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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에이핑크 김남주 (8.마지막회) 걸그룹 팬픽 3(씨스타,에이핑크)



 남주는 일단 아이와 함께 친정에서 돌아와 있었다. 미영이 비록 영화와 남주 내외와 연을 끊겠다고 말은 했지만, 두 사람을 무슨 이혼이라도 시키려는것은 분명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신이 두 사람을 안 보고 살겠다고 말한것 뿐이니 둘이 그냥 그대로 사는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무엇보다 남주와 영화는 결혼후엔 따로 집을 마련해 나와살고 있는것이니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선 미영의 간섭을 받을일도 없고. 다만 그런일을 겪고나서 부터는 영화의 남주를 대하는 태도도 다소 달라져있었다. 적어도 그 이전까지 남주를 무척이나 아끼고 자상하게 대해주던 그런 영화는 이제 분명 아니었다. 영화 역시 지금은 자신이 마치 남주에게 속은것 같다는 기분이라도 드는것인지, 대체로 남주를 냉담하게 대하는 중이었다. 그 일 이후 아이와 함께 친정에서 돌아와 대략 2-3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말을 아주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는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남주에게 거의 건네지 않을 정도로 차갑게 아내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식사시간때쯤 영화가 이야기나 좀 하자고 남주를 부엌 식탁에 마주앉게 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도 거의 마무리되어 집으로 돌아온지도 어언 2-3주.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한 적이 없는 남편이 갑자기 왜 이러나. 의아함도 생겨 일단 영화 앞에 마주앉는 남주. 영화는 냉수 한 모금을 마신뒤 말을 건넨다.

 “ 단도직입적으로 뭐 하나만 묻자... ”

 남편의 의도를 알 수 없는 남주가 영화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가운데 영화는 남주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한번 내쉬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 그...무슨 고기라고 했던가 ? ”

 난데없이 왠 고기 ??? 지금 이 상황에서 아내보고 고기라도 구워달라는 소리는 분명 아닐테고. 대체 무슨소린가 싶어 남주는 여전히 어리둥절하기만 한 가운데, 영화는 뭔가 좀 답답하기라도 한듯 머리를 한번 긁적이면서 혼잣말처럼 말한다.

 “ 그...무슨 고기랬는데...하...참 왜 그게 생각이 안 나지 ? 무슨 고기랬더라... ”

 “ 자기 고기 먹고싶어 ? ”

 “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 ”

 남편이 난데없이 고기(?)를 자꾸 언급하자 남주 입장에선 그런쪽으로 이해할수밖에 없는것이고. 하지만 영화는 그런 남주에 더더욱 어이없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 남자가 오늘따라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순간 남주가 찔끔하는 가운데, 영화의 말이 이어진다.

 “ 그 무슨 고긴지 뭔지...이상한 역사책 있잖아. 거기랑 관계있는 곳이지 ? ”

 “ 자기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

 “ 아니, 근데 이 X이 정말 ? ”

 그러더니 갑자기 영화는 남주에게 컵의 물을 확 끼얹어버린다. 어쩌면 마음같아선 진짜 남주의 뺨이라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것이 지금 영화의 심정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남주가 자신을 우롱하고 기만하는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상태라고나 할까. 영화는 거친 목소리로 남주에게 말한다.

 “ 나...그러잖아도 얼마전에 인터넷에 접속해서...‘초록불의 잡학다식’에 들어가서

  초록불님한테 분명히 물어봤어. 가륵단군...그거 환단고기에 나오는 그 단군이지

  ? ”

 “ 뭐라고 ? ”

 하지만 남주는 정말 그런 문제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듯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으로 영화에게 말하고, 영화는 그런 남주를 더더욱 기가막혀하며 말한다.

 “ 너 자꾸 나 이런식으로 우롱하며 사기칠래 ? 그 개천성회인지 뭔지도 결국 그

  환단고긴가 뭔가...그런거 신봉하는 X들과 관계있는데잖아. 가륵단군이...그 환단

  고기에 가림토 문자 만든 사람이라고 나오는 단군이라며 ? 나 어쨌든 며칠전에

  인터넷에서 ‘초록불의 잡학다식’ 블로그에 다 물어봐서 확인해본거니까....속일 생

  각일랑 꿈도 꾸지마. 내 말 맞지 ? 환단고긴지 뭔지 그런거 신봉하는 X들이었던

  거지 ? ”

 “ 자기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나 정말 아무것도 몰라. ”

 하지만 남주는 진짜 환단고기든 뭐든 그런 문제에 대해선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다만 여하튼 가륵단군 어쩌구 하며 영화가 말하는 것으로 봐선 결국 자신이 고모와 함께 아이 치성을 드리러 갔던 그 ‘개천성회’란 곳을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짐작이 되는것이고. 남주는 더더욱 안타까운듯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해명의 말을 건넨다.

 “ 말했잖아. 난 그냥...어릴때부터...명절때나 무슨 일 있으면 친척들끼리 모이고

  그러는...그런곳이었다고. 난 그래서 그냥...어릴땐 그냥 명절때 친척들 모이고 하

  는 그런곳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것뿐. 나 진짜 그런거 아무것도 몰라.

 ”

 “ 아무것도 모른다면서...그리고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아직 산후조리중이라 몸

  도 다 안 풀린애가...그 새벽에 아기 탄생치성을 드린다고 강화까지 따라가냐 ?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는 소리야 ? 아직 가까운 거리 운동도 무리인 그 시

  점에 ? ”

 “ 자기 난 진짜 억울해. 난 그리고 어쨌든...고모님이 아이 치성을 드려야 한다고

  하시니까...난 그냥 좋은건줄 알고 따라갔었단말야. ”

 “ 무턱대고 따라갈데가 따로있지. 나이 서른에 이제 애까지 낳은 다 큰 여자가

  어른이 가잔다고 무작정 따라나서냐 ? 너 그럼 니 삼촌이나 고모가 너 지옥으

  로 같이 가자고 끌고가도 무턱대고 따라갈래 ? ”

 “ 자기야... ”

 헌데 이런 상황에서 ‘지옥’ 어쩌구 하는 말이 나오는것은 모양새가 좀 묘하긴 하다. 영화 입장에선 아무리 그렇기로 친척어른이 찾아와서 가잔다고 아무런 자기 생각이나 판단도 없이 무작정 따라나서냐는 그걸 책망하는 상황에서 나온 표현이긴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지옥으로 끌고간다’ 어쩌구 하는 표한. 모양새가 좀 그렇지 않은가. 남주도 괜시리 기분이 좀 이상해지는 가운데 영화의 책망은 계속된다.

 “ 그리고...다른건 몰라도...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 우리 엄마가...그토록 독실

  하신 교회 권사님인거 뻔히 아는애가...그걸 아는애가 아무 생각없이 그런데

  따라나서서 이 사달을 만들어 ? 아닌말로 쉬쉬하고 살아도 모자랄판에 ? ”

 “ 자기야...나 진짜 억울해. 나 정말 그런건 아무것도 몰라. 그냥 난 거기...어

  릴때 명절이면 친척들 모이곤 하는 그런곳인줄로만 알고 살아왔을 따름이야.

  그리고 말했지만...그쪽은 그렇게 우리랑 가깝게 지내온 친척도 아니고... ”

 “ 그러니까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거 아냐 !!! 니 말마따나...그렇게 서

  먹서먹한 친척간인데...그런 사람이 찾아와서 무슨 애기 치성을 드려야하느니

  어쩌느니 하는걸...그걸 무작정 따라나서 ? 아닌말로...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아

  서 곤란하다...그런 핑계를 댈수도 있는거잖아. 대체 무슨 애가 그렇게 생각이

  없어 !!! ”

 다른것은 몰라도 그 ‘개천성회’ - 가륵단군에게 대대로 치성을 드리던 곳 - 란 곳의 실체를 어느정도 알게된 지금은 영화도 남주에게 단단히 속은 기분이라 그 떨떠름한 감정을 쉬이 떨쳐내지 못할것 같다. 적어도 남주와는 결혼전에도 5년이나 같은 직장 선,후배 사이로 지내온 그런 사이였건만, 하지만 그 5년동안 지켜본 남주는 적어도 종교문제나 그런것들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는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 하물며 그 무슨 환단고기니 민족종교니 하는 문제와는 더더욱 거리가 먼 사람같아 보였고 - 영화 역시 비록 어머니가 교회 권사이긴 하지만 자신도 중,고등부 시절에만 잠시 교회에 나갔던것뿐 그 이후엔 대학때는 어차피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고, 졸업후에는 대체로 일 때문에 바쁘다는것을 핑계로 교회를 멀리해온 그런 사람이기에. 적어도 종교문제로 인해 결혼생활에 어떤 탈이 생긴다거나 할 일은 거의 없을줄만 알았는데 - 더 정확히는 애초부터 그런 문제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고 하는것이 맞을것이다. -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런 문제가 불거져 나오니 영화 입장에선 남주에 대한 떨떠름한 감정을 당분간은 떨쳐내기가 쉽지 않을것 같다.



 다시 5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남주가 출산을 한것이 8월의 일이고 그후 한달여 정도를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에 가 있었고, 헌데 그 사이에 남주의 큰할머니가 신앙생활 비슷한것을 해왔다는 일종의 유사종교 단체인 ‘개천성회’에 대해 미영이 알게 되면서 한바탕 난리가 난것이 그 사이의 일이었다. 그리고 남주는 출산후 한달만에 직장에 복귀했고,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온것은 출산후 두달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5개월 정도가 지난것이니, 남주가 출산을 한 시기로부터는 7개월 정도가 지난 해가 바뀐 이듬해 봄이다. 한편 남주와 영화의 관계는 그 사이에 어느정도 회복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혼때와 같은 깨가 쏟아지는듯한 알콩달콩 지지고 볶고 하는 그런 분위기로까지 돌아가지는 못했다. 다만 어쨌든 두 사람 사이에 이제 아이도 있고 하니, 그저 주위에서 흔히 볼법한 그런 평범한 부부중 하나 정도 되는 의미로 그렇게 결혼생활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직장은 물론 여전히 두 사람이 함께 다니고 있었다.

 남주도 영화도 출근을 하지 않는 토요일 오후 시간때쯤. 남주는 자신에게 걸려온 휴대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다름아닌 남주의 친정엄마 한은정 여사였다. 조금 오랜만에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인 셈이라 남주는 그에대한 반가움을 섞어 엄마에게 인사를 건넨다.

 “ 엄마,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 자주 좀 연락좀 주시지... ”

 “ 원 녀석두... ”

 남주의 하는 말로만 보면 마치 무슨 몇십년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이라도 되는듯한 느낌이다. 그만큼 딴에는 마음고생이 좀 심했던것인지. 감격해서 눈가에 살짝 눈물까지 고이고 있는 남주. 은정은 딸이 좀 유난스러워 보이는 느낌이라서인지 걱정이 되면서도 딸이 좀 주책맞아 보인다는듯 한마디 나무란다.

 “ 원 무슨...몇년만에 전화하는것도 아니고...그래도 겨우 한달만인데...뭘 그리

  감격해서 그런 소리를 다 하니 ? 누가보면 진짜 몇십년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

  이라도 되는줄 알겠다. ”

 “ 엄마도 참...반가와서 그러는거죠. ”

 “ ...잘 지내는거야 ? 요즘은 좀 어때 ? ”

 어쨌거나 딸이 그렇게까지 나오는 모습을 보니 은정도 걱정이 되어 그와같이 묻고, 엄마의 그와같은 물음에 남주는 평정심을 되찾은 목소리로 답한다.

 “ 잘 지내요 뭐...특별한 일은 없이.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

 “ 차서방은 ? 차서방은 잘 해 주고 ? ”

 “ 네, 엄마. 그렇게 큰 문제 있는것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둘이서 그

  래도 아이 키우면서 그렇게 무난하게 잘 지내오고 있으니까요. ”

 “ 그래. 어쨌든 결혼한 부부 사이에...아이라도 생겼으면...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함께 사는거지 뭐. ”

 여하튼 걱정말라는 딸의 말이 거듭되자 은정도 그쯤에서 마음을 놓기로 하고. 사소한 잡담 한두마디가 더 오고간 뒤 은정이 다른 중요한 용건이 또 있는듯 말을 거넨다.

 “ 아, 참 그리고말야... ”

 “ 네, 엄마. ”

 “ 사실은 이것 때문에 전화한건데 깜빡하고 있었네...아직 치매올 나이도 아닌데

  말야...너랑 다른 이야기 하느라 그만...너 재욱오빠 알지 ? ”

 “ 변재욱 오빠 말이에요 ? 네, 알죠. ”

 갓 태어났을때 간호사가 병원에서 떨어뜨리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 그때부터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는 사촌오빠. 그런 오빠가 한 사람 있다는 이야기를 남주도 영화에게 몇 번 한적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남주도 그런 (정확히는 고종사촌오빠) 사촌오빠에 대해선 당연히 알고있고. 그나저나 지금 갑자기 그 오빠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남주로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은정은 다소 뜻밖의 소식을 전해준다.

 “ 실은 그 오빠 죽었어. 어제 자살해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더라. ”

 “ 네 ? 뭐라구요 ? ”

 무슨 평상시에 절친했다던가 특별한 교류가 있었다던가 그런 사촌은 아닌 그저 어릴때부터 막연히 ‘어릴때 머리를 다쳐 정신이 성치못한’ 그런 사촌오빠 한 사람이 있다는 그 정도의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는 변재욱이란 존재니, 남주가 크게 충격받거나 놀랄일은 아니고. 다만 어쨌거나 아직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닐텐데 벌써 죽었다니. 그것이 남주를 조금 놀라게 만들었을 뿐이다. 더욱이 은정의 말로는 자살이라지 않는가. 남주는 사실 변재욱이란 사람의 나이도 정확히 모르지만 - 다만 남주의 기억에 자신이 초등학생일때 중학생정도 되었던걸로 기억하고 있으니 나이터울은 대략 5-6살 정도 나지 않을까 그렇게 짐작하고 있을뿐이다. - 여하튼 아직 자연사를 할만큼 그만큼 많은 나이가 아닌것만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헌데 그 재욱이 은정이 전해준 말로는 자살을 했다는것이다.

 “ 너 어떡할래 ? 문상갈래 ? ”

 “ 문상...이요 ? ”

 순간 약간 귀찮은 느낌마저 들면서 남주가 그와같이 묻고, 은정이 그런 남주에게 말한다.

 “ 싫으면 안 와도 되고...그쪽 고모님 말씀으로는 오늘 하루 문상받고 내일 장례치

  른다 하더라. ”

 자살한게 어제라고 한다면 여하튼 내일 발인을 하게되면 3일장 날짜는 그런대로 맞추는 셈이다. 여하튼 그런 문제가 남주가 크게 신경쓸 문제는 아닌것 같고. 다만 정 귀찮거나 싫으면 안 와도 된다는 은정의 말에 남주는 일단 가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 아뇨 뭐...그래도 인사는 잠깐 드리러 갈께요. 그래도...얼굴을 전혀 모르는 사촌

  오빠도 아닌데...이따가 시간내서 잠깐 들를께요. ”

 “ 그래 뭐...니 생각이 정 그러면 그러던가...여하튼 좀 안되긴 했더라. ”

 정신이 성치못한 시댁 조카뻘 - 남주의 엄마 은정의 입장에서 - 되는 사람이 아직 40도 안 된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니. 은정도 일단 안 되었다는 그 정도의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엄마와의 통화가 거의 마무리 되었을때쯤, 방에있던 영화가 통화내용을 대충 듣기라도 했는지 어느덧 거실로 나와 남주에게 말을 건넨다.

 “ 무슨 전화야 ? ”

 “ 아니, 엄마 전화야. 저...근데... ”

 “ 근데 뭐 ? ”

 영화가 무슨일인가 싶어 다소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남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듯 대체로 무덤덤하고 평범한 어조로 답한다.

 “ 그...내가 몇 번 이야기했었지. 변재욱이란 사촌오빠. ”

 “ 변재욱 ? 그 어릴때 머리를 다쳐 정신이 성치 못하다는 사촌오빠말야 ? ”

 그 이야기야 뭐 영화도 남주로부터 이미 몇 번 들은바 있으니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고. - 무엇보다 남주 큰 할머니 문상을 갔던날 겪은 황망했던 일이 있지 않은가. - 헌데 지금 갑자기 그 사람 이야기가 왜 나오는것인지. 영화로선 의아할수밖에 없는 가운데, 남주는 역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전해준다.

 “ 죽었대. 자살했다더라. 엄마말로는. ”

 마치 신문 가십기사 같은데서 본 모르는 사람의 자살소식이라도 전하듯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영화에게 말하고. 영화도 순간 다소 놀라긴 놀란 느낌이다.

 “ 무슨소리야, 그게 ? 그 변재욱이란 사촌오빠가 자살을 했다구 ? ”

 “ 그렇대. 엄마말로는. ”

 영화의 말에 역시 남주는 그와같이 답하고. 영화 입장에서도 어쨌든 별로 기억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영화 입장에서야 그다지 중요하거나 특별한 의미로 인식하고 있을만한 사람이 아닌지라 소식 자체가 뜻밖인것에 대해서는 다소 놀라긴 했으면서도 역시 담담한 어조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 어쨌거나 나이는 아직 젊을거아냐. 헌데 어쩐일로 자살을 했대 ? ”

 “ 그야 나도 모르지 뭐. ”

 “ 자긴 어떡할건데 ? ”

 “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 이따가 저녁때쯤 병원에 간단히 인사나 드리러 갈

  려구. 자긴 어떡할래 ? ”

 “ 글쎄에... ”

 문상을 가야 하는것인지 안 가도 되는것인지 순간 판단이 제대로 서지않아 약간 망설이고있는 영화. 남주가 그런 영화에게 말한다.

 “ 내키지 않으면 안 와도 돼. 나만 그냥 친척어른들한테 인사만 잠깐 드리고 올

  거야. ”

 “ 아냐아냐. 정 그러면 나도 같이가자.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아내님 가는데 내

  가 따라나서지 않는데서야 말이 되나. 아무리 사소한 곳이라도 우리 기왕이면 부

  부가 함께 가자구. 뭐 기왕 이렇게 된거 주말에 오붓하게 산책도 좀 즐기고 그러

  면 되는거지 뭐. ”

 “ 그래. 인사드리고 나서 자기랑 나는 시내에 어디 근사한 식당이라도 같이 가

  서 저녁이나 함께 먹자. 모처럼만에... ”



 재욱의 빈소가 마련된 병원에 남주와 영화가 도착했을때는 대략 늦은 오후시간. 아직 저녁식사때가 되기는 조금 전인 시간이었다. 문상객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 대체로 썰렁한 빈소. 다만 어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재욱의 부모 그리고 그 외 남주에겐 친척이 되는이 몇몇 정도가 빈소와 접견실을 지키고 있는 정도였다. 문상객이 한시도 끊이지 않고 쉴새없이 찾아오던 남주 큰할머니 상을 당했을때와는 그야말로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 ”

 정신이 성치 못한 사람이건 무엇이건을 떠나 그래도 아직 나이 40이 되기도 전인 사촌오빠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니, 그 진상 정도는 궁금해져 남주가 재욱 부모에게 물어보았다. 재욱 부모가 남주에게 전해준 사건의 진상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아무리 어릴때 간호사가 병원에서 떨어뜨려 머리를 다쳐 정신이 성치 못하게 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24시간 집안에만 가둬놓을수는 없는 일이라 가끔 외출이나 하면서 바람이나 쐬러 오라고 재욱 부모가 이따금 재욱에게 용돈을 몇푼 정도는 얹어주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그래도 지금까지 큰 사고를 치거나 한 적은 없었기에, 웬만하면 가끔씩 그렇게 외출도 하고 바람도 쐬게 해주는것 정도가 성치못한 아들을 둔 재욱 부모가 그에게 해주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조치인 모양이었다. 헌데 어제는 뜻밖에도 그렇게 외출을 한 재욱이 대관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63빌딩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63빌딩 옥상에 당도할때까지야 주위의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고 또 받을 이유도 없었던 재욱. 헌데 옥상에 당도한 재욱이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보더니 그가 이따금 입에담는 그 이상한 소리를 또 지껄여댔다는 것이다.

 “ 나는 듣보잡이 절대 아니다 !!! 나는 우주에서 제일 유명한...그 유명한 재욱씨다

  !!! 변재욱씨다 !!! 멸치대가리처럼 생긴 세계적인 미학자가 절대 아니다 !!! 나는

  서울대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학과 교수가 될테다 !!! 나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재욱씨다 !!! ”

 하늘을 우러러보며 그와같이 소리를 치고는 양팔을 하늘을 향해 쫙 벌리기까지 한 재욱. 어제의 하늘은 대체로 맑고 푸르른 편이었다. 헌데 그 하늘을 한참 바라보던 재욱이 감탄사 비슷한것을 내뱉었다.

 “ 아아~~~!!! ”

 그리고는 뭔가 진짜 황홀경에라도 젖은듯한 얼굴이 되더니 소리쳤다.

 “ 하늘이 노랗다아... ”

 그리고 재욱은 옥상 난간에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금 하늘을 우러러보며 외쳤다.

 “ 나는 듣보잡이다 !!! 멸치대가리처럼 생긴 세계적인 미학자가 될테다 !!! 내가 바

  로 그 유명한 재욱씨다 !!! 듣보잡이 아니고 천하의 변재욱이란 말이다 !!! ”

 그리고 재욱은 63빌딩 옥상 난간에서 투신해버렸다.

 “ 허허 참... ”

 영화가 다소 기가막힌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남주 큰 할머니 문상을 처음 왔을때 돌아가신 고인에게 절을 올리려 할때 갑자기 빈소로 뛰쳐들어서는 남주를 향해 ‘첩의 자식이 왜 절을 올리냐 ?’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변재욱이란 사람의 모습이 아직도 영화의 뇌리에 선하다. 그때 순간 황당하고 뭐 저따위 인간이 다 있나 싶기도 한 그때의 영화의 심정이었는데, 원래 정신이 성치못한 사람이란 설명을 남주로부터 듣고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날의 일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헌데 그 변재욱이 ‘나는 듣보잡이다 !!! 멸치대가리처럼 생긴 세계적인 미학자가 될테다 !!!’ 이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면서 63빌딩 꼭대기에서 투신했다니. 그저 세상에 참 별일도 다 있다는. 영화 입장에서 재욱의 자살 소식은 딱 그 정도의 의미로밖에 와닿지 않았다.

 “ 남주랑 영화 저녁 먹고 갈거니 ? ”

 남주가 출산을 했을때 그녀를 데리고 직접 강화까지 가 치성기도를 올리게 하기도 했고, 여하튼 여러 가지로 남주에게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는것 같은 그녀의 둘째 고모가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영화가 다른 바쁜일이 있다며 저녁을 먹고 가라는 둘째고모의 권유를 사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렇게 재욱의 빈소를 나왔다. 남주의 둘째고모 진숙은 그 뒷모습을 사뭇 안타깝게 바라보며 탄식조로 내뱉는다.

 “ 가륵단군의 정기를...혈구산 정기를 받아야 하는것을... ”



 재욱의 문상보다는 오랜만의 산책이자 나들이쪽에 더 방점을 둔 남주와 영화 내외의 외출. 두 사람은 재욱의 문상을 그렇게 간단히 마치고는 함께 시내로 나와서는 한 고급 레스토랑을 찾았다. 영화가 샴페인을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 그 샴페인 뚜껑을 터트린다.

 “ 자아~~~!!! 축배 !!! ”

 “ 웬 축배 ? ”

 축배야 그야말로 축하의 의미로 드는 술 아닌가. 헌데 난데없이 무슨 특별히 축하할일이 있는것도 없는데 ‘축배’ 운운은 좀 생뚱맞게 들려 남주가 물었고. 영화가 그런 남주를 바라보며 다소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 뭐 꼭 축하할일이 있어야 축배를 드는건가. 뭐 여하튼...우리 그동안 살아오면서

  고비도 좀 있었고...힘든일도 있었고...근데 그 모든 것 다 잊고 이제부터 다시 새

  롭게 시작해보자는...뭐 그럭저럭 겸사겸사 그런 의미가 다 포함된 그런 의미의

  축배지 뭐. ”

 “ 칫~! ”

 남주가 출산직후 그 ‘개천성회’에 가서 애기의 탄생치성까지 드린 문제로 교회권사인 시어머니 미영이 극도로 화를 내기도 했고, 심지어 아들 내외랑 연을 끊겠다는 말도 했었고, 영화 역시 그 ‘개천성회’란 곳의 실체에 대해 어느정도 알게되고 나서는 혹 남주가 실은 그녀도 그런곳의 골수분자이면서 자신을 속여온것은 아닌가 그런 의심도 들어 영화도 지금까지 대체로 남주를 따뜻하게 대해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하튼 그 부분에 대한 의심은 많이 풀린 상황이고, 다만 아직 미영이 며느리인 남주에 대한 노여움이 여전히 풀리지 않아 시댁과의 왕래는 여전히 끊긴 상태가 되어있긴 하지만 여하튼 그와같은 지난일을 다 잊어보고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잘 살아보자는 그 정도의 함축적 의미가 담긴 축배로 보면 될 것이다. 영화가 따라준 샴페인 잔으로 두 사람이 함께 건배를 하고 남주가 샴페인을 마신다. 샴페인은 약한술이니 만큼 그 정도는 남주도 한숨에 다 비울수 있는 능력은 된다.



 일요일 정오무렵. 남주가 아이를 안고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한 등나무 그늘 벤치에 나와 앉아있다. 이제 남주의 아이도 제법 자라 혼자 아장아장 걷기도 하고 ‘아빠’, ‘엄마’ 같은 간단한 단어를 입에 올릴줄도 안다. 자신이 낳은 아기가 그렇게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엄마된 입장에서 사뭇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기도 한 남주. 다만 아직은 그래도 아기니 혼자 제 멋대로 어디론가 걸어가려는 모습이 다소 불안해 만류하기도 한다.

 “ 혜라야 !!! 이리와 !!! 거기 위험해 !!! ”

 아스팔트 도로쪽으로 가는 아이를 위험하다며 이쪽으로 데려오려는 남주. 헌데 그쪽으로 가다가 웬 사람과 순간 부딪히고 만다.

 “ 어이쿠... ”

 “ 아...죄...죄송합니다 아주머니. ”

 아이가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어 이쪽으로 급히 온것인데, 그러다 되려 자신이 지나가던 행인과 부딪히고 말았다. 얼핏보니 네명 정도의 청년들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인가 아닌가. 얼핏 낯이 좀 익어보이기도 하고. 여하튼 거기까지 신경을 쓸 문제는 아니니, 남주도 부딪힌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니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담고. 남자들은 ‘괜찮습니다 아주머니’ 하고는 자신과 아이를 향해 씨익 웃어보이고는 자기들끼리 저쪽으로 걸어간다.

 “ 아주...머니 ? ”

 그건 그렇고 조금전 청년들이 자신에게 말한 ‘아주머니’란 호칭. 순간 괜시리 묘한 기분이 든다. 뭐 애까지 옆에 끼고 있으니 아이까지 있는 애엄마란 사실은 꼼짝없이 그대로 증명이 되는것이지만, 그래도 외모나 몸매 만큼은 아직 늘씬한 20대 처녀 못지 않은데. 괜한 서운함이 한켠 생기기도 하고. 그런 마음상태로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는데. 그때 저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며 남주에게 다가온다.

 “ OOO동에 사시는 아이엄마 아니세요 ? ”

 그와같이 부르는 소리에 누군가 의아해서 그쪽을 돌아본 남주. 일단 낯선 여자는 아니었다. 이따금 출퇴근길이나 또는 쉬는날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왔을때 몇 번 마주친적이 있는 인근 다른동 아파트에 사는 여인이었다. 남주도 여인을 알아보고는 바로 반갑게 인사한다.

 “ 네, 맞아요. 오랜만에 뵈네요. ”

 “ 그러게요. 아유...아이도 그동안 꽤 많이 컸네요. 아이 이름이 뭐랬죠 ? ”

 “ 혜라요...차혜라. ”

 “ 아아...네에...차혜라. ”

 아이 이름을 되뇌어보며 아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보는 여인.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두 여자 사이에 펼쳐진다.

 “ 많이 행복해 보이시네요 ? ”

 여자가 남주에게 건넨 말이다. ‘행복’. 남주가 잠깐 그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행복이라. 그 말 자체야 들어서 기분나쁠것은 없는 말이지만, 그녀 나름대로의 지금껏 거쳐온 시간들이 있어서일까. 그 단어 자체가 괜시리 묘하게 느껴진다.

 “ 행복...이라... ”

 “ ...... ”

 “ 어떤게 진정한 행복일까요 ? ”

 “ 글쎄요 뭐...저라고 지금 그걸 간단명료하게 답할 처지가 되진 못하지만... ”

 여인이 무슨 특별한 여자도 아니고 그저 이 근방에 사는 평범한 주부. 다만 남주보다는 나이가 한 열 살정도 많아보이는 중년의 여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인들 남주에게 진정한 행복의 정의를 설명해줄수 있을까. 여인은 다만 남주의 물음에 답 없이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잠시 그쪽을 바라본다.

 “ 행복은 결국 자신이 삶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

 “ ...... ”

 “ 그것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 ”

 여인이 말없이 햇빛쪽을 응시하고 있는 가운데, 남주는 그런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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