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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팬픽 - 한지민 (7) 기타 팬픽 (연예인, 그외)




                                 부제 : 정순왕후 스토리 현대판 버전 재해석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려 서두르던 병일을 지민이 가로막았다. 어제 지민이 뭔가 작심을 하고 병일을 불러앉혀 한 말을 그는 지민이 공연히 그러는것 정도로 판단을 했는지,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도 안 먹고 지민의 눈을 피해 후다닥 집을 빠져나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지민은 병일이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인지 미리 새벽같이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

 “ 어딜가 ! 서 !!! 내가 오늘 출근 안된다고 했잖아. ”

 “ 누...누나... ”

 “ 오늘 출근 못해. 호텔엔 내가 너 아파서 못 나간다고 전화해줄테니까 잔말말고

  어서 도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내려와. ”

 지민의 태도로 봐선 웬만해선 쉽게 단념할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판단을 했는지 병일은 결국 그 정도에서 한풀꺾여 지민의 말대로 출근을 위해 입은 정장을 실내용 추리닝 복장으로 도로 갈아입고 내려온다. 1층 거실 소파로 와 앉은 병일. 지민은 그런 병일을 한참 말없이 바라본다. 그러다 물 한잔을 마셔 목을 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 일어나서 따라와. ”

 “ 네 ? ”

 “ 너한테 보여줄게 있어 그러는거니까 잔말말고 따라오기나 해. ”

 그리고 지민은 1층 저쪽 끝에있는 계단쪽으로 간다. 황기선 회장의 저택 1층에는 가운데 위쪽 부분쯤에 평상시에 지민과 병일등이 사용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고 그것이 지하층부터 3층까지 쭉 연결된 계단이다. 그리고 그것과 별도로 또 한쪽 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하나 있는데 병일은 평상시엔 그쪽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헌데 지민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병일보고 따라오라고 하는것이다. 지민을 따라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간 병일. 일단 아래로 내려가는 깊이는 저쪽 일반 계단의 지하쪽과 별다른 차이는 없는듯 했다. 다만 그 계단을 다 내려가 옆으로 몸을 돌리니 뜻밖에도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문을 열도록 보안장치가 되어있는 특수문이 만들어져있었다. 병일로서도 이쪽으로 내려와보기는 처음인지라 다소 놀랍기도 하고 뜻밖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민이 원래 비밀번호를 아는지 그 번호를 눌러 문을 연다.

 안에 들어서면 무슨 별천지라도 나오려나 했는데, 안은 평범한 방이었다. 다만 방 크기는 한 열평정도 ? 일반적으로 생각할수 있는 조금 큰 방 크기의 두배 이상은 되는 넓은 방이었다. 다만 그 방안에 특별하게 눈에 뜨이는것은 없고 한쪽 구석에 책상이 놓여있고 맞은편 벽쪽엔 또 책장 두어개가 있는것이 보인다. 그리고 한쪽 구석엔 쓰레기통이 놓여있는데 거기엔 뭔가가 낙서처럼 쓰여져있거나 인쇄된 내용물이 있는 파지 몇장이 놓여져있었다. 하지만 지민과 병일 두 사람밖에 없는 이 집에서 누가 이 지하방까지 내려와 무슨 원고나 서류작업 따위를 할 리는 없을텐데, 그럼 쓰레기통의 저 파지들은 뭔가 좀 의아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 아무래도 어떤 인위적인 위장같은 느낌이 들게하는 장치다. - 헌데 지민은 저쪽 벽에 있는 책장을 옆으로 살짝 옮긴다. 잠시 놀랐는데 밑을 보니 바퀴가 달려있어 움직일수 있게 된 책장이다. 책에 꽂혀있는 책들도 무슨 어려운 영문서적이나 세계 문학전집 혹은 무슨 철학전집 같은것들...그외 무슨 개론(槪論) 따위의 학문 이론서들도 보인다. 역시 그런 책들을 여기서 일부러 볼 만한 사람은 없으니 위장을 위해 진열해 놓은 책들인것 같다. 여하튼 그 책장을 여니 벽장문이 하나 보이고 그것 역시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열도록 되어있다. 그야말로 이중,삼중의 보안,잠금장치를 해놓은 셈이다. 벽장문을 여니 벽장안에 작은 금고 하나가 있다. 지민이 그것을 꺼낸다. 웬만한 성인여성 한명 정도나 남자 중,고생 정도라도 쉽게 들수있을만한 그리 크거나 무거워보이지는 않는 작은 금고다. 지민은 그 금고를 들고와 병일앞에 정중히 내려놓는다.

 “ 언젠가는 이것까지 네게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는데...이제 아무

  래도 그 때가 된것 같구나. ”

 병일은 별다른 말없이 그런 지민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 지민은 일단 금고문을 연다. 금고안에는 또다른 작은 상자가 들어있는데 이번 상자는 그냥 평범한 여닫이가 되어있는 쉬운 상자다. 그리고 상자안에 들어있는것은 통장과 도장, 그리고 A4 용지 묶음과 연습장 그런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민은 우선 병일에게 통장부터 내어준다.

 “ 할아버지께서 네 명의로 남겨두신 통장이야. ”

 “ 네 ??? ”

 “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니 할아버지 유산을 그대로 다 물려받아서 아주 떵떵거

  리며 살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달라. 난 글자그대로 널 성인이 되어 결혼

  할때까지만 맡아주는 역할만 맡고있느거고...할아버지 사유 부동산들도 마찬가지

  야. 난 그저 관리인 역할만 하고있을뿐인거라고. ”

 “ ...... ”

 “ 물론 할아버지께서 내 몫으로 남겨주신 재산도 따로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

  면 실상은 니 몫이 내게 남겨진 몫보다 많을거야. 어차피 할아버지 사유 부동산

  도 때가되면 다 네게 양도하기로 약조가 되어있는거니까. ”

 그리고 이번엔 통장과 함께있던 A4 용지 묶음을 펼쳐보여준다. 그것은 황기선 회장의 유언장이었다. 유언장 내용은 지민이 말한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황기선 회장 사후 그후 사유재산 처리 및 유산분배 문제였다. 특히 기선이 소유한 건물이나 빌딩등은 일정한 때가 되면 병일에게 양도하도록 되어있는 일종의 약정서 같은 형식으로 되어있다. 변호사 공증서류도 같이 있었다.

 “ 넌 이런 할아버지 뜻이 뭐라고 생각하니 ? ”

 “ ...... ”

 “ 할아버진 어쨌든 네가...할아버지 뜻을 이어받을만한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셨던거야. 그래서 내게 널 성인이 될 때까지만 맡아달라는 그 당부를 하셨

  던거고... ”

 “ ...... ”

 “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직접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할아버지의 뜻은 결

  국 네가 정계로 진출하길 바라셨던것 같아. 그래서...할아버지가 생전에 못하신

  정치쪽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 그걸 네가 좀 해주길 당부하셨던거야. ”

 지민의 말을 어찌 받아들이고 있는것일까. 병일은 여전히 대꾸가 없다. 어쨌든 지민의 말을 다시한번 요약하자면, 기선의 유언대로라면 지민은 병일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선의 사유재산을 일시적으로 관리하는 관리인 역할만 담당하는 것이고, 일정한 때가 되면 그 사재의 상당부분을 병일에게 양도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다만 지민의 몫으로 남겨놓은 재산은 또 따로 있어 그것은 지금까지 지민이 자기 마음대로 쓰고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 나머지는 병일의 몫임을 그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부른셈이다.

 “ 다만 조건이 하나 있기는 해. 니가 할아버지 뜻을 제대로 받들때 이게 니게 될

  수가 있는거야. 무슨말인지 알겠어 ? ”

 “ ...... ”

 “ 그 이야길 좀 했었어야하는건데...그동안 좀처럼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구나. 하

  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그동안 못하고 미뤄두었던 이야길 마저 다 해야할것 같아

  서 널 부른거다. ”

 병일은 여전히 별다른 말이 없다. 지민의 그와같은 말이 마땅치 않은 면이라도 있는것일까. 여전히 무슨 말이 없는 병일을 보자 지민은 어떤 답답함과 초조함마저 밀려드는데, 하지만 남은 이야기는 마저 해야겠기에 이번엔 상자속에 있던 물건중 또 하나인 연습장 하나를 건네준다.

 “ 그리고 이게 마지막으로... ”

 “ ??? ”

 “ 할아버지께서 역시 니가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 전해주라고 하신 연습장이야. 연

  습장 내용을 내가 대충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충 훑어보긴 했어. 하지만 이건 아

  무래도 니가 읽어봐야 하는 문제인것 같아서 유심히 읽어보진 않았어. - 뭐 어차

  피 내가 흥미 가질만한 내용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 어쨌든 대충 연습장 한 3분

  의 1 분량 정도로 빼곡이 써 놓으셨더구나. ”

 연습장은 9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 볼수있는 학생들이 쓰는 연습장중 상대적으로 부피가 좀 두꺼운 편인 연습장이었다. 그리고 지민의 말로는 그중 3분의 1 정도가 할아버지가 손수 쓰신 내용의 글이 빼곡이 쓰여져있다는 것이다.

 “ 대체 거기 뭐가 쓰여져 있는건데요 ? ”

 “ 그건 나도 모르지. 다만 짐작해보건데...어쨌든 네가 이어받았으면 하는 할아버

  지의 못다하신 뜻...그런 내용이 담겨있는것 아닐까. 여하튼 할아버지는 정치쪽으

  로 니가 진출해서 할아버지가 못 다하신 뜻을 이어가주길 바라셨던거니까. ”

 “ ...... ”

 “ 일단 이 연습장부터 받아. ”

 재산분배 문제는 지금 뭐 그리 시급한 문제는 아니니까 조금 뒤로 미루더라도 이제 연습장 정도는 전달을 해야할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인지. 지민은 제법 간곡함을 담아 연습장을 받을것을 권한다. 하지만 병일은 여전히 대꾸가 없다.

 “ 왜 그러고만 서 있어. 니가 받아서 읽어봐둬야할...그런 내용이 담겨있는 연습장

  이라니까. ”

 하지만 여전히 대꾸가 없는 병일. 정말 그것을 받을 생각이 없는것인지. 지민은 이제 초조해지기까지 한다.

 “ 어서 받아. 그리고 그 안의 내용을 읽어보면...이제 더 이상 네 몸이 너 혼자의

  몸이 아님을 깨닫게 될거야. 네가 이뤄야 할게 있다니까. 할아버지가 생전에 못

  다하신 뜻. 그걸 네가 이어받아 해야하는 일이 있다구 !!! ”

 하지만 여전히 외면하는 병일. 그런 병일의 모습을 보자 지민은 다소 어이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 왜 그러고만 서있어 ? 돈이 아니라 그까짓 연습장 하나뿐이라서 실망한거니 ?

  정 그러면...니 몫으로 부동산 몇 개라도 지금이라도 명의이전 시켜놓을까 ? 아니

  면 지금 그냥 이 통장이라도 내줘 ? ”

 “ 관심없어요. ”

 “ 뭐...뭐라구 ??? ”

 “ 관심없다니까요 저는... ”

 할아버지 유산이나 유언장은 물론 심지어 할아버지의 뜻을 써놓은 연습장까지 받는것을 거부하는 병일. 그리고는 성큼성큼 방을 나서고 지민은 그런 병일의 모습을 보자 더더욱 기가막혀져 어이없다는듯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 저...저 저녀석이 정말... ”



 얼마후. 병일은 민아와 함께 퇴근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병일이 도둑으로 몰릴뻔한 청소부 민아를 도와주고, 그로부터 얼마후엔 이번엔 민아가 호텔 객실내 고장난 수도 수리를 하다 입은 부상을 치료해주고 그렇게 서로 한번씩의 은혜와 갚음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그 이후 대체로 가까워져 이렇게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그래봤자 가끔 호텔내에서 만나게되면 자판기 커피라도 한잔 같이 뽑아마시며 수다나 좀 떨던가, 아니면 이렇게 퇴근후 식사라도 같이 하는게 전부이긴 했지만, 그렇게 병일과 민아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헌데 오늘은 병일이 민아와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넨다.

 “ 누나... ”

 “ 왜, 병일아 ? ”

 그 사이 민아도 자신보다 열 살어린 동생뻘인 병일에게 말을 놓고 있었고, 그렇게 진짜 친한 누나,동생처럼 친숙해진 두 사람. 병일이 민아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 ‘평범한 삶’의 기준은 구체적으로 어떤걸까요 ? ”

 “ 뭐 ? 평범한 삶 ? ”

 ‘평범한 삶’. 두 사람 다 그 말의 외형적인 뜻이야 이해못할 나이는 아니지만, 막상 병일이 그와같은 말을 꺼내자 생각보다 답하기가 쉽지 않은지 민아는 답을 망설이고 있다. ‘평범한 삶’이라. 글쎄. 과연 대체 어디까지를 평범하다 할 수 있고 어디까지를 평범하지 않다고 말할수 있는것인지. 아무리 병일보다 열 살많은 민아라도 막상 생각해보니 그에대한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지, 어떤 답을 바로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민아는 갑자기 병일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나 궁금해하다가 다른 질문을 건넨다.

 “ 왜 그래 병일아 ? 집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 ”

 “ 아뇨...뭐 특별히 무슨 문제가 있다기 보담도... ”

 이번엔 병일이 뭔가 좀 우물쭈물 하는 기색을 내비치더니 그러한 말투로 말을 이어간다. 민아는 말없이 물 한 모금을 마신다.

 “ 그냥 가끔씩...그런 고민을 해보곤 했어요. 과연 어떻게 사는게 평범한 삶일까...

 ”

 “ 가령 뭐...일정한 나이 되면 학교 졸업해서 직장다니고...그러다 마땅한 좋은 사

  람 만나 결혼하고...아이낳고...그렇게 사는것...대체로 그런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거겠죠 ? ”

 “ 뭐...대충 그렇겠지 뭐.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말야. ”

 헌데 이혼경력이 있는 민아가 아닌가. 헌데 그런 민아 앞에서 ‘결혼해서 아이낳고 행복하게 사는...’ 그런것을 평범한 삶의 기준으로 언급했다는것. 실수라면 실수라 할 수 있을것이다. 바로 그 잘못을 깨달은 병일이 사과한다.

 “ 미...미안해요 누나 전 그냥... ”

 민아는 그 부분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만, 그녀가 이혼녀란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그런식으로 말했다는것. 아무래도 실수인것 같아 거듭 사과의 말을 입에 담는 병일. 진심으로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이다.

 “ 전 그냥...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그런 고민을...그런 생각을 해봤던거에

  요. 절대...누나를 염두에 두고 한 소린 아닌데... ”

 “ 괜찮아. 난 그런 문제 신경 안 쓰기로 한지 오래 되었다고 했잖아. 그런 문제

  그리 괘념치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민아가 괜찮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쉬이 떠나지 않는 병일. 헌데 민아 입장에서 병일의 이전같지 않은 이런 모습을 보니 뭔가 심상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보다. 이번엔 민아가 다시 병일에게 말을 건넨다.

 “ 근데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하는건데 ? 정말 무슨 고민이 있긴 있나

  보구나 ? ”

 ‘고민이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라서일까. 병일은 민아의 그와같은 질문에 다시 대꾸가 없다. 민아가 그런 병일을 바라보며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려는듯 살짝 손을 잡아보며 말을 건넨다.

 “ 그러지말고 고민 있으면 누나한테 솔직하게 털어놓아봐. 참, 그러고보니 병일이

  는 어릴때부터 친척누나가 돌봐주셨다고 그랬지 ? 그리고 지금은 그 누님과 함께

  살고...근데 왜 ? 집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야 ? ”

 병일은 순간 민아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어차피 자신의 집안환경에 대해서는 특히 가족관계에 대해선 ‘부모님이 어릴때 돌아가셨고, 어릴때부터 친척누나가 돌봐주셔서 지금은 그분과 함께 산다’고 직장에서 일관되게 말을 해왔으니 민아든 그 외 다른 누구든 병일의 가정환경에 대해선 그와같이 인식하고 있는것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본의아니게 민아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있는것만 같아 그것이 병일에게 자그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헌데 이렇게 된 이상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하나. 지금 병일은 확실히 뭔가 속으로 깊은 고민이 많은것이 틀림없는것 같다. 방금전 ‘평범한 삶’의 기준이 어떤것이냐 운운한것과도 분명 무관치는 않은데. 하지만 막상 운을 그렇게 띄우고 나니 자신의 진정한 고민을 민아앞에 어찌 털어놓아야 할지 그 조차도 쉽지 않은것이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이 김민아란 여자를 제대로 이해시킬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일 같아서 여전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 병일은 살짝 화제를 돌렸다.

 “ 참, 그런데...누나는 이혼하고 나서 혼자 아이들 키우며 살고 있다고 했죠 ? 헌

  데 대체 그럼 아이는 전부 몇 명인거에요 ? 전에 언뜻 이야기한걸로 봐선 아이

  가 적은것은 분명 아닌것 같던데... ”

 일전에 병일에게 자신의 가정환경을 이야기하면서 ‘이혼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산다’는 복수형으로 답했던 민아. 그런것을 보면 확실히 민아는 현재 최소한 한명 이상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아이들 키우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말했던것만 봐도 그렇지. 그럼 대체 아이가 몇 명이나 된단 말인가 ? - 한 대여섯명 혹 그 이상이라도 된단 말인가 ? - 여하튼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새삼 거품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하는데, 민아가 살짝 그런 병일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다.

 “ 미안해 병일아... ”

 “ 네 ? ”

 “ 사실 누나가 의도적으로 병일이를 속이려 한것은 아닌데...아무래도 결과적으로

  는 그런 모양새가 된 것 같아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은데...실은 누나 이혼을

  한번만 했던게 아니야. 실은 한번 더했어. ”

 “ 네에 ? ”

 이혼을 한번이 아니라 한번 더했다니. 이를테면 ‘두번 이혼한 여자’인 셈이다. 어쨌거나 그 부분까지는 병일도 짐작해보지 못한 일이라서 인지 다소 충격을 받은듯한 모습을 보인다. 민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본의 아니게 병일을 속인것만 같은 결과가 된 것에는 거듭 사과의 말을 건넨다.

 “ 미안해 정말. 거듭 말하지만 일부러 속이려 한것은 아니야. 뭐 어쨌거나...이혼한

  것 자체가...뭐 요즘은 그렇게 흠이 되지는 않지만...그래도 두 번이나 이혼한 경

  우는 흔치 않은거잖아. 그래서 거기까지는 일부러 말을 하지 않고 있었을뿐이야.

  후우...정말 무슨 팔자가 그렇게 센지...두번이나 누난 그런일을 겪고 말았구나. ”

 “ 누...누나... ”

 “ 그리고...애는...많다고만 하니까...사람들이 한 대여섯명은 키우는줄 알더라 ?

  그건 아니고 아이는 세명야. - 뭐 그것도 혼자 감당하긴 결코 쉬운 숫자는 아니

  지만. 첫째가 지금 열 살이고 둘째가 여덟살, 그리고 막내는 두 번째 남편이랑

  살 때 생긴 아인데 지금 세 살이야. 그 셋을 키우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거

  야. ”

 “ 세상에 어쩜... ”

 이야기를 듣고보니 민아가 정말 그동안 힘들고 어렵게 살았구나. 그 점이 실감이 나는듯해 병일의 표정에선 안타까와 하는 눈빛이 쉬이 떠나지 않는다. 민아가 그런 병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회한에 가득찬 모습이다.

 “ 그리고 몇 번 이야기했지만...누나 정말 그 애들 셋 키우면서 지금까지 닥치는

  대로 안 해본일이 없어. 식당일은 물론이고, 편의점에서도 잠시 일해봤고...방송

  국에서 청소부로도 잠깐 일해봤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청소부하다 어쩌다 피디

  눈에 띄여서 재연배우 노릇도 잠깐 해봤고. ”

 “ 누나가 재연배우를 해봤어요 ? ”

 “ 응, 요즘은 방송에 그런 프로들 많잖아. 근데 한번은 그 방송사에서 녹화예정

  인 재연프로 하나가...출연예정이었던 조연급 배우 하나가 펑크가 났나봐. 그래서

  피디가 급히 사람을 구할길이 없어 동분서주 하다...어쩌다 그냥 방송국 복도에서

  ...부딪히고 말았어...난 그냥 미안해서 황급히 사과만 하고 가려 했는데...그 피디

  가 날 붙잡더니 혹시 방송출연 한번 해볼생각 없느냐 그러더라. ”

 “ 이야, 그래도 그건 제법 재미있었겠네요. 괜찮은 경험이었고. 졸지에 방송출연

  까지 해보고. ”

 “ 뭐 그렇다고 내가 정식으로 그런데 발탁이라도 된것도 아닌데 무슨...그건 그냥

  잠시 때문이었어. 그때 한번 출연하고나서 나중에 그 피디가 담당하는 프로에 두

  어번 더 나가보긴 했는데 그게 전부였어. 나중에 누나가 다른 사정이 생겨 그 방

  송국에서 청소일을 그만두었으니까. ”

 방송출연까지 해봤다고 하니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대단하고 놀라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민아에겐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되려 씁슬한 표정이 되어버리고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잠시 좀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병일이 민아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 누나... ”

 “ 왜 또 ? ”

 “ 저...갑자기 이런 이야길 꺼내는게 어떨지 모르겠지만...저 언제 한번 누나집에

  찾아가보면 안 돼요 ? ”

 “ 뭐 ? 우리집에 ? 니가 왜 ? ”

 좀 뜻밖이고 황당하다면 황당할수도 있는일이라 적잖이 놀라는 모습의 민아. 하지만 병일은 제법 간곡해진 모습으로 말을 이어간다.

 “ 그냥...누나가 어떻게 사는지 사는 모습이 궁금해졌어요. 누나 사는 모습이 어떨

  지...그렇게 누나처럼...그런 아픔과 상처까지 겪고...그렇게 애들 키우면서 혼자사

  는...누나의 평상시 사는 모습은 어떨지...또 누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며 또

  평상시 누나(누나가 그 애들한테는 엄마잖아요)와는 어떻게 어울리며 뭐하고 놀

  며 지내는지...그냥 누나의 사는 모습 그 자체가 궁금해졌어요. ”

 “ 아...아니야 병일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우리집 누추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

  라 정말 그래...와봤자 별로 보여줄만한 것도 없고...내세울것도 없고...대접할만한

  것은 더더욱 없고... ”

 거듭 난처한 기색을 보이는 민아. 하지만 병일은 되려 더더욱 간곡해진 어조로 민아를 조른다.

 “ 누나 전 진짜...진심으로 그냥 누나 사는 모습이 궁금해져서 그러는거에요. 그래

  서...그냥 딱 한번만...누나는 대체 어떻게 사는지...여하튼 그렇게 혼자 몸으로 아

  이들 키우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그 모습이 궁금해져서 그러는거에요. 헌데 그

  게 그렇게 안 되는 일이에요 ? ”

 “ ...병일아... ”

 병일의 그 난데없는 모습에 난감해하던 민아는 그러다 그러는 병일의 모습이 뭔가 예사로와 보이지 않는다는 짐작을 했는지 사뭇 정색을 하고 병일을 불러본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해보고는 말을 건넨다.

 “ 웬지...니가 그러는 의도를 짐작할것 같기도 한데...대체 그래서 뭐가 궁금하다는

  거야 ? 대체 뭘 알고 싶어 그러는건데 ? ”

 “ 누나...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 ”

 “ 아까 너 그랬잖아. 평범한 삶이란게 대체 어떤 기준이냐고. 아무래도 그것과 무

  관치 않은것 같아서. ”

 대화의 흐름 자체가 그랬으니 머리가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그런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여하튼 민아도 병일이 어릴때 부모잃고 지금은 친척(?) 누나와 함께 산다는것 정도는 아는 사람 아닌가. 병일이 강남의 부유한 동네에 산다는것도 알고. - 본인은 중산층 정도가 사는 아파트에 산다고 말했었지만 -

 “ 뭘 알고싶어 그러는건지 대충 짐작이 갈것 같아서 하는말인데...누나네 집 사는

  모습 그렇게 평범하진 않아. 두 번씩이나 이혼하고 이렇게 혼자 애 키우는 모습

  누가봐도 결코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을거야. - 이혼 자체를 큰 흠결마냥 바라

  보는것도 문제지만 여하튼 니가 말한 그 소위 ‘평범하다’는 기준에선 다소 거

  리가 있는 삶이잖아. - ”

 “ ...... ”

 “ 그리고 무엇보다...너같은 애들이 무슨 동물원 원숭이 호기심삼아 들여다보듯

  그렇게 와서 구경해도 되는 그런집도 아니고. 솔직히 그런면에선 좀 불쾌하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

 “ 누...누나 제 말은 그런뜻이 아닌데... ”

 “ 니가 나쁜 의도로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다만... ”

 민아는 나름 착잡한 얼굴로 병일을 바라본다.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고 있다.

 “ 그래 뭐...어쨌든 넌...그런대로 먹고사는데 부족함은 없이 그렇게 살아온 아이잖

  아. 뭐 물론 너도 어릴때 부모님 잃고...친누나도 아닌 친척누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니...그것도 역시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 물질적으로는 설사 부족한

  게 없을지언정...알게모르게 상처가 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을거야. 하지만 그렇다

  고 해서... ”

 “ ...... ”

 “ 이렇게 무작정 불쑥 호기심삼아...가난하게...힘들게 사는 나를...무슨 호기심삼아

  또는 동정삼아 바라보는것도 난 좀 아닌것 같아. 내가 너한테 동정받는거 솔직히

  그리 유쾌하진 않다. ”

 “ 누...누나 내 말뜻은 분명 그런것은 아닌데... ”

 이런 의도는 분명 아니었던것 같은데 병일이 애초에 의도했던것과는 달리 대화가 진행되는것 같아 그 입장에선 어떤 안타까운 기색마저 일고있다. 민아는 잠시 그런 병일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힘내라는듯 어깨를 한번 툭툭 쳐주며 격려의 말을 건넨다.


-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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