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 미영이 너무나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집으로 찾아왔다. 결혼전에 합의를 보았던것처럼 두 사람은 결혼후 분가해 따로 집을 구해 부부만 함께 살고있다. 그 아들과 며느리 내외의 집을 찾은 미영. 너무나 기쁘고 감격해 남주의 손을 한없이 어루만져보며 기특해서 어쩔줄을 모른다.
“ 아이를 가졌다고 ? 그러니까 이제 곧 내가 할머니가 된다는 말이냐 ? ”
할머니야 이미 앞서 시집간 딸이 둘이 더 있으니 오래전에 되었겠지만, 그래도 이번엔 며느리가 아이를 가진 소식이다보니 그때보다 한층 더 기쁨과 감격이 더한듯하다. - 이런걸 보면 확실히 미영도 남아선호사상쪽으로 의식이 많이 기울어져 있는 사람임은 분명한것 같다. 무슨 꼭 며느리가 아들을 보아야 한다느니 그런쪽으로 집착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딸 둘보다 막내인 아들에게 신경을 더 쓰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한편 남주는 자신을 기특해하며 하염없이 손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시어머니 미영앞에서 새삼 수줍은 마음에 빨개진 얼굴로 나지막히 말한다.
“ 아직 6주째에요. 그러니... ”
“ 그래그래. 아직 많이 조심하고 몸가짐을 삼가야할때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
겐 태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니 그것도 신경을 써야할거고. ”
“ 네, 어머니. ”
시어머니 미영의 말에 역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하는 남주. 아무리 미영이 며느리를 편하게 대해주려 한다해도 아무래도 시어머니 앞에서의 어려움과 부담감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미영이 그런 남주를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말을 건넨다.
“ 그리고 남주야... ”
“ 예, 어머니. ”
“ 내가 이미 지금껏 누차 이야기해왔으니 너도 잊지않고 마음에 새기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만... ”
미영의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남주는 묵묵히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만 있다. 살짝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본다.
“ 내 젊은시절부터의 소망은 오직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이 이 세상 끝날때까지
이 집안이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믿는 그런 건실한 가정으로 대대
손손 이어지길 바라는...난 정말이지 다른 욕심 없이 오직 그것만을 소망하며 지
금까지 하나님께 기도해온 사람이란다. ”
미영이 이미 이야기한것처럼 그 부분은 남주도 지금까지 그런대로 제법 많이 그녀에게 들어 익히 알고도 남음이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영화와 함께 그녀에게 처음 인사를 드리러 온 날, 남주에게만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며 다른 집안이나 재력, 사회적 지위 이런 문제는 별 신경을 쓰지 않으니, 행여 이단이나 사이비 같은 이상한 종교 같은거 믿는 그런 집안과 엮이는일만 없으면 된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부분에 대한 확인부터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때 분명히 ‘그런 이상한 종교단체와는 아무련 관련이 없겠지’ 하는 미영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던 남주. 미영은 그런 남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그러니 너도...그저 다른것 없이 이 시어머니 뜻대로...그 아이를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주의 자녀로 양육할 그것만 생각하며 바라고 기도하면 돼. 뭐 그
아이가 훌륭한 아이로 크길 바란다던가, 돈 잘버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던가...그
런 세속적인 기도를 하건말건 그건 네 자유이지만... ”
“ ...... ”
“ 다른것은 몰라도 이 집안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가정으로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 시어미의 절실한 기도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으니... ”
남주는 별다른 대꾸가 없는 가운데 미영의 말이 계속되고 있다. 남주는 묵묵히 고개만을 살짝 숙이고 있는 상태다.
“ 그런 이 시어미의 뜻을 받들어 너도 그 아이를 온전한 그리스도의 자녀로 잘
양육할 그럴 생각만큼은...반드시 잊지않고 지켜줬으면 좋겠다. 내 말 무슨말인
지 잘 알겠지 ? ”
헌데 어찌된 영문일까. 남주가 미영의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미영이 남주를 알게된지는 그녀가 미영의 집을 처음 찾아왔을때부터 이제 반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이지만, 지금까지 남주가 미영의 말에 ‘네’ 하고 대답하지 않은적은 없었던것 같은데. 미영이 약간의 의아함에 묻는다.
“ 남주 너 설마...이 시어머니 말이 고까운게냐 ? ”
“ 아...아니에요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전혀...당치도 않아요... ”
미영의 그와같은 말에 순간 화들짝 놀라 당치도 않다며 펄쩍뛰는 남주. 그 태도가 오히려 더 의아해져 미영이 말한다.
“ 근데 왜 시어미 말에 대답이 없어 ? 내가 한 이야기 듣고는 있었던게야 ? ”
“ 아...아뇨...네...듣고 있었어요...다만 잠깐...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
“ 원 녀석도 싱겁기는...시어미가 한창 말을 하는데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게
말이 되냐 ? 내 말은 그러니까...그 아이를 신앙안에서 잘 키워달라는 그 부탁을
했던게야. 무슨말인지 알겠어 ? ”
“ 네...자...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 ”
남주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가까스로 대답을 한다. 미영이 그런 남주를 살짝 흘겨보고. 지금까지는 그저 순하고 착해보이는 며늘아이인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소위 허당기질이라도 있는것인지. 기껏 시어머니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넋을 놓고 다른 생각을 했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그저 사소한 부주의 정도로 생각하고 크게 문제삼지는 않은채, 임신을 한 며느리를 다시금 기특하다는듯 품에 꼭 안아본다.
“ 고맙다 남주야. ”
자신의 손주를 가진 며느리 남주에게 그와같이 고마움의 인사를 건네는 시어머니 미영. 남주는 다시금 말이 없다.
“ 아무래도 네가 우리집에 들어온것은...정말 하나님이 우리집에 주신...내게 주신
복덩이 같아. 넌 아무리 봐도 우리집의 복덩이야. ”
눈물까지 글썽이며 남주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는 미영. 약간 무안하기라도 한지 남주는 살짝 그런 미영의 시선을 피하고 있고. 미영은 행여 아직 아이를 가진지 얼마 되지 않은 며느리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까 싶어 그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집을 나선다. 남주가 그런 시어머니를 배웅한다.
남주가 자신의 임신사실을 알게 된 것이 한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인 12월 말의 일이었고, 그때 병원에서는 임신 6주째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이듬해 8월에 남주는 출산을 했다. 딸이었다. 한편 남주는 한달전쯤 이미 직장에는 출산휴가를 냈고, 아이를 낳은뒤에는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중이었다. 시집을 간지 약 열달만에 친정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남주. 그러던 어느날. 남주의 친정집을 찾아온 한 여인이 있었다. 다름아닌 남주에게 둘째 고모뻘이 되는 김진숙이란 여인이다. 남주 큰할머니 상을 당했을때 영화와 함께 문상을 갔을때 바로 남주를 맞이하기도 했고, 할머니의 장지인 강화에서는 남주에게 어릴때 너 사촌언니들이랑 여기서 같이 어울리며 놀기도 했는데 기억나느냐고 묻기도 했던. 바로 그 고모 진숙이다.
남주의 큰할머니는 슬하에 모두 2남5녀를 두었는데 그중 첫째와 막내가 아들이고 중간의 다섯명이 모두 딸이다. 그리고 그 5자매중 둘째딸이 진숙이니 남주에게는 고모뻘이 되는것이다. 여하튼 그 진숙이 이제 막 출산을 한 남주를 찾아온것이다. 다소 뜻밖의 고모의 방문에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남주. 그런 남주에게 진숙은 편히 누우라고 말하고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 아이가 참...튼실하고 건강하게 생겼구나. 그리고 딸이라더니 남주를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
여하튼 조카뻘이 되는 남주가 낳은 딸. 그런대로 흐뭇한 표정으로 남주와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다가와서는 남주 손을 한번 꼭 잡아본다.
“ 그리고 남주야... ”
“ 네, 고모님. ”
자신을 부르는 고모 진숙에게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는 남주. 진숙이 남주에게 말을 건넨다.
“ 너...강화 기억나지 ? ”
“ 네, 알아요 강화.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이시잖아요. 그리고 저번에 할머니 돌아
가셨을때도 장지까지 함께 갔었구요. ”
“ 그래그래. 그리고 할머니 장지에 묻어드리고나서 기도드리던 곳도 알테고... ”
남주는 멀뚱멀뚱 진숙을 바라만보고 있고, 진숙이 그런 남주를 바라보다 살짝 얕은 한숨을 내쉰다. 무슨 나름대로의 다른 생각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고민이라도 되는것인지. 일단 진숙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다지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는 평범한 분위기인 가운데,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실은...애기가 태어났으니...가륵단군께 치성을 올려야 할것 아니니 ? 탄생치성
말이다. 그래서 함께 가자고 데려온거야. ”
“ 예 ? ”
순간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것인지 남주가 다소 어리둥절해하며 진숙에게 묻고. 별다른 부연설명없이 진숙은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 아이가 태어났으면...원래 가륵단군께 치성을 올리는거란다. 너도 알지 ? 할머니
도 그렇고, 또 그 위의 할머니도 그렇고...대대로 강화에서 가륵단군께 쇠고기 국
밥으로 치성기도를 드리던 분이란것을... ”
무슨말인지 알아듣는것인지 못 알아듣는 것인지 남주는 별다른 대꾸나 대답이 없고. 남주가 대체로 동의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진숙의 말은 이어지고 있다.
“ 가륵단군께 탄생치성을 올려야 다 아이들이 무병장수하고 이 다음에 학업성취,
소원성취,사업성취 다 이룰수 있는것을...그걸 안 해 가지고... ”
진숙의 얕은 탄식. 그러다 다시 남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 너...재욱이 오빠 알지 ? 변재욱 오빠 말이다. ”
“ 네, 아...알아요. ”
어릴때 간호사가 병원에서 떨어뜨려 머리를 다쳐 그때부터 정신이 이상해진 사촌오빠가 한명 있다는것을 남주는 오래전부터 알고있고, 그 이름이 변재욱이란것도 물론 안다. 헌데 지금 그 사촌오빠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인가. 진숙의 설명은 계속된다.
“ 언니도 그러니 진작에 가륵단군께 치성을 올렸어야 하는건데...그걸 안해서 아이
가 결국 그리된거지 뭐냐. 언니...그러니까 네게 큰고모 말이다. 재욱이가 큰 고모
아들 아니냐. ”
“ ...... ”
“ 우리 지연이,승철이 지금 저렇게 다 좋은 직장 다니고, 좋은데 시집가고 돈 다
잘버는것이 다 가륵단군께 탄생치성을 올렸기 때문에 저리된것인데... ”
다시금 탄식을 내뱉는 진숙. 그녀의 얼굴엔 나름대로의 착잡한 회한이 담겨있는것 같다. 진숙의 말을 지금 어찌 이해하고 있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주는 그저 별다른 대꾸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진숙의 하는말을 듣고만 있다.
“ 여러말 할것없이 이쯤되면 가륵단군께 치성을 올려야 하는 이치를 너도 알게다.
언니네 재욱이는 가륵단군께 치성을 안 올려서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머리를 다
쳐 저 꼴이 되었고...우리 지연이,승철이는 가륵단군께 치성기도를 올려서 잘 되는
게야. 무슨말인지 알겠지 ? ”
“ ...... ”
“ 남주도 그러니 아이 데리고 강화로 가자. 가륵단군께 치성을 드리기 위하여. ”
남주는 말없이 진숙을 따른다. 사실 진숙이 남주에게 말했던것처럼 그녀의 어머니, 남주에게 큰할머니 뻘이 되는 노인은 원래 어릴때부터 쭉 강화에서 ‘가륵단군’을 모시는 사당이자 기도터에서 가륵단군(* 환단고기 참조)께 쇠고기 국밥을 올리며 치성을 드리던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 가륵단군께 올리는 치성은 진숙의 어머니 그 윗대부터 대대로 내려오며 해온 전통이자 가업(家業)이라는게 진숙이 알고있는 자신의 집안 내력이다. 여하튼 바로 그러한 연유가 있는 집안이니, 진숙은 자신의 조카뻘이 되는 남주에게 그 아이 역시 가륵단군께 치성을 올려야 하니 치성기도를 올리러 지난번에 갔단 강화 그곳(* 진숙이 설명한것처럼 실은 그곳이 소위 ‘가륵단군’을 모시는 일종의 사당겸 기도터인 것이다. 일종의 유사종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에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주는 진숙의 그와같은 요구에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순순히 응했다.
아이가 태어난 ‘탄생치성’ 기도는 새벽에 올려야 하는 것이라 강화까지 가는 시간을 감안 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밤 시간에 집에서 출발하였다. 남주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진숙이 운전하는 차에 탔다. 진숙은 운전을 시작하고, 아이를 안은채 뒷좌석에 앉은 남주가 다소 걱정이 되는지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 애기는 자니 ? ”
“ 네, 고모님. ”
“ 그래. 난 또 혹시...애기가 너무 조용해서 걱정을 했지. 남주도 지금은 어차피
밤이니까 의자에 누워 편히 자거라. ‘개천성회(開天聖會)’에 당도하면 그래도 바
로 치성준비에 들어가야 할테니까. ”
어쨌거나 새벽에 의식을 치른다니, 그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밤늦은 시간에 출발한 것이니 지금은 자는것 외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아이를 안은채 남주도 비스듬히 차 뒷좌석에 누워 잠이 든다. 그리고 두시간여가 걸려 강화에 있는 개천성회에 당도하였다. 바로 남주 큰할머니를 장지에 묻고나서 찾아왔던 곳이고, 장례를 다 마친뒤 친척들이 함께 휴식을 취하며 정담을 나누기도 했던곳. 실은 그곳이 바로 소위 가륵단군께 치성을 올리는 사당이자 기도터이고, 남주 큰할머니 되는분이 젊은 시절부터 ‘쇠고기 국밥’을 올려 꾸준히 치성을 드려왔다는 곳. 그리고 그곳의 정식명칭이 ‘개천성회(開天成會)’인 것이다. (일종의 민족종교 계열의 ‘유사종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한마디로 정식 종교단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점집이나 무당 굿하는 곳도 아닌 중간단계의 애매한 곳이다.)
개천성회는 정확히 가륵단군을 모시고 그리고 기도와 의식 같은것을 벌이는 일종의 중앙의 성전 비슷한 곳과 그리고 그 옆 한쪽엔 천도제나 제사,장례 의식을 치르는 장소(남주 큰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장지에 할머니를 매장한 뒤 찾아왔던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작은방과 그 외 일반인들이 찾아와서 묵거나 휴식을 취할수 있는 살림방 두 개정도. 그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다. 진숙이 남주를 데리고 ‘개천성회’ 안으로 들어섰을때 하얀 두루마기 차림의 한 여인이 그 안에서 나와 진숙과 남주를 맞이했다. 진숙은 그 여인에게 정중하게 절을 올리고, 진숙은 우선 남주의 아이를 그 여인에게 맡긴뒤 남주는 살림방중 한 곳에서 잠시 쉬게했다.
남주가 들어간 방은 무슨 특별할것은 없는 글자그대로 일반인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묵을수도 있는 살림방 비슷한 곳이었다. 이불장과 옷장이 한쪽에 놓여져있고, 한쪽에는 TV도 놓여져 있었다. 남주는 대체로 덤덤한 분위기로 그 방 한쪽에 앉아있었고 잠시후 진숙이 방안으로 들어와 뭔가 옷보따리 같은것을 건네주었다.
“ 잠시후 이 옷으로 갈아입거라. 가륵단군께 치성을 드릴때 입어야 할 옷이다. ”
남주가 보따리를 풀러보니 그것은 평범한 한복이었다. 어쨌든 단군께 치성을 올릴때 입을 옷이라니 남주가 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새벽 4시를 좀 넘었을때쯤 한 여인이 들어와서는 남주에게 어서 나오시라는 말을 전한다. 아까 진숙과 함께 ‘개천성회’ 안에 들어섰을때 두 사람을 맞이했던 바로 그 여인이다.
애기에 대한 탄생 치성기도는 가륵단군을 모신 본래의 사당(굳이 개념을 설명하자면 중앙의 대성전쯤 된다고나 할까 ? 그렇다고 그렇게 넓은 공간은 아닌 5-6평이나 조금 넘는 그 정도의 공간이긴 하지만) 옆의 작은 방에서 드리게 되었다. 방의 크기는 옆 사당의 3분의 1 정도 되는 공간이었고 그 앞에는 옆의 사당 처럼 이른바 ‘가륵단군’이란 이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또 다른 작은 조각상 같은게 놓여있기도 했다. - 정확히는 ‘삼신할머니 상(像)’이지만 남주가 그런것까지 알지는 못 한다. - 한복으로 갈아입은 남주가 이미 진숙과 함께 그 안에 들어선 상황에서 잠시후 두루마기 차림의 여인이 뭔가를 상에 담아 가져와서는 제단에 올려놓는다. 물그릇과 미역국 그리고 밥이담긴 그릇이다. 그것들을 공손히 제단에 올려놓고 나서는 여인은 목탁을 들더니 그것을 두드리며 가륵단군께 절을 올린다. 진숙과 남주도 그녀를 따라 절하고. 여인은 목탁을 이따금씩 두드리면서 무슨 주문이나 염불 같은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밥그릇과 국그릇에 담긴 음식물을 떠서 옆의 또다른 빈그릇에 담기도 하고. 그런식으로 마치 무슨 제사의식 비슷한 절차가 진행된뒤에 다시금 여인이 목탁을 치며 주문을 외운다. 잠시후엔 이번엔 남주보고 아이를 데려오라고 한 뒤, 아기를 이번엔 제단앞에 내려놓고는 또다시 무슨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그렇게 한 30분은 조금 넘는듯한 시간이 걸려 ‘탄생치성’ 의식은 마무리 되었다.
이제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어도 좋다는 진숙의 말에 남주는 조금전 그 방으로 돌아가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는 사이에 진숙이 아이를 다시 데려오기도 했고 남주는 아이를 안아보았다. 괜한 안쓰러움이 밀려드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아이를 말없이 꼭 안아보고는 방 구석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남주. 그때쯤 진숙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 남주 뭐하니 ? ”
“ 네...그냥 있어요. ”
진숙의 말에 남주가 짤막하게 그와같이 답하고 진숙이 그런 남주에게 말을 건넨다.
“ 치성기도는 다 끝났고, 이제 봉명보살(鳳鳴菩薩)님께 인사 드리자. ”
봉명보살이란 바로 아까 남주 아이에 대한 탄생치성 의식을 진행하던 여인을 말한다. 여인은 이 ‘개천성회’를 지키는 집주인격이기도 했다. 개념을 붙이기가 좀 모호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녀가 이 개천성회란곳의 전체를 주관하며 이곳에 상주(常主)하는 사람이다. 보살의 살림방은 사당에선 조금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까 남주가 옷을 갈아입고 하던 방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였다.
“ 어서 들어오세요. ”
진숙과 남주가 들어오자 봉명보살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그들을 맞이한다. 아까는 한복 두루마기 차림이던 그녀는 지금은 편한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개천성회에 들어설때는 어두운곳이라 몰랐는데, 밝은곳에서 보니 생각했던것보다 젊은 여인이었다. 어두운곳에서 보았을때는 막연히 나이가 많은 여자려니 짐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새파랗게 젊은 묘령의 여인은 아니고, 얼핏 짐작해보면 남주보다는 조금 많아보이는. 한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로 추정되는 여인이었다. 봉명보살은 일단 진숙을 바라보며 사뭇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말한다.
“ 그러고보니... ”
“ ...... ”
“ 추산부인(秋山婦人)께서 열반하신지도 어느덧 1년 이상이 지났군요. ”
“ 네, 그렇지요. 어머니 돌아가신지가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
‘추산부인(?)’ 어쩌구 하더니 두 사람의 대화로 봐서는 결국 작년 봄에 돌아가신 남주 큰 할머니를 말하는 것인가보다. 남주 큰할머니가 남주에게 고모뻘이 되는 진숙이란 여인에게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니까. 봉명보살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 저희 어머니와 추산부인께서 이곳 개천성회를 지키시며 가륵단군을 모신것이
어언 수십년 세월인데... ”
“ ...... ”
“ 그러고보면...이제 저희 어머니도 추산부인도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시고...그
렇게 무상한 세월이 빨리도 흘러가 버렸습니다. ”
“ 그렇습니다. 5만년 지구사에 비하면 우리네 백년 인생은 진짜 너무나 짧고도
허망하기만 합니다. ”
5만년(?) 지구사라니. 지구 역사가 45억년 내지 50억년에 이른다는것은 과학자들이 다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공인된 연구결과다. 헌데 이 개천성회를 지킨다는 봉명보살과 추산부인의 둘째딸이 되는 진숙이란 여인은 지구사(?)가 오만년이라는것 아닌가. 남주로서는 어리둥절할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여하튼 개천성회를 지킨 노인들이라는 그 두 여인의 딸이 되는 봉명보살과 진숙의 대화에 의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뭐 어찌되었거나 50억년이든 5만년이든 백년도 못사는 사람의 인생은 거기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것만은 변함없는 사실 아닌가. 그리고 그 문제야 남주가 뭐라고 끼어들거나 이의를 제기할 일도 아니니 그녀는 그저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다. 남주로서는 알아들을수 있을것도 같고 도저히 무슨 이야긴지 알수도 없는 두 사람의 무슨 암호같은 대화가 어느정도 이어지더니 이번엔 봉명보살이 다시 남주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 그러니까...이 연화보살이 조카님이 되는 것이지요 ? ”
“ 예, 그렇습니다. ”
(* 연화보살(蓮華菩薩)이란 이곳 개천성회에서 일반 여인들을 부를때 그냥 부르는 호칭이다. 마치 교회에서 ‘자매님’이라 부르는것 처럼)
봉명보살이 말없이 남주를 바라보고 있다. 여인은 대체로 온화해 보이는 인상이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웬지모를 위압감 내지는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했다. 여인이 무섭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하튼 남주 입장에서는 쉽게 범접할수 없는 어떤 신비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남주는 별다른 말이 없는 가운데 봉명보살이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 복 받으실거외다. ”
온화한 음성으로 그와같이 말하는 봉명보살. ‘복받는다’니 나쁜뜻은 분명 아니건만, 그래도 웬지 모르게 남주 입장에선 개운찮은 뒷맛이 느껴진다. 남주의 그런 기분과는 아랑곳없이 그녀의 말은 이어진다.
“ 이곳 ‘개천성회’는 혈구산 정기와 수맥을 5만년동안 지키며 가륵단군을 모셔온
사당이외다. 그러니 가륵단군께서 혈구산 정기로 아이를 지켜주실것이니 보살님
의 아이도 향후 백년동안은 무탈하게 복받으실거외다. ”
그네들 말마따나 인생사가 백년이니 백년동안 무탈하게 복받는다면 한 인간으로서 뭐 그 이상 바랄것은 없을것만 같다. 어쨌든 남주는 별다른 대꾸는 없고, 봉명보살은 다시금 온화한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봉명보살에 대한 인사는 그 정도로 마무리되었고 진숙과 남주는 그 정도에서 개천성회를 나오게 된다. 봉명보살이 개천성회를 나서는 진숙과 남주를 배웅하게 된다. 진숙이 봉명보살에게 합장례를 올린다.
“ 미륵성존(彌勒聖尊)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만안(萬安)하시오소서. ”
“ 만안하시오소서. ”
그와같은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합장례를 주고받은 진숙과 봉명보살. 남주는 아이를 안은채 진숙의 차에 타고, 진숙이 차를 운전해서 이제 다시 강화를 떠난다. 진숙의 차가 강화대교를 건널때쯤에는 어느덧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 무슨소리야 그게 대체 !!! ”
미영이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영화는 그 미영 앞에서 어쩔줄을 모른다.
“ 남주가 어딜가서 뭘 어떻게 했다구 ? ”
“ 어...어머니 저... ”
당혹한 영화는 이 사태(!)를 미영한테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어쩔줄을 모르는 모습이고, 미영에게선 기가막히고 황망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영이 아들 영화를 다그친다.
“ 영화 너 아는데까지 사실대로 이실직고 해 !!! 대체 너 언제부터 뭘 어디까지 알
고 있었던거야 !!! ”
“ 어...어머니 그게 저어... ”
“ 어서 바른대로 이야기하지 못해 !!! ”
테이블을 손으로 내려치기까지 하며 불같이 화를 내는 미영. 영화가 가까스로 그런 미영을 달래며 대답한다.
“ 어머니...시...실은 저도 잘은 몰라요... ”
“ 모른다니 !!! 그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야 !!! ”
“ 어머니... ”
영화도 잔뜩이나 난감하고 곤혹스러워 대체 이 사태를 어찌 대처해야할지 몰라 어쩔줄 모르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미영은 그런 아들을 거듭 다그쳐댄다.
“ 남주 이 기집애 지금 어디있니 ? 남주 지금 어디있냐구 !!! ”
“ 나...남주 지금 친정에 있잖아요. 아직 산후조리중인데... ”
“ 산후조리라니 !!! 지금 회사에 출근은 한 대매 !!! ”
남주가 출산을 한지는 이제 한달여 정도가 지났고, 실제 남주는 출산휴가 기간이 다 끝나 얼마전부터 직장에 출근은 시작했다. 다만 몸이 완전히 안정된것은 아니라 아직은 친정에 머무는 중이었다. 그러나 미영은 더 들을것도 봐줄것도 없다는듯 무섭게 영화에게 호령한다.
“ 친정이고 뭐고 당장 내 집으로 오라고 해 !!! 아니면 내가 지금 직접 그리로 간
다고 전해 !!! 뭘하고 있어 너 !!! 남주 그 X 당장 내 집으로 오라고 전화하지 못
하겠어 !!! ”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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