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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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팬픽 - 한지민 (6) 기타 팬픽 (연예인, 그외)




                                부제 : 정순왕후 스토리 현대판 버전 재해석



 점심시간. 병일은 호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헌데 식사를 거의 마쳐갈때쯤 그에게 다가오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보니까 아까 오전에 청소작업을 하다가 객실에 투숙했다가 퇴실한 젊은 여자손님으로부터 도둑으로 몰리는 봉변을 당했던 그 여자 청소부였다. 아까는 병일도 그저 막연히 나이많은 여성이라 생각하고 ‘아주머니’라 호칭했는데, 청소용 모자를 벗은 얼굴을 보니 아주머니라 부르기는 좀 미안하지 않나 싶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새파란 그런 여성의 느낌은 아니고, 대충 짐작해보면 한 서른 안팎정도 ? 어쨌든 생각보다 그리 나이가 많아보이는 그런 여성은 아니었다. 여하튼 병일은 여인을 알아보고는 바로 인사를 건넸다.

 “ 어...여기서 뵈네요 ? 식사는 하셨어요 ? ”

 “ 네, 식사는 방금 마쳤고...실은 저어... ”

 헌데 여인은 사뭇 수줍은 얼굴을 하고는 병일에게 뭔가를 살짝 내밀어 보였다. 작은 음료수 캔이었다.

 “ 간단하게나마 뭐라도 보답을 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근무중에 마땅히 뭘 사러

  나가거나 할수야 있어야지요. 그래서 식사중에 목이라도 축이시라고 편의점에

  서 음료수를 하나 샀어요. 어서 드세요. ”

 “ 아, 하하...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여하튼 한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

  인데...동료가 그런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는데 그냥 보고 지나쳐서야 말이 되나

  요. 당연히 해야할일을 했을 뿐이에요. 너무 부담갖지 않으셔도 돼요. ”

 “ 어서 드세요. ”

 그렇게 말하며 이미 음료수캔을 병일이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여인. 병일이 그런 여인에게 격려하는 말을 거듭 건넨다.

 “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아니, 어차피 밥도 다 먹었으니 지금 그냥 마셔야겠다.

  어쨌든...기운내시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세요. ”

 “ 네, 고마워요. ”

 인사를 하며 살짝 미소를 짓는 여인. 그 표정이 사뭇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여인은 그 정도에서 인사를 마치고 저쪽으로 가고 병일은 제법 뿌듯한 표정이 되고, 그런 여인의 뒷 모습을 잠시 말없이 바라본다.

 얼마후. 호텔 한 객실에서 수도가 고장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일이 급히 해당 객실로 들어가보았다. 급한대로 병일이 연장을 준비해와 고장난 수도를 고쳐보려 했다. 한참을 낑낑대며 파이프를 살펴보기도 하고 수도꼭지를 해부에 여기저기를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고장난 수도꼭지와 파이프를 고치는 중이었는데.

 “ 어이쿠 !!! ”

 그러다 연장 손질을 잘못했는지 한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마침 청소작업을 하러 들어온 청소원 한명이 그 모습을 보았다.

 “ 어...어머 괜찮으세요 ? ”

 “ 아...네 뭐. 괜찮은데... ”

 청소원이 걱정이 되는듯 바로 달려왔다. 헌데 좀 뜻밖에도 마침 들어왔다 다친 병일의 모습을 본 청소원은 다름아닌 얼마전 병일이 도와주었던 도둑으로 몰릴뻔한 그 청소원이었다. 바로 서로를 알아보았지만, 병일이 다친 상황에서 지금 그런 회포(?)를 풀수는 없고. 걱정이 되는듯 청소원이 병일의 다친 손가락을 계속 살펴보았다.

 “ 어머 이를 어째. 피가 계속 나네요. 우선 지혈을 시켜야겠어요. ”

 급한대로 청소원이 욕실에 비치되어있는 화장지를 대충 꺼내 피를 닦아내고 지혈을 시키고. 그 정도로는 안 되겠는지 병일을 안에서 데리고 나오려한다.

 “ 안되겠어요. 아무래도 응급조치를 취해야겠어요. 어서 와보세요. ”

 “ 아...아뇨. 고치는건 마저 고쳐야하는데... ”

 “ 이 몸으로 뭘 어쩌시려구요 ? OO씨는 다른 서비스원에게 빨리 연락해보고 아

  저씬 이리 오세요. ”

 여인이 동료 청소원에게 다른 서비스원을 불러 수도 고치는 작업을 마저 마무리 할수 있게 해달라고 하고는 병일을 데리고 급히 직원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 마련되어있는 응급도구를 가져와 병일의 베인 손가락 부분에 조치를 취해준다.

 “ 이제 좀 괜찮을거에요. 좀 어떠세요 ? ”

 병일의 다친 손가락에 붕대를 묶어주며 그와같이 말을 건넨 여인. 병일은 괜시리 묘한 기분에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리고 말을 건넨다.

 “ 뭐...그렇게 큰 부상도 아니었는데...여하튼 고마워요. ”

 “ 이 정도면 그래도...제가 저번일에 대한 신세는 갚은 셈이네요. ”

 “ 하하...그런가요 ? ”

 병일도 이미 바로 그때 그 청소원임을 알아본 뒤이기 때문에 새삼 그때일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보이고, 그 사이 숨을 돌린 두 사람. 그녀는 휴게실에 비치되어있는 커피믹스로 커피 두 잔을 타서 병일이 있는쪽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커피 한잔을 들며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는 두 사람.

 “ 참...근데 그러고보니 여태 성함을 안 여쭤봤네요.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

  나요 ? ”

 기왕 이렇게된것 통성명이나 하자는 생각에 그와같이 묻는 병일. 지난번 도둑으로 몰릴뻔한 청소원을 도와준것이 벌써 며칠전의 일이니 통성명 한번 빠른(?) 셈이다. 여인은 미소띤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준다.

 “ 전...김민아라고 해요. ”

 “ 아, 그러시구나. 김민아...전 황병일이라고 해요. 그리고 OO호텔에서 일한지는

  이제 1년이 넘었죠. ”

 “ 그렇군요. 전 두달전부터 여기서 일하게 되었어요. ”

 “ 네, 그건 기억나요. 그때 새로오신 청소원 아주머니들 지배인님이 인사시킬때

  그때 뵈었거든요. 저번에도 그래서 얼굴은 기억을 하고 있었던 참인데...헌데

  실례지만 연세는 어떻게 되나요 ? ”

 “ 몇 살쯤 되어 보여요 ? ”

 헌데 나이를 묻자 사뭇 짖궂게 대답을 회피하는 민아. 사실 지난번 병일도 청소용 모자를 벗은 상태의 그녀를 식당에서 보았을때는 생각보다 젊어보인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보다 젊은 여성은 아닌것 같고. 잠시 고민을 하다 조심스레 입을연다.

 “ 글쎄요...그래도 저보다 아래는 아닐것 같은데...서른은... ”

 “ 넘었어요. 오래전에. ”

 “ 넘었...다구요 ? ”

 ‘서른은...’ 운운하는 병일의 말에 별다른 망설임없이 생각보다 쉽게 그렇게 대답하는 민아. 병일이 되려 그 모습에 다소 놀라는 반응을 보이고. 민아가 정확한 자기 나이를 알려준다.

 “ 서른여섯이에요. 이래봬도 산전수전 세상 겪을만한 일은 다 겪은 몸이죠. ”

 지난번에 병일이 ‘호텔에서 일하다보면 별별일 다 겪게 된다’는 식으로 그녀를 달래기도 했었는데, 혹 그때일이라도 염두에 두며 누구 앞에서 세상경험 꽤 많이 한 사람 행세했느냐는듯한 빈정이라도 되는것일까.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표현에 제법 힘을 주어보기까지 한 민아. 여하튼 병일보다야 열 살이 많은 여자니 그는 바로 정색을 하며 말을 건넨다.

 “ 아휴, 어쨌든 저한테는 누님뻘이시네요. 그럼 뭐...편하게 누님이나 누나로 불

  러도 되겠죠 ? ”

 “ 뭐 좋으실대로 하세요. ”

 여하튼 나이어린 호텔 동료 직원으로부터 ‘누나’ 소리를 듣는게 그리 싫지는 않은지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그와같이 말하는 두 사람. 어차피 한참 일해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휴게실에서의 두 사람의 대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 얼마안가 바로 자리를 뜨게 된다. 병일은 조금전 다친 그리고 민아가 붕대로 감싸준 손가락 부분을 잠시 말없이 바라본다.



 “ 병일씨 !!!! ”

 며칠후, 퇴근을 해 집으로 가기위해 전철역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다름아닌 김민아였다. 헌데 청소부 복장을 하고 있을때만 민아를 봐서 그런지 사복을 입은 그녀를 순간 병일은 바로 알아보지는 못해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곧 민아임을 알아보고는 반기는 기색을 보이는 병일. 그가 민아에게 말을 건넨다.

 “ 누나도 지금 퇴근하시는 길인가보네요. ”

 “ 네, 그래요. 오늘 좀 일이 일찍 끝나다보니...어떻게 하다보니 병일씨랑 비슷한

  시간에 호텔을 나서게 되네요. ”

 “ 하하...그러게요. 헌데 민아씨도 이쪽으로 가세요 ? ”

 “ 네, 전 이쪽으로 쭉 가다가 저쪽 네거리에서 횡단보도 건너서 OOO번 버스

  를 타야해요. ”

 “ 아, 그러시구나. 그럼 저하고는 반대방향이네요. 전 전철역쪽으로 가야하거

  든요. 네거리에서. ”

 “ 아...네에... ”

 반대방향인게 뭐 굳이 서운할것까진 없겠지만 민아는 괜시리 말꼬리를 흐리고. 그리고 다시 병일에게 말을 건넨다.

 “ 그럼 병일씨는 어디 사시는데요 ? ”

 “ 음...저...OO동이요 ? ”

 “ 어머, 그럼 강남에 사시는거에요 ? ”

 “ 네, 맞아요. ”

 사실 병일은 호텔에서 일하면서 지금까지 직원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그저 어릴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먼 친척누나하고만 살고 있다고 밝혀 그의 정확한 신분은 동료직원들은 대개 모르고 있다. 다만 사는곳을 굳이 거짓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선 사실대로 답을 한 곳이다. 하지만 바로 병일이 사는곳이 강남의 유명한 부자촌이니 만큼, 웬만한 경우라면 병일이가 잘사는 동네에 산다는 사실은 바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다만 병일이 자신이 사는 지역을 밝힌것은 민아가 거의 처음인듯 하다.

 “ 아...뭐 근데...저희가 OO동에 사는건 맞는데...그렇다고 꼭 부자로 사는건 아니

  에요. 뭐 그냥 한 중산층 정도...그렇게 갑부는 아니에요. ”

 아무래도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지 그와같은 부연설명을 입에 담은 병일. 실제 OO동쪽은 중상층(中上層) 정도가 사는 아파트 단지도 다소 밀집해있긴 하지만, 병일의 할아버지 황기선이 소유하고 있던 저택은 그 일대에서도 꽤 큰편에 속하는 대 저택이다. 바로 그 집에서 어릴때부터 쭉 살아왔던 병일이건만, 아무튼 그와같은 사실을 굳이 알게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는지 그와같은 말을 한 것이다. 허나 민아 입장에서야 병일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지라 그대로 믿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 그러시구나...난 또 OO동 하면 전부 재벌가쯤 되는 떵떵거리는 부자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중산층 정도 되는 사람들도 좀 사는구나. ”

 “ 하하...네 맞아요. ”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와같이 대답하는 병일. 이번엔 병일이 민아에 대해 궁금한것이 있는듯 말을 건넨다.

 “ 근데 누나는...맞벌이 부부신거에요 ? 아무래도 결혼은 하신것 같은데... ”

 “ 그래...보여요 ? ”

 지난번에 이미 민아가 자기 나이가 36세라는것을 밝혔고, 밝히기 전에도 병일은 그녀의 나이를 대충 서른 안팎은 되지 않았을까 짐작했었다. 그러니 그쯤 되는 나이면 여하튼 이미 결혼은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레짐작을 한 것인지. 헌데 민아는 살짝 어두운 미소를 지어보인다.

 “ 실은...이혼했어요. ”

 “ 네 ? ”

 별다른 망설임없이 이혼했다고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밝히는 민아. 하지만 다소 뜻밖의 일이라 병일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고, 자신이 아무래도 실례를 한것같아 바로 사과의 말을 건넨다.

 “ 죄...죄송해요. 전 그냥...누나가 당연히...연세도 그쯤 되시는 분이고...해서 당연

  히 결혼은 하신 분이려니 짐작하고...죄송해요 누나 정말... ”

 “ 괜찮아요. ”

 비교적 담담하게 대답은 하고 있지만 표정이 밝은 기색은 아니다. 민아의 말이 이어진다.

 “ 이혼이 뭐...자랑은 아니지만 무슨 죄도 아닌데 숨길것도 없잖아요. 솔직히 저도

  옛날같으면 발끈해서 막 뭐라 했을텐데...이젠 웬만큼 적응이 돼서 그런지...그런

  건 그냥 솔직하게 밝히곤 해요. 이혼...했고...지금은 애들이랑 같이 살아요. ”

 “ ‘애들’이라면... ”

 여하튼 이혼을 했고 그 뒤 아이들을 자신이 맡아 키우고 있다는 소리인데. 헌데 민아는 ‘애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아이가 하나는 아니라는 소리가 되지 않는가. 그에대한 궁금증까지 생기는 차인데 민아가 아예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까지 풀어주려는듯 답은 해준다.

 “ 좀 많아요 애들이... ”

 “ 아니, 얼마나 많길래요 ? ”

 ‘애들’이라면 분명 하나는 아니란 소리인데. 대체 얼마나 많길래 대놓고 ‘좀 많다’는 소리까지 입에 담는것인지. 괜히 병일이 당혹스러워질 지경이다. 헌데 민아는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답은 해주지 않은채 살짝 말을 돌린다.

 “ 그래서 이것저것 이렇게 닥치는대로 일하는 중이잖아요. 어쨌든 애들은 키우면

  서 먹고 살아야하니까. ”

 “ 아...그러셨구나... ”

 그러고보니 지난번 자신의 다친 부위를 붕대로 감싸주면서 이야기를 나눌때도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말을 했던 민아가 아니던가. 그때는 그저 자신의 나이많음을 강조하기 위해 쓴 표현정도로만 여겼는데, 그와같은 말을 입에담는 민아를 보니 정말 그동안의 고생이 보통이 아니었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헌데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면서도 서른여섯이란 실제 나이보다는 몇 살 어려보이는 동안을 유지하고 있는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이번엔 민아가 병일에게 말을 건넨다.

 “ 병일씨는 근데 식구가 어떻게 돼요 ? 부모님과 같이 살아요 ? ”

 병일이 조금전에 자신의 사는 정도를 중산층 정도라 대답을 했는데, 여하튼 자신의 가족관계까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었다. 그렇다면 민아의 그와같은 질문은 자립해서 혼자 나와 살고 있느냐 아니면 부모님과 함께 사느냐 그런 의미의 질문이 될텐데. 여하튼 병일로서도 난감해질 질문인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만은 병일도 굳이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해왔으니 만큼 민아에게도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다.

 “ 실은 어릴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

 “ 예 ? ”

 이번엔 민아가 뜻밖의 사실을 안것같아 놀라는 반응을 보이고. 병일의 말이 이어진다.

 “ 어릴때 그렇게 부모님 잃고...친척누나 돌봄을 받으면서 자랐어요. 그래서...지금

  은 그 누나와 함께 살아요. ”

 병일은 현재 자신과 동거(!) 상태인 지민에 대해선 ‘친척누나’라고만 지금껏 밝혀왔다. 따라서 민아에게도 그와같이 말하는 것이고. 그래도 민아 입장에선 그런 동네에서 중산층정도로 산다니 별다른 고생없이 풍족하게 살아왔겠구나 그렇게 짐작했는데, 어릴때 부모님을 잃고 친척누나(?)가 돌봐주며 지금껏 살아왔다니. 그와같은 병일의 가정사의 상처를 안것같아 공연히 마음이 짠해지기까지 한다.

 “ 미안해요...병일씨한테도 그런 아픈 상처가 있으셨구나...부모님이 어릴때 돌아

  가셨다니... ”

 “ ...... ”

 “ 그래도 친척누나분이 참 좋은분이신가보네요 ? 지금까지 그래도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금껏 병일씨를 반듯하게 잘 키워주시고. 참, 그러고보니 누나랑 나이터울

  은 좀 지겠네요. ”

 “ 그렇죠 뭐. ”

 “ 이담에 병일씨가 누님한테 잘해드려야겠어요. 병일씨에겐 은인이나 다름없는 분

  이실것 아니에요. ”

 하지만 병일은 그와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심경이 다소 복잡해지는 것일까. 시선을 살짝 다른곳으로 돌린채 별다른 말이 없고. 함께 대화를 나누며 걷는동안 이제 반대방향으로 가야하는 네거리까지 다다랐다. 여기서 병일은 전철역이 있는 쪽으로 가야하고, 민아는 버스를 타기위해 횡단보도를 건너야한다.

 “ 다 왔네요. 우리 그럼 이쯤에서 헤어져야겠어요. ”

 “ 그래요 누나. 그럼 내일봐요. ”

 “ 그래요. 내일봐요 병일씨. ”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방향을 돌려야하는 두 사람. 헌데 그쯤에서 갑자기 병일이 민아를 불러본다.

 “ 저...근데 누나... ”

 “ 왜요 ”

 “ 어...저... ”

 “ 아, 저 횡단보도 신호 바뀌었어요. 이만 건너야겠어요. 미안해요 병일씨. 중

  요한일 아니면 내일 이야기하도록 해요. 그럼 내일봐요 병일씨. ”

 병일이 뭔가 아쉬운듯 하고픈 말이 있는 눈치였는데, 하지만 바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망설이는 사이에 민아가 건너야하는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다. 그래서 민아는 그쯤에서 다시 병일에게 인사를 건네고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병일은 말없이 그렇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민아를 바라보고 뭔가 심경이 복잡한듯 살짝 한숨을 내쉰다.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에 별이 한두개 보이고 있다.



 2-3주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난 어느날. 계절은 이제 어느덧 늦가을로 접어든 무렵이라 봐야할텐데, 하루는 병일이 퇴근후 동료들과 회식이라도 했는지 술이 약간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집에 도착했을때는 밤늦은 시간. 헌데 이 시간쯤이면 웬만하면 잠자리에 들어있어야 할 지민이 아직 거실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복장은 편안한 실내복 차림이었지만, 표정은 결코 옷차림새만큼 편안해보이지가 않다. 집안으로 들어선 병일은 살짝 지민에게 목례로 인사를 건네고 자기방으로 들어가려 2층 계단으로 향하는데 지민이 그런 병일을 부른다.

 “ 황병일... ”

 “ 어 왜요 ? 말했잖아요 누나. 회식이 있어서 좀 늦었다고. 아까 문자도 보냈었

  는데... ”

 “ 글쎄 그건 알고있고 잠깐 이리좀 와 앉아봐. 오늘은 누나랑 이야기좀 하자. ”

 “ 네...어...뭔데요 무슨 할말이라도 있어요 ? 잠깐만요. 옷이라도 좀 갈아입고 내

  려올게요. ”

 “ 알았어. 대신 2층에서 옷만 갈아입고 빨리 내려와. ”

 아무래도 취중이라 입고있는 정장이 갑갑해서 그런지 일단 2층으로 올라가서는 속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병일의 표정만큼은 설마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랴 싶은 여유로운 모습이다. 지민은 일단 병일에게 음료수를 한잔 건네준다.

 “ 일단 술이나 좀 깨게 이거나 한잔 쭉 마셔. 그래봤자 그냥 쥬스지만...어서 마

  셔. 그리고 이야기하자. ”

 “ 어...네에...고마와요 누나. 잘 마실께요. ”

 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파서 이렇게 심각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것인지. 하지만 병일은 여전히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지민이 건네준 쥬스만 우선 꿀꺽꿀꺽 마신다. 이제 좀 정신이 나는지 ‘꺼억~!’ 트림까지 하면서. 그리고 지민이 앉아서 이야기하자는 말도 있었고 하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거실 소파로 가서 풀썩 앉는다. 지민은 그런 병일의 맞은편에 마주 앉는다.

 “ 황병일... ”

 “ 뭔데요...대체 무슨일인데 그래요 ? ”

 이제 술기운은 좀 달아났는지, 그런대로 정신이 든 얼굴로 병일이 지민을 바라보고, 하지만 여전히 설마 뭐 그리 중요한 이야기랴 싶은 그런 자세로 앉아있다. 지민은 그런 병일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작심한듯 한마디 건넨다.

 “ 단도직입적으로 뭐 하나만 묻자. 너 앞으로도 계속 그 호텔일 할거니 ? ”

 “ 네 ? 어...뭐...네...웬만하면 계속 그냥 하려구요. 뭐...호텔일이 뭐 어때서요 ? ”

 “ 니가 그렇다도 지금 거기 정식으로 호텔리어로 들어간것도 아니잖아 ? 비정규

  직이라면서 ? ”

 “ 누나...갑자기 왜 이래요 ? ”

 지민의 태도가 뭔가 심상찮음을 그제서야 깨달은 병일은 성을내는 그녀의 모습에 약간 언짢아진 기분으로 그와같이 말하고.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지민이 다시 말을 이어간다.

 “ 황병일...나 솔직히...지금까진 웬만하면 너 하고싶은대로 하게 그냥 내버려뒀어.

  그건...무엇보다 아무리 내가 니 할아버지 유언대로 널 친동생처럼 돌봐주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어쨌든 내가 니 인생에 주제넘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거나 할

  그런 위치는 아닌것 같다는 내 나름대로의 판단도 있었고... ”

 “ 누...누나... ”

 “ 그리고 니 할아버지도...그렇다고 당신 뜻을 너무 강요하지 말라고...중요한건 손

  자녀석...결국 병일이 네 선택에 달린 문제라 늘 말씀하셨기 때문에 너한테 가급

  적 큰 부담 안 주고 그냥 지켜보려했는데... ”

 “ 누나...대체 무슨말을 하고싶은건데요. ”

 “ 황병일...너... ”

 지민이 어떤 안타까움을 담아 병일을 그와같이 부르고 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 너 진짜...할아버지 뜻 이어받을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거야 ? ”

 “ 누...누나... ”

 “ 대답부터 해. 너 그러고보니까...너 할아버지 뜻 받들라는 소리 내가 할때마다

  대꾸한적 한번도 없었다. 그냥 니 하고싶은대로...느닷없이 대학도 엉뚱하게 무슨

  심리학과를 가겠다고 하고...대학 졸업하고나서도 한동안은 취직할 생각이 있는건

  지 없는건지...그냥 건성으로 시간 보내다가...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호텔에 취

  직한다 그러고... ”

 지민은 진짜 병일의 요즘과 같은 모습을 더 이상 두고볼수 없다는듯 단단히 작심하고 벼른듯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고, 지민의 말마따나 병일은 지금 그 어떤 대꾸가 없다. 할아버지의 뜻. - 그리고 지민은 그것이 (비록 기선이 그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손자인 병일이 정치권쪽으로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뜻 같았다고 말한바 있다. 정계로 진출해서 할아버지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중 하나인 그것을 손자라도 이뤄주었으면 한다는. 물론 기선은 그렇다고 너무 강요는 하지 말라는 당부도 지민에게 했지만, 이런식으로 병일이 할아버지의 바램과는 달리 너무 엉뚱한 길을 가고 있는것이 지민의 눈에는 딱하게 보였나보다.

 “ 누나...그...그냥... ”

 “ 그냥이 아니라...이제 아무래도 내가 좀 제어를 해야겠어. 병일이 넌 어쨌든

  대 경원그룹 창업주셨던 고 황기선 회장님의 유일한 손자이자 3대독자야. 황

  회장님이 이 세상에 남기신 유일한 핏줄이기도 하고... ”

 “ ...... ”

 “ 물론 중요한것은 결국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의 선택인 것이지만, 누난 니가

  황병일 니 인생이 너 한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어떤 사명감 같은것을 좀 가

  져봤으면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어서 하는소리야. ”

 헌데 또다시 대꾸가 없는 병일. 지민은 그런 병일의 모습이 더더욱 안타까와져 다시금 말을 건넨다.

 “ 왜 또 말이없어 ? 정말 할아버지 뜻 이어받거나 할 그럴 생각 전혀 없는거야 

  ? ”

 “ 누나... ”

 “ 피해갈 생각 하지마. 누나도 이제 작심한거야. 니 인생...아무래도 너 하고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어선 안 될것같은 생각이 들어서야. ”

 “ ...... ”

 “ 후우...뭐 어차피 밤늦은 시간이니...그만 들어가 쉬어라. 가만 생각하니...아직

  술이 다 깨지도 않은 널 붙잡고 긴 시간 이야기하는것도 아니구나. 하지만 대

  신 내일은 출근하지마 ! ”

 “ 네 ? ”

 내일은 평일이니 당연히 병일은 출근을 해야한다. 헌데 느닷없이 출근을 하지 말라니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어이없다는듯 지민을 바라보는 병일에게 그러나 지민은 여전히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 월차휴가를 내든...몸이 아프다며 하루 병가신청을 내든 하루 비워두란말야. 누

  나가 내일은 진짜 작심하고 보여줄게 좀 있어서그래. 그러니...여하튼 내일은 너

  출근 못한다. 지금 니가 그까짓 호텔리어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야. - 어차피 지

  금은 임시직이지 호텔리어도 아니지만 - 누나가 너한테 진짜 중요한걸 좀 보여

  주려 하니까 출근하지말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누나가 내일 할 이야기를 좀 마저

  해야겠으니까 말이야. ”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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