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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팬픽 - 한지민 (4) 기타 팬픽 (연예인, 그외)




                                 부제 : 정순왕후 스토리 현대판 버전 재해석



 13년후.

 병일은 초등학교까지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다. 병일이를 조기 유학을 보낸것은 지민의 자발적 판단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조금 사는 집에서는 너도나도 조기유학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기. 비록 병일의 할아버지인 황기선 회장은 경원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뒤 약 1년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어찌되었거나 기선의 집안 정도되는 재력을 갖춘 집에서 그래도 병일이를 조기유학 정도는 보내주는게 순리가 아닐까 하는것이 지민 나름대로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 그런것을 보면 병일이를 돌봐주는 지민의 마음에 진정성은 확실히 어느정도 담겨있는것 같다.

 그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동안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병일은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이 거의 끝마쳐갈때쯤이 되어 귀국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병일이 6년동안 줄곧 미국에서만 살았던것은 아니고 방학때 같은때는 종종 한국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병일의 미국 유학생활동안 학비며 생활비는 대체로 지민의 지원하에 충당이 되었다. 지민이 기선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는 병일을 지민은 ‘사랑하는 내 동생 황병일 ! 귀국환영 !’이란 문구가 써있는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병일이야 1년전 방학때도 한국에 들어왔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것은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지민이 병일을 알아보고는 바로 반색을 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 병일아 !!! ”

 “ 어 누나... ”

 “ 우와아앙~~~!!! 귀국 축하해 병일아. 그동안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고생 많아찌

  ? 그리고 누나가 우리 병일이 너무 보고싶어쩌~~~!!! ”

 1년만에 보는 병일과 그리고 그의 완전한 귀국이 그리도 반가운지 지민은 병일을 마구 안아보며 얼굴을 부벼보며 어쩔줄을 모르고, 헌데 병일은 그런 지민의 태도가 다소 당혹스러운지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을때는 영락없는 다정한 남매같은 그런 모습이다. 지민이 짐가방을 손수 들어 옮겨주고 있었고 병일이 그 뒤를 따른다. 지민은 그 사이 차 운전면허도 따 손수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지민과 병일은 이야기를 나눈다.

 “ 병일아...그래 그동안 어땠어 ? 공부는 잘 됐구 ? 아픈데는 없었어 ? ”

 “ 누나는 참...별 걱정을 다해요. 뭐 별일 없었어요. 보시다시피...그러니 이렇게 건

  강한 몸으로 돌아왔죠. ”

 어딘가 모르게 퉁명스러운 느낌이 드는 병일의 말투. 하지만 지민은 거기엔 크게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싱글벙글 미소를 지어보이며 차를 운전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병일이 여정을 풀고 점심때를 조금 지나 저녁때가 되어가는 어정쩡한 시간에 지민이 조금 일찌감치 아이에게 손수 밥을 해서 먹인다. 지민이 원래 음식솜씨는 좀 있는편이라 손수 김치찌개와 나물무침 등으로 한국식으로 식탁을 차려준다. 그리고는 어서 먹을것을 권하는 지민. 병일이 물론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그전에야 한국에서 쭉 살았고, 미국에서도 한국인 학생들과 교류가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라 한식을 어색하거나 하는 그런편은 아니다. 지민이 차려준 식사를 말없이 하고있는 병일. 지민이 그런 병일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 근데 병일아... ”

 “ 네, 누나. ”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답을 하는 병일. 지민은 그런 병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근데 병일이는 이제 어떻게 할거니 ? 어쨌든...대학은 한국에서 다니기로 한거니

  ...여하튼 대학은 진학을 해야할거아냐. 어디 가고싶은 학과라던가 진로는 생각해

  둔게 있어 ? ”

 어쨌거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진학을 앞둔몸이니 나올법한 자연스러운 주제의 대화.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병일이 대꾸가 없다. 그런 병일의 태도가 다소 의아스러워 지민이 말을 건넨다.

 “ 뭐야 ? 왜 대답이 없어 ? ”

 “ ...... ”

 “ 어쨌거나...미국의 학기제와 우리나라 학기제가 차이가 있고...그러니 우리나라

  새학기가 시작하는 내년 봄까지는 6개월의 시간여유가 있긴 하지만...어쨌든 그

  사이에 여기서 수능시험도 봐야하고 그래야할것 아냐 ? 헌데 아무런 대답도 하

  지 않고 있으면 어떻게 해 ? ”

 “ 누나... ”

 지민은 병일의 그와같은 태도가 진심으로 걱정되어 그와같이 물어본것이지만, 병일은 여전히 그 물음엔 대꾸가 없는채 지민을 말없이 바라본다. 웬지 모르게 느껴지는 심상찮은 병일의 눈빛에 지민은 순간 흠칫하기까지 한다. 병일의 말이 이어진다.

 “ 그냥...저 일단 당분간은 좀 쉬게 해주시면 안 돼요 ? 비행기로 장시간 여행을

  해서 여독도 풀어야하구... ”

 사뭇 어떤 짜증스러움과 귀찮음이라도 느끼는듯한 병일의 말투. 그 말에 자신이 너무 극성을 떤것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생겨 지민이 바로 사과의 말을 건넨다. 진심이 담긴 말이다.

 “ 어...그 그래...누나가 너무 유난을 떨었나보구나. 부담이 되었다면 미안해. ”

 “ 그렇게 생각하실것 까지야 없지만... ”

 묵묵히 수저로 찌개국물을 떠먹기도 하며 젓가락으로 나물등 다른 반찬을 집어먹기도 하며 식사를 계속하고있는 병일. 그렇게 식사가 다 마쳐가고 병일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 저 이만 올라갈께요. ”

 “ 어, 그래 병일아. 올라가서 쉬렴. 아, 참 그리고... ”

 병일이 지민을 돌아보는 가운데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니 방...2층으로 옮겨놓은건 알지 ? ”

 “ 네, 알아요. 아까 짐도 그리로 옮겨 놓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
병일이 원래 어릴때 쓰던방은 3층의 작은방. 아버지 규현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다섯 살때부터 할아버지 기선과 지민이 사는 집에 살게되면서 쓰게된 방이다. 하지만 그 방은 어느덧 성인이 다 되어가는 병일이 쓰기에 협소해 지민이 2층의 좀 더 큰 방을 쓸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어차피 지민도 기선이 세상을 떠난후 혼자 이 집을 지키게 되면서 자신의 쓰는방을 아예 1층으로 옮겨놓았으니 그렇게 지민과 병일이 각각 한층씩을 내려와 그 공간을 사용하게 된 셈이다. 원래 기선의 침대와 서재로 쓰던 방들은 지금은 모두 지민의 공간이 되어있다. 지민이 2층으로 올라가는 병일에게 말을 건넨다.

 “ 병일아...그럼 오늘은 2층에서 푹 쉬어. 그리고 다른 문제는 내일이든 다음에든

  마저 상의하도록 하자 !!! ”



 얼마후. 평일 오전에 별다른 하는일이 없이 집에 머물러있는 병일이 지민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어차피 병일로서도 어릴때부터 지민과 이렇게 한 집에서 살아온 셈이니, 그렇게 단 둘이 사는 형태에 대해 특별히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없다. 비교적 친숙한 말투로 지민에게 말을 건네는 병일. 테이블위에 놓인 차를 각자 음미하며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 근데 누나... ”

 “ 응, 병일아. 왜 ? 뭐 궁금한거라도 있어 ? ”

 “ 근데 누난 저 외국에서 유학하는동안 혼자 어떻게 지내셨어요 ? ”

 그게 좀 의문이고 납득이 가지 않기라도 하는것인지 그와같이 묻고있는 병일. 대체 그점이 왜 궁금한것인지 그에대한 부연설명이 덧붙여진다.

 “ 솔직히 누나도 아직 젊은데 저 한사람만을 돌보면서 이렇게 사는것도 쉬운일은

  아니었을테고...저까지 외국 나가있는 마당에 심심하거나 적적하지도 않았어요 ?

  그렇다고 무슨 만나는 남자나 친구가 있는것 같지도 않고... ”

 “ 얘는... ”

 하지만 지민은 원 별걸 다 궁금해하고 걱정한다는듯 그와같이 내뱉고는 말을 이어간다.

 “ 니 할아버지가 남기신 재산만 얼만데...그것 관리하는 일만도 보통이 아니다. 호

  남에 있는 녹차밭하며, 니 할아버지 소유로 있던 건물과 빌딩만 몇 개냐 ? 그것

  관리하는것만도 보통일이 아니야. ”

 “ ...... ”

 “ 어찌보면 니 할아버지가 당신 재산 관리할 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그래서

  날 택하셨던게 아닌가...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 지경인데...그러니 뭐...나 혼자 지

  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는...그런건 니가 굳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야. ”

 어찌보면 이른바 부동산 재벌이나 거액의 상속녀 같은 모습으로 지금까지 살아온것이 지민의 10여년 세월이었던 셈인데, 하지만 그 재산은 결국 뿌리를 따져보면 황기선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관리를 하는 형태가 된 것이니 어쨌거나 바로 그러한 형태로 지민은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다. 이번엔 지민이 병일에게 말을 건넨다.

 “ 그나저나 병일아... ”

 “ 네, 누나. ”

 “ 근데 넌 진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 어쨌든 한국에서 대학 들어갈 준비는

  해야할거아냐. 그러니...한번 구체적으로 니 생각을 이야기해봐. ”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 물음에는 다시 대꾸가 없는 병일. 그런 모습을 보니 지민이 다소 답답함을 느낄 지경이다. 혼자 잠시 생각을 하는듯 하더니 뭔가 결심이라도 한게 있는듯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어보고는 진지하게 병일을 바라본다.

 “ 병일아... ”

 병일이 말없이 지민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어차피 이렇게 된것...언젠가는 할아버지가 내게 남기신 말씀들을 네게 전해줘

  야 할때가 올거라고 생각은 해두고 있었지만...이제 그 보따리들을 조금씩 풀어

  야 할것 같구나. 우선 병일아. ”

 무슨 말을 하고싶은 것인지. 앞으로 대학진학 문제를 어찌할것이냐는 지민의 물음엔 별로 대답하고 싶은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던 병일이 얼굴에 약간에 긴장의 빛이 서리기 시작한다. 지민은 차 한모금을 음미하고 말을 이어간다.

 “ 우선...기왕 조기유학을 보낸 널...그렇다면 차라리 대학도 그곳에서 나오게 하는

  게 더 좋을것 같은데...왜 굳이 한국으로 불러들인건지 아니 ? ”

 이젠 웬만큼 사는 사람들중엔 자녀들을 조기유학까지 보내는것이 일종의 대세가 되었기도 하니, 기왕 아이를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국이나 카나다 같은곳에서 학교를 다니도록 한 경우라면 그와같은 조기유학에 - 물론 정작 현실에선 그와같은 조기유학 실패사례가 훨씬 더 많다고도 하지만 - 특별히 실패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한국으로 불러들일 이유는 없을것이다. 실제 병일은 학교성적도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대학진학은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의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헌데 왜 하필 지민은 병일을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이 되어 한국으로 불러들인것일까. 그 문제에 대한 의문점을 지민이 풀어주고 있다.

 “ 그건 니 할아버지 생전 지론이 그와같았기 때문이야. 할아버지께서 조기유학 자

  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아니셨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좀 더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을 갖는게 더 좋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계셨거든.

 ”

 ‘ 가령 한 10대때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시간 태반을 미국에서 학교를 보내며 미

  국 아이들과 어울린 아이들이 정서나 가치관같은 면에서 미국아이들쪽에 가깝겠

  나. 한국 아이들쪽에 가깝겠나. 그걸 생각해보란 말이지. 헌데 정서적으로는 한국

  인보다 미국인쪽으로 가까워진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한국에 들어와

  사업을 하든, 정치를 하든, 장사를 하든 다른 전문직종에서 일을하든...그 정서가

  어느쪽에 가깝겠느냐는 그 말이지. 가령 그 무슨 미국의 대도시 같은데서 학교

  를 다닌 아이들이 한국에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보편적인 다수의 서민들의 정서

  를 이해할수 있겠느냐 이 말일세. 외국유학이란게 보다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할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이점은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일을 하려는 아이들은 어

  느정도는 한국식 정서와 가치관 한국의 대부분 서민들,보통사람들...또 민중이라고

  도 하네만...그런 사람들의 정서와 좀 더 가까워진 다음에 외국으로 나갈 필요가

  있단 말이지. 그래야 나중에도 미국보다는 한국의 대다수 서민들을 위한 일을 하

  고, 장사를 하고, 그런 정책을 펴나갈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해보란말이지.

 ’

 한마디로 기선은 외국유학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가서 정서나 가치관이 한국인보다는 미국인쪽에 가까워지는 그런점을 우려한것이다. 더욱이 그런 조기유학을 보내기 시작한 계층이 대개는 어느정도 잘사는 집안의 자녀들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정서적으로 미국쪽에 가까워진 엘리트 집안 자녀들이 한국의 대다수 서민들의 정서와 가치관을 이해하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했던것이다. 한국인을 위해 일을 할 사람이라면 먼저 한국의 대다수 서민들의 정서와 가치관을 이해할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것. 헌데 기선의 지론대로라면 사실 병일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도록 조기유학을 보낼것이 아니라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보내고 그 이후에 외국유학을 보냈어야 이치에 맞을것이다. 헌데 지민은 기선의 그 지론과 바램을 거꾸로 행한셈이 된다. 여하튼 병일도 한참 자아나 가치관이 자리잡아갈 10대 나이 태반을 미국에서 보냈고, 그 미국에서의 고등학교 과정까지를 다 마칠때가 되어서야 지민이 병일을 한국으로 불러들인것이고 이후의 진로문제를 의논하고 있는것이다. - 지민의 머리가 그만큼 나쁘거나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봐야하는 것인지 - 여하튼 그렇게 들려준 할아버지의 이야기. 결국 병일의 진로문제와 연관이 되는 이야기기도 하고 시작 자체가 그렇게 뭉뚱그려져서 시작된 이야기기에 그 부분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 그리고 병일아... ”

 부르면서 지민은 잠시 한숨을 내쉰다. 그 표정에는 어떤 고민이나 회한 같은것이 서린 느낌도 들고. 잠시 말없이 물끄러미 병일을 바라보던 지민이 팔을 뻗어 병일의 볼을 어루만져보기까지 한다. 지민의 팔 길이가 워낙 길고 테이블도 그리 넓은 테이블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취할수 있는 행동이었다. 어떤 애틋함이 묻어나는 눈빛.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할아버지가 직접적으로 그런 말씀까지 하셨던것은 아니었지만... ”

 “ ??? ”

 “ 할아버진 널 내심 정치쪽으로 나가길 바라는 눈치셨던것 같아. ”

 “ 예 ? ”

 처음 듣는 소리라서일까. 병일은 너무 뜬금없어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마저 보인다. ‘ 아니, 뜬금없이 웬 정치 ? ’. 내심 그런 기분이 들고있는 병일을 바라보며 지민은 말을 계속 이어간다.

 “ 할아버지께서 생전 하셨던 말씀을 생각해보면...우리나라...혼란스러운 정치판...

  그런걸 종종 언급하시면서...그런 이야길 하셨었어...영조대왕 시절의 탕평책...그런

  말씀을 종종 하시더라. ”

 지민의 성격이나 그녀의 출신과 성장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정치같은데 관심 같은것을 갖거나 흥미를 가질 그럴 여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선이 했던 말들을 조합해서 그 정도의 판단 정도는 하는것 같다. 영조니 탕평책이니 하면서 생전에 기선이 했던말. 그것이 지민의 머리와 입에서 이와같이 가공되어 병일에게 전달되고 있다.

 “ 사실 그리고 나도 그런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보니까...나도 어느정도 납득이 가

  는 이야기더라. 그래 뭐...나도 울나라 정치판 맨날 여야니 보수니 진보니 그런식

  으로 갈라져서 싸우고...서로 내편,네편 편가르기 하고...그런 사이에서 어떻게 제

  대로된 인재가 등용될수 있겠느냐 ? 그런 말씀이셨던거지. 그러면서 그런 이념이

  나 사상적 편견을 버리고, 인물을 그 인물의 실력과 능력 그것을 기준으로만 판

  단하는 세상...그걸 할아버지가 바라셨던것 같아. ”

 헌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병일이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인 조선시대 영조대왕의 탕평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부분에 대한 지식은 오히려 병일이 고등학교를 중퇴한 유흥업소 출신 여자인 지민보다도 적을것 같다. 병일은 여전히 별다른 말 없이 지민을 바라만 보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몸에서 묘한 떨림과 흥분감 같은게 느껴지고 있다. 언젠가는 병일에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를 바야흐로 하게된데 대한 어떤 긴장과 흥분감인 것일까. 살짝 입꼬리까지 흔들리는 지민의 표정. 그녀가 병일의 손을 잡아본다.

 “ 황병일. ”

 “ ...... ”

 “ 할아버지도 생전에 말씀을 하셨지만...그렇다고 어른들이 너무 자녀들의 미래를

  강요하는것은 옳지 않다고 나도 생각해. - 뭐 너랑나는 부모자식 관계도 아닌 좀

  애매한 사이기도 하지만말야. 하지만 여하튼... ”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긴장된 가슴을 진정시키고나서 지민의 말은 계속되고 있다.

  “ 이젠 니가 한번쯤은 할아버지의 남기신 말씀을 그와같이 유념하고서 니 미래

  에 대한 어떤 판단을 했으면 좋겠구나. ”

 대학진학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그에대한 지민의 물음에 그간 아니 조금전까지만해도 어찌된 영문인지 별다른 대꾸가 없었던 병일. 그런 병일에게 지민이 이와같이 조부 황기선 회장의 뜻을 전해주고 있는것이다. 지민의 지금 이와같은 말을 어찌 받아들이고 있는것인지. 병일은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날. 지민이 병일을 데리고 차를 운전해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일종의 드라이브라도 즐기는 셈이라고나 할까. 헌데 어디로 가는것인지. 지민이 행선지는 말해주지 않아 병일로선 의아함을 갖지 않을수가 없는 가운데, 차는 서울 강북지역을 지나 계속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쪽지역은 병일도 이전까지는 와본적이 없는 곳이라 웬지 생경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 강북쪽도 아파트가 늘어선 지역도 있고하니, 꼭 무슨 달동네나 그런곳을 지나고 있다고 할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참을 달린 지민의 차는 어느새 서울을 벗어나 있었고 그리고나서도 북쪽으로 어느정도 달렸다. 이제 어느정도 한적해진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 그러나 주변에는 주택가 같은곳도 간간이 보이고 이곳저곳에 야산이나 언덕이 보이기도 한다. 헌데 지민은 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차에 타라고 한다. 지민의 말에 병일이 잠깐 맑은 공기라도 쐴겸 내렸던 차에 다시타고. 지민의 모습은 적어도 서울을 벗어날때까진 일류 드라이버라도 되는양 쌩쌩 잘 몰던 차를 이 근방 어디서부터인가는 헤매는듯 한 느낌이었다. 어떤곳을 찾기라도 하는것인지 몇 번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이미 지나쳤던곳을 두어번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찬가지로 간간이 마을도 좀 보이고 야산이나 언덕같은곳도 보이는 어느곳쯤에 다시금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 아...여기가 맞구나. ”

 여기가 맞다니 ? 여기가 대체 어디길래 저런 소리를 하는걸까. 병일로선 여전히 지민의 의도를 몰라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주위를 잠시 서성거리며 돌아보는 지민의 눈빛엔 어떤 감회마저 배어있었다. 병일이 별다른 말없이 설렁설렁 지민의 뒤를 따르는 가운데 인근에 보이던 마을어귀를 좀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그러다 어떤 가게에 들러 물건을 몇 개 사기도 했다. 산것은 그저 간단한 음료수와 생필품 정도.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살 필요는 없을것같은 어떤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데서도 흔히 구입할수 있는 그런 물품들이었다. 얼마를 그렇게 지민을 따라 함께 걸어갔을까. 웬 학교건물 같은게 보였다. 그러자 순간 지민이 놀란다.

 “ 어머... !!! ”

 순간 감격하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려보기까지 하는 지민. 눈에 눈물까지 고이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안으로 들어서는 지민. 병일이 옆에 동행중인것은 의식을 하는것인지 안 하는것인지. 마치 제 멋과 분위기에만 취해 혼자 이 근방을 돌아다니는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학교안 여기저기를 또 한참을 돌아본 지민. 그리고 운동장으로 나온다. 저쪽에 또 작은 야산같은게 보이고. 헌데 그러다 지민이 대뜸 그 야산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더니 병일에게 말한다.

 “ 병일아... ”

 “ 네, 누나. ”

 오늘따라 이해할수 없는 지민의 행동에 병일은 여전히 의아하고 얼떨떨한 가운데 지민은 사뭇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목에 힘을주어 말한다.

 “ 누나 말이다 이 다음에... ”

 “ ??? ”

 “ 이 다음에 죽으면...저 산 꼭대기에다 묻어줄래 ? ”

 “ 네 ???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죽으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야산 꼭대기에 묻어달라니. 순간 불길한 예감까지 스치는 병일은 걱정되는 말투로 지민에게 말한다.

 “ 누나...어디 아픈거에요 ? ”

 “ 이녀석이...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 ”

 지민 입장에선 그야말로 황당한 지레짐작이 된 것인지 기가막혀하며 병일을 바라보며 피식 헛웃음까지 터트린다. 갑자기 자신이 무슨 죽을날이 얼마 안 남은 중병환자라도 되는것처럼 착각을 했다니 얄미운 생각이 들어 살짝 꼬집기까지 하고. 꼬집힌곳이 아파 얼굴을 살짝 찡그린 병일에게 부연설명을 해준다.

 “ 그게 아니라...어쨌든 내가 너보다야 일찍 죽을지 모르는일 아냐. 뭐 70살까지

  살든 80살까지 살든...니가 나보다 열여섯살이나 어리니...나보다 먼저 죽을일은

  없을거아냐. ”

 “ 그...그거야 뭐 그렇겠죠. 근데 대체 왜... ”

 아무리 그래도 아직 30대 초반밖에 안 되는 젊은 여성이 그것도 서울을 벗어난 외곽의 시골마을까지 와서 난데없이 학교안까지 들어와 거기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야산을 가리키며 죽은뒤에 묻어달라니. 그 의도하며 이유하며 무엇하나 궁금하지 않을수 없는 일 아닌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지민이 마저 덧붙여준다. 나름 회한에 가득찬 감정을 담아.

 “ 실은 이 동네...누나가 어릴때 자랐던 동네야... ”

 “ 네 ??? ”

 사실 병일은 지민이 원래 술집여자 출신이고 그 전에는 어릴때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고등학교를 중퇴한뒤 그런곳까지 흘러들어가 일한 여성이란 그와같은 과거는 아직 모른다. 하긴 병일의 할아버지인 기선이 세상을 떠났을때 병일이 겨우 여섯 살이었으니, 그때 할아버지가 굳이 그런 이야기를 어린 손자에게 해주었을리도 없을테고, 그렇다면 지민이 특별히 말해주지 않는한 병일이 그녀의 그와같은 과거를 알턱이 없다. 지민은 다만 이후에 병일에게 ‘원래 요식업쪽에서 일하다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었노라’고만 말을 해 주었다. 그 정확성이야 어찌되었든, 지금 병일을 데리고 와 있는 이곳이 지민이 어릴때 자라던 동네란 소리 아닌가. 그래서인가. 여전히 회한과 감회에 가득찬 표정으로 지민이 병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저 들려준다.

 “ 한...국민학교 4학년때까지 누나가 이 시골마을에서 자랐던것 같구나. 그 무렵

  누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까말야...그때까지만해도 누난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였고... ”

 “ ...... ”

 “ 그땐 누나는 어린 마음에 저 산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인줄만 알았어. 아까

  여기까지 걸어오다 지나친 세거리 골목있지. 그쪽으로 쭉 더 들어가면 누나가

  어릴때 부모님이 살던 집이 나오는데...하긴 뭐 그게 벌써 언제일이니. 사실 이

  근처도 지금은 거의 신도시나 다름없이 많은것이 변해...누나도 이 동네 찾는데

  많은 애를 먹었는데...하물며 누나가 어릴때 살던 그 시골집이 지금까지 남아있

  을것 같지는 않구나. ”

 어릴때 살던집은 지금까지 그대로일것 같진 않아서 거기까지 가보진 않고 학교쪽으로 왔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 게다가 병일 입장에선 지민이 이런 시골마을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조금전까지만 해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을테니, 걸어오는 과정에 지나쳤던 삼거리 골목에서 또 한참을 쭉 들어가야 한다면 그만큼 시간도 걸릴테고. 여하튼 병일에겐 지루한 일이 되었을것이다.

 “ 누난 어릴땐 저 산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인줄 알았어. 그때만해도...여기가 지

  금은 편의점도 있고...뭐 지나오다 보니까 그런저런 문화시설 같은것도 보이고 할

  정도로 변하긴 했지만...그때만해도 꽤나 낙후된 시골마을이었으니까. 그런곳에서

  어릴때 자란 누나가...어린나이에 저 산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인줄 알았던것은

  뭐 그리 무리는 아닐터이지... ”

 90년대 중반에 기선과 결혼했을때 지민의 나이가 스물을 갓 넘긴 나이였으니 그녀가 국민 학교 4학년 무렵이던 혹은 그 이전이라면 대략 80년대 초,중반 정도가 된다. 사실 그때 정도면 그래도 교통이나 통신수단은 6,70년대에 비해선 많이 발전했을때니만큼 서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군단위 지역에 살던 소녀였다면 도시문물이나 문명을 접할기회가 그렇게까지 적지는 않았을텐데. 그래도 지민은 그 무렵 어린시절엔 학교앞에 보이는 야산이 세계에서 제일 큰 산인줄 알았다는 이야기다. 지민의 말이 계속된다.

 “ 그 뒤...부모님 돌아가시고...그 뒤에 너희 할아버지 만나기전까진 누나 삶도 파

  란만장했지만...언제부터인가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었어. 죽은뒤엔 누나가 어릴

  때 보고 자랐던 저 야산 꼭대기에 묻히고 싶다는...그래서 그 이야기를 지금 들

  려주는거야. ”

 마치 그 모습에선 13년전 기선이 지민에게 자신의 후사를 부탁하는 유언 비슷한 이야기를 남길때와 같은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사실 지금 지민이 무슨 남은 인생이 얼마 안남은 불치병이라도 걸렸다던가 그런 상태는 아니지만 - 오히려 지민은 적어도 아직 30대 초반의 여성의 나이에 딱 걸맞은 그만한 미모와 젊은 그리고 건강상태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 - 그래도 노회장의 세 번째 부인이 되어 살았던 짧은 2년 정도의 시간. 그리고 그 뒤에 황회장의 은혜를 갚기위해 어린 손자인 병일을 지금까지 돌봐온 10여년의 삶. 그리고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된 병일을 보면서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은 어찌해야하는가 그 고민을 나름대로 해왔던것 같다. 자신이야 어차피 기선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도 없는 처지고. 병일과는 이 아이가 여섯 살때 무슨 ‘언약식’ 같은것을 맺으며 지금까지 누나,동생 하는 사이로 살았었다. 사실 그때 여섯 살 어린아이였던 병일이 그 ‘언약식’의 의미를 어찌 받아들였을지는 지민으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슨 재미있는 소꿉놀이라도 되는양 생각했을지, 아니면 정말 무슨 심각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의식으로 받아들였을지. 여하튼 그런 병일 앞에서 지민은 이와같은 말을 건네고 있는것이다.

 “ 나 죽으면...저 야산 꼭대기에 묻어줘. 비록 저 산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산은 아

  닐지언정...저 산위에 올라간다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발 아래 놓이는것이 아닐

  지언정... ”

 “ ...... ”

 “ 그냥 누나는 이 다음에 죽어서...누나가 태어나고 어린시절 살았던 동네 그 동네

  에서만이라도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묻히고 싶구나. 지금 누나가 바라는것은 그

  것뿐이야. ”

 사실 따지고보면 인근지역에도 저 야산보다 높은산은 몇 개 더 눈에 뜨인다. 이 지역이 그렇게 작은 야산이나 언덕같은곳이 많은 곳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린시절의 지민이든 이후의 지민이든 그 많은 야산이나 언덕의 높이를 다 일일이 재 확인해보지는 않았을터이고. 여하튼 지민이 지금 병일에게 고백하는 그녀 자신의 유일한 바램은 자신이 죽은뒤에는 자신이 어린시절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늘 보아왔던, 따라서 그녀 자신의 추억이 나름대로 서려있기도 할 그 산꼭대기에 묻히고 싶다는 그 말을 병일에게 남기고 있는것이다.

 “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수 있겠지 병일아 ? ”

 병일을 바라보며 그와같이 말하는 지민. 병일은 여전히 말없이 지민을 바라만 보고 있다.


-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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