을 실제 방문하는 일은 한번 있었다. 처음 병일이 하루는 대뜸 ‘평범한 삶’이란게 어떤거냐며 누나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집에 한번 가봐도 되겠느냐는 말을 했을때, 민아는 마치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 보는듯한 호기심으로 대하는 것 같다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와같은 민아의 반응에 일단 병일은 사과하긴 했지만, 그로인한 민아의 불쾌한 감정은 한동안 쉬이 가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병일과의 만남은 종종 이어져가고 있는 가운데, 민아가 정 그러면 우리집으로 한번 초대하겠다며 병일을 자신의 집으로 부른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쉬는날에 약속을 정하고 병일이 민아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두 번 이혼한 전력이 있는 민아는 달동네 마을의 한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단칸방까지는 아니었지만, 다섯평이나 될까하는 거실 겸 부엌으로 쓰는 공간 그리고 그 거실 크기의 절반도 채 안되는 방과 작은 화장실겸 욕실 그것이 전부인 집이었다. 무엇보다 집안으로 들어설때 풍기는 다소 퀴퀴한 냄새가 순간 병일을 당혹스럽게 할 지경이었다. 민아에겐 두 번의 이혼 과정을 거치며 생긴 아이가 셋이라더니 그 세 아이가 자신들의 엄마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서는 웬 낯설고 젊은 청년 병일을 다소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얘들아...인사드리렴. 음...그러니까 이쪽은...그래, 그냥 삼촌이라 하는게 좋겠구

  나. 엄마랑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삼촌이야. 그런데 이 삼촌이 너희들 어떻게 사

  는지 궁금하다고 해서 한번 이렇게 모셔온거야. 어서 인사 드리렴. ”

 “ 안녕하세요... ”

 민아는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선 딸 둘을 두었고, 두 번째 결혼에선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들은 지금 나이가 어느덧 9세,7세. 그러니 마냥 찢고 까불고 할 만한 나이는 어느정도 지났다고 봐야 하는것일까. 민아의 두 딸은 다소 어색해하는 모습도 보이면서 제법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고, 다만 아직 세 살도 채 안된 민아가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막내아들만큼은 낯선 병일이 그런대로 금방 친숙하게 느껴지는지 달려들며 애교를 부렸다. 민아가 그런 막내를 잠시 만류했다.

 “ 영호야...삼촌한테 그럼 못써. 자...이리오렴. ”

 병일이야 자신한테 달려들며 안기는 어린아이를 그런대로 받아주었지만, 민아 입장에선 병일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막내가 걱정이 되는지 타이르며 자기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했고 그렇게 자신이 사는집을 보여주며 병일에게 말을 건넸다.

 “ 보다시피 우린 이렇게 살아. 그런데 원...이렇게 사는 모습이 그리도 궁금했었

  니 ? ”

 병일이 원래 궁금하고 바랬던것이 ‘평범한 삶’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두 번 이혼하고 아이 셋과 함께 이런 비좁은 집에서 함께 사는 민아의 삶은 ‘평범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말할수 있겠다. 여하튼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축에 속하는 민아. 병일은 괜시리 착잡해져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밥차려 줄게. 얘들아...너희도 배고프지 ? 조금만 기다려

  . 오늘은 엄마가 특별히 맛있는거 해줄게. ”

 여하튼 이렇게 자신의 집까지 모셔온 손님인 병일을 위해 민아가 별식을 차려주었고, 덕분에 모처럼만에 맛난 특식을 먹게된 아이들도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다. 그렇게 병일은 그날 하루를 민아의 집에서 보낸뒤 강남의 으리으리한 저택인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었다.

 “ 누나... ”

 새해가 되고 한 두주 정도가 지난 어느날. 병일은 내심 뭔가 작심한것이라도 있는듯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1층으로 내려와서는 지민을 불렀다. 뭐 설마 갑자기 특별한 일이야 있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지민은 그런 병일과 마주 앉았고, 병일은 사뭇 긴장된 얼굴로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문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누나...저...할아버지랑 약속한게...저 맡아주기로 한게 저 결혼할 때 까지만이라

  고 했었죠 ? ”

 “ 그래. 그거야 뭐...외형적인 약속은 분명히 그랬지. 하지만 뭐... ”

 “ ...... ”

 “ 그래도 어쨌든 지금까지 누나,동생 하면서 살았는데 뭐 설사 니가 결혼한다고

  완전히 연 끊고 살 이유야 없는거고...뭐 그 뒤에도 왕래나 교류는 계속 할 수

  있는거겠지. 그런데 갑자기 그게 왜 ??? ”

 어쨌든 지난 20년 병일을 키우고 돌봐온 지민이니 병일이 설사 내일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지민이 당장 이 집에서 나간다던가 서로 안 보고 산다던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을것이다. 다만 그렇게 병일과 결혼하는 일이 생긴다면 병일의 아내가 혹 불편해하는 일이 있을수도 있으니 지민이 나가 따로 산다던가 그 정도의 협의는 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갑자기 그런 문제를 논할만한 상황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지민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병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헌데 병일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바로 자기가 하고픈 본론의 이야기를 꺼냈다.

 “ 누나... ”

 “ 허허...참...갑자기 대체 무슨말을 하고 싶어서 이러는거야 ? ”

 병일의 분위기를 보니 뭔가 심상찮은게 있긴 있나 보구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설마 별일이랴 하는 방심을 여전히 하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지민. 병일이 마침내 지민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 누나...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

 “ 뭐...뭐라고 ??? ”

 “ 결혼해서 함께 살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

 “ 뭐어 ? ”

 전혀 생각지도 못한 - 더욱이 아직 20대 중반의 나이면 요즘 세상에 조금 이른 결혼이기도 하다 - 이야기가 병일의 입에서 나오자 그제서야 눈이 휘둥그래지는 지민. 막상 그와같은 이야기를 꺼내자 더더욱 몸과 마음이 떨려오는지 병일은 평정심을 다소 잃은 떨리는 말투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 누...누나에게 그래도 허락 정도는 받아야 하는것 아닌가...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씀 드리는거에요. 누나...저 결혼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그러

  니 허락해주세요 누나 !!! ”

 병일의 그와같은 말을 듣는 순간 지민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애초에 기선이 자신에게 했던 부탁이 자신의 은혜를 갚는셈 치고 병일이를 결혼할때까지만이라도 좀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병일이를 맡는 일뿐만 아니라 내심 기선은 하나뿐인 손자인 병일이 자신이 생전 못 다한 뜻을 이루어주길 바랐던 사람. 다만 손자에게 너무 강요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헌데 실제로 병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이후의 행보는 생전 그와같은 기선의 바램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길을 가고 있었다. 그것이 지민을 나름 고민에 빠지게 만들면서도 아직까지는 행여 병일이 마음상해 할까봐 수수방관하고만 있었는데, 그 병일이 이젠 아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결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과연 이 일을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지민의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한 가운데 병일은 어느새 지민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애원하고 있었다.

 “ 누나...제발요. 저 지금은 이제 그 여자 없으면 못 살아요. 그러니 누나...제발 제

  결혼 허락해주세요. ”

 “ 얘 !!! 얘 !!! 그러지말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원 녀석두...그런일로 무슨 무릎

  까지 꿇고 그러니 ? 일단 일어나 앉아.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이

  제 그만 일어나 앉으라고. ”

 그렇게 병일을 진정시켜 자리에 다시 앉게하고,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 하다가 평정심을 되찾은 목소리로 천천히 병일에게 말을 건넨다.

 “ 그래...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니...어떤 사람인지나 좀 물어보자. 그래, 대체

  어떤 사람이니 ? 뭐하는 사람이야 ? ”

 “ 같은 호텔에서 일하면서 알게된 여자에요. 하는일은 청소부구요. ”

 “ 어...그래... ? ”

 어차피 지민은 만약 병일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경우 그 상대여성의 배경이나 직업 같은것은 따질 생각이 없었다. 지민 자신도 어차피 그렇게 잘난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도 아니고, 게다가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뒤 기선을 만나기 전까진 고작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그런 여자가 아니던가. 그런 자신이 병일이 사귀는 여자의 환경이나 직업 따위를 따지는것 자체가 우스운일이기도 하고, 지민이 무슨 병일에게 배경좋은 괜찮은 여자를 소개시켜줄만한 그런 인맥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겨우 같은 호텔에서 일하는 청소부라니. 약간 실망한 기색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여하튼 그런 문제를 자신이 지적할 일은 아니라 판단하고 그런대로 수용하기로 한다. 헌데 그렇다면 정말 황병일 이 녀석은 그 호텔에서 만난 청소부 여자랑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의 할아버지 기선이 손자에게 내심 바랬던 (정치권쪽으로 나가서 할아버지가 정치로 이루고 만들고 싶었던 세상, 그것을 좀 만들어 달라는) 그 길과는 전혀 다른길을 계속 가게 되는것 아닌가. 병일은 진짜 그렇게 평범한 여성과 만나 직장생활 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의사인듯 하다. 병일에게 비록 할아버지의 뜻을 꼭 이어받아야만 한다고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틈틈이 병일에게 기선이 자신에게 일러주었던 말이며 심지어 그가 손자앞으로 남긴 유산까지 얼마전에 내보여주기까지 한 지민. 그렇게 지민은 병일에게 이미 기선이 그에게 남긴것을 보여줄것을 다 보여주었는데, 그 병일은 정작 할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는 길을 가고있다. 그리고 이렇게되면 결과적으로 지민 역시 기선이 자신에게 했던 당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것이 되지 않는가. 바로 그 점이 지민을 여전히 고민과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것이다. 혼자 한참을 다시 고민하는듯 하던 지민이 다시 병일에게 말을 건넨다.

 “ 뭐 어쨌거나...니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나야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만...여

  하튼 직업은 지금 그 호텔에서 일하는 청소부라구 ? ”

 “ 네, 누나. ”

 “ 나이는 ? ”

 “ 그게 저어... ”

 나이를 묻자 결국 망설이게 되는 병일.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된 이상 정면돌파 하는 수 밖에 없다 생각하고 사실대로 밝히기로 한다. 어차피 숨기지 못할 일이라면 처음부터 사실대로 밝히고 밀어붙이자. 그게 병일의 판단인듯 하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 시...실은 저보다 열 살 많은 연상의 누나에요. 그리고 두 번 이혼한 여자구요.

 ”

 “ 뭐...뭐라구 ??? ”

 만약 지민이 지금 손에 물컵 같은것을 쥐고 있다면 그것을 떨어뜨리거나 입에 머금은 물을 뱉어내기라도 했을것 같을 정도로 지민은 무척이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병일이 사귄다는 여자가 호텔 청소부라는것까지도 그런대로 수용하려던 참이었는데, 거기에다 두 번 이혼한 열 살 연상의 여자라니. 지민으로선 그저 기가막힐뿐이다. 하지만 병일은 계속 그런 지민에게 애원한다.

 “ 누나...비록 나이도 많고...또 두 번 이혼한 상처가 있기도 하지만...그래도 혼자

  몸으로 아이 셋 키우며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런 누나에요. 저 그 누

  나를 지켜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누나...저 그 누나와 결혼해 살고 싶어요. ”

 “ 자...잠깐 근데 아이라구 ??? 그 여자...아이도 있다는 소리야 ??? ”
“ 네, 누나. 이혼은 했지만 전 남편과 사이에 아이는 있는거잖아요. 두 번의 결혼

  생활에서 있었던 두 명의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 셋이 있어요. 하지만 어

  쨌든 자기 아이니까 자기가 거두어야 하잖아요. 그 누난 그런 누나에요. 전 그리

  고 그런 누나의 책임감과 성실함이 마음에 들고요. ”

 “ 지금 니가 그런 여자하고 결혼하겠다는 소리야 !!! 두 번 이혼에 두명의 전남편

  과 사이에 애까지 셋인 여자를 ??? ”

 지민은 그제서야 마치 금지옥엽같이 키운 외동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재벌가 사모님 같은 목소리로 소리를 꽥 지른다. 사실 병일과 불과 열여섯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지민은 그래도 지금까지 병일의 마음을 그런대로 잘 이해해주려 했었고, 또 실제 병일과 특별히 세대차이나 가치관의 차이 같은것은 나지 않는다 생각하고 살아온 터였다. 헌데 지금 그 병일이 두 번 이혼한 열 살연상의 그리고 전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까지 셋인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니. 이건 지민의 평소 상식과 가치관에도 너무 벗어나있는 일이기에 기가막히고 놀라고 황당해질수밖에 없다. 도대체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병일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있던 황병일이 맞나 그런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래도 여섯 살때부터 지난 20년 자신이 직접 돌봐온 그 병일이건만, 열 살 연상의 두 번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당당하게 거듭 밝히는 병일의 모습은 흡사 어디 먼 외계에서 온 사람을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 지경이다.

 “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

 온 몸에 힘이 쭉 빠진것만 같은 그런 목소리로 지민이 말한다. 막상 병일의 그와같은 이야기를 듣고나니 지금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 끝에 이 사안에 대한 결론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 것이다. 지민의 그와같은 태도에 병일이 안타까와진다

 “ 누...누나... ”

 “ 일단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지금 내가 뭘 어떻게 결심해야할지...결정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그러니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구. ”

 그렇게 말하고 일단 자리를 뜬 지민. 혼자 자신의 방에서 여러시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 어이없고 기가막힌 일이었다. 황기선 회장이 죽기전에 자신의 어린 손자 병일을 부탁하며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러나 너무 강요는 하지 말라며 결국 중요한것은 당사자의 선택이라고 말하던것들이 있어 병일이 한국에 들어와서 엉뚱하게 대학을 심리학과를 전공하겠다고 할때도,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을때도, 그러다 갑자기 호텔에 취직한다 할때도 그냥 저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었다. 헌데 그렇게 자기 하고싶은대로만 그냥 놓아둔것이 화근이었던것일까. 이젠 심지어 자신보다 열 살 많은 애딸린(그것도 세명이나) 두 번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겠다니. 대체 병일이 이 녀석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것인가. 어떤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자리잡아있기에 나이 20대 중반에 접어들어 이런 선택을 한단 말인가. 정말 혼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난 병일을 불러세웠다. 출근을 해야하는 날이라 병일은 출근을 서두르고 있을때였다.

 “ 그 여자...연락처나 좀 줘봐. ”

 “ 누...누나... ”

 어제 자신이 이야기한 결혼문제. 그것과 관련된 것이라면 결국 지민이 자신이 사귄다는 여자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의미 아닌가.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긴 하지만 아직 지민의 의도를 몰라 당혹스러워하는 병일. 지민은 그런 병일을 거듭 재촉한다.

 “ 어쨌든...너 내 허락은 받아야한다 생각하고 그런 이야기 했을거아냐. 그러니...그

  여자 연락처나 좀 가르쳐달라구. 내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는 해봐야 할테니... ”

 “ 누나... ”

 하지만 웬지 난감해지는 병일. 병일의 그런 태도에 지민이 살짝 화를 낸다.

 “ 이 녀석이...가르쳐주기 싫다는 소리야 ? 그럼 나한테 뭐하러 이야긴 했어 ?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냥 니 마음대로 결정해서 결혼해 살 생각이면, 굳이 나한테

  까지 이야기할 이유가 없는거아냐. 그러니 어쨌든 니가 내 허락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거라면...잔말말고 그 여자 연락처나 가르쳐줘. 글쎄...내가

  직접 이야기한대두. ”

 결국 하는수없이 병일은 민아의 연락처를 가르쳐주고, 지민이 병일이 좋아한다는 여자의 이름을 묻자 그것까지 가르쳐주었다. 지민은 조만간 자신이 병일이 좋아한다는 4민아라는 여자를 직접 만나보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병일은 그런 지민을 불안하고 다소 언짢은 눈빛으로 바라다본다.



 지민이 민아에게 연락을 취했다. 지민은 그녀에게 병일과 좀 알고 지내는 여자라며 할 이야기가 있으니 좀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병일이 어릴때 부모님을 잃고 그 뒤에 친척누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이야기해 그렇게만 알고있는 지민으로선 뭔가 짐작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조만간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하고 그리고 약속날짜를 정했다. 주말 오후에 약속을 정하고 약속당일 민아는 약속장소에 나갔다. 지민과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시내에 있는 한 고급스러운 커피숍이었다. 커피숍에 들어섰을때 민아는 비교적 분위기가 괜찮은 좌석에 앉아있는 한 늘씬한 키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한편 지민은 민아를 만나기 전에 병일이 휴대폰에 지민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저장해둔게 있어, 그것으로 민아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민아를 알아본 지민이 말을 건넨다.

 “ 김민아...씨 ? ”

 “ 그쪽이...그럼... ? ”

 자신을 알아보는 여성을 보고 민아가 곧 그와같이 짐작하고 말을 건넸고, 지민은 그런 그녀를 보며 차분하고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한지민이라고 해요. ”

 “ 아, 네 안녕하세요. 전 황병일씨와 같은 호텔에서 일하는 김민아라고 합니다. ”

 “ 일단 편히 앉으세요. 그리고 차라도 한잔 시켜 주문하고 차분하게 이야기 나누

  도록 하죠. ”

 그리고 차 주문부터 먼저 하는 지민. 두 사람이 주문한 차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 뭐 이름이야 이야기한다고 제가 누구인지 구체적 신분을 알수야 없는 노릇일테

  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전 병일이와 한 집에 사는 여자에요. ”

 “ 아, 네 알아요. 병일씨한테 이야기는 들었어요. 어릴때부터 돌봐주신 친척누님과

  함께 산다고... ”

 “ 병일이가 그래요 ? 친척누나라고 ? ”

 그제서야 지민은 병일이 평소에 자신을 바깥에 어떻게 언급하고 다녔는지를 처음 알게 되어서일까. 순간 괜시리 기분이 묘해지며 멈칫하고 있다. 하지만 입장바꿔 생각해보니 그와같이 말하는 병일의 심정이 이해는 가는 부분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민아에게 말한다.

 “ 하긴...제가 병일이같은 입장이라도...그런식으로 말하는게 무난했을거에요. 그래

  야 괜시리 다른 사람들한테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하지도 않을테고, 일단 괜

  히 복잡한 설명 안 붙여도 되니...그게 가장 편하겠죠. ”

 “ 그럼...친척누님이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 ”

 “ 뭐 기왕 이렇게 된 이상... ”

 그 사이 주문한 차가 나왔고, 지민은 차 한모금을 들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 그냥 사실대로 다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게 좋겠네요. 피차 그게

  무난하지 않을까요 ? ”

 그리고나서 지민은 여전히 의아해하고 있는 민아에게 자신과 병일의 정확한 관계와 병일의 집안 가정사를 모두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민아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인다.

 “ 그...그럼 병일씨가...경원그룹 회장님의 3대독자시란 말씀이신가요 ? ”

 민아도 ‘경원그룹’이란 대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는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 전경련 랭킹 한 30위권 이내에 드는 유명 그룹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 다만 그런 기업이 있다는것만 알지 경원그룹내의 구체적인 사정이나 황기선 회장 집안의 사연많은 가정사는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다. 평상시 그런데 관심가졌을만한 사람도 아니고. 다만 병일이 그런 대기업 회장의 유일하게 남은 핏줄이며 손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과 놀라움이 더해졌을 따름이다. 지민의 말이 이어진다.

 “ 지금 경원그룹 회장이 황기선 회장님은 아니죠. 회장님은 이미 20여년전에 세

  상을 떠나셨고, 기업도 회장님 생전에 경영권을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주셨으니

  까요. 다만 전 회장님 생전 유언대로 아버지를 잃은 병일이를 어릴때부터 돌봐

  주고 보살펴왔을 따름이에요. 그게 저 나름대로는 절 구원해주신 회장님의 은혜

  를 갚는 길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온거고요. ”

 “ 죄...죄송해요 정말...전 진짜 병일씨가...그런 엄청난 집안의 자제분인지는 꿈에

  도 생각 못했어요. 어쨌든...여러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

 헌데 그런 여자인 지민이 왜 자신을 이렇게 보자고 했겠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겠는가. 그 정도 짐작을 못할 민아는 아닌지라 지레 사과의 말을 입에 담고 지민은 괜시리 착잡해진 표정으로 민아를 바라보고 있다. 민아의 안색은 안절부절 어쩔줄을 모르는 분위기고, 그런 민아를 바라보며 지민이 말을 건넨다.

 “ 헌데...병일이 이야기로는 이미 두 번이나 이혼한 여자분이라 들었는데...게다가

  아이도 셋이나 있고. ”

 “ 네, 맞아요. 그건 사실입니다. ”

 숨길일은 아닌지라 사실대로 시인하고 있는 민아. 지민이 다시 말을 건넨다.

 “ 실례가 안 된다면...사연이라도 좀 들어볼수 있을까요 ? 어쨌든 병일이랑 열 살

  차이라니 저하고도 나이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는 않을텐데...대체 어쩌다 그런 기

  막힌 인생을 살아오셨는지...그 사연이나 좀 알고 싶어서요. ”

 “ 제가 그걸...말씀드려야 하나요 ? ”

 순간 드는 반발심과 강한 자존감에 그와같이 나오고 있는 민아. 하지만 지민은 사뭇 내공이 든 자세로 계속 침착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가고 있다. 민아가 말없이 차를 한모금 음미한다.

 “ 어쨌거나...병일이가...결혼하고 싶다고...민아씨 아니면 죽고 못산다고...그렇게까

  지 나오고 있는데...제가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 어쨌거나 병일

  이를...돌아가신 회장님 유지 받을어 20년을 보살펴온 전데...최소한 병일이가 어

  떤 여자분을 만나고 다니는지...그 정도는 알아야지요. ”

 “ 저기...잠시만요... ”

 근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민아는 잠시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고 민아의 말에 살짝 제동을 걸며 말을 건넨다. 뭔가 항변하고 싶은것이 있는듯한 그런 분위기다.

 “ 헌데...병일씨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 저랑 결혼할 사이라고 ? ”

 “ 그럼...아니란 말씀이신가요 ? ”

 “ 오...세상에...Oh ! My God !!! ”

 순간 민아는 영어식의 절망적 감탄사까지 입으로 내뱉으며 기가막혀 한다. 그리고는 바로 손을 내젓는다.

 “ 대체 병일씨가 그쪽에게 무슨말을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전 정말 아니에요. 전

  진짜 결혼할 생각 없어요. 병일씨가 아닌 다른 그 누구와도 당분간 결혼같은것은

  생각 없어요. ”

 “ 결혼할...생각이 없다구요 ? ”

 병일이 민아 아니면 못산다며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보채고 애원하던 모습이 아직 눈과 귀에 선하고 생생한 지민이다. 헌데 민아가 결혼생각이 없다고 나오니 지민으로선 믿겨지지 않는듯한 반응이고. 그런 지민을 바라보며 민아의 말이 이어진다.

 “ 기왕 이렇게 된것...조금전에 대체 어째서 두 번이나 이혼을 했는냐는 질문까지

  하셨으니 그것까지 포함해서 모두 말씀드리죠. 병일이가 저에대해 대체 무슨 이

  야기를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저 진짜 결혼생각이 없는 사람이에요. 제 말을

  곧이 믿으실지 어쩌실지 모르겠지만... ”

 “ ...... ”

 “ 전 이미 남자한테 데일만큼 데인 여자에요. 그것도 두 번이나...정말이지 한때

  철없을때 그까짓 사랑이 뭐라고...두번이나 남자 잘못만나 그 고생을 했는데...더

  우기 두 번째 이혼은 아직 한지도 얼마되지 않아서 그 부분에 대한 감정정리도

  아직 되어있지 않은 몸이에요. 그런데 지금 이 판국에 제가 무슨 결혼을 생각하

  겠어요. 병일이는 몰라도 전 정말 아니에요 !!! ”


- 9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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