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날. 나이 서른정도 되어보이는 네명의 장정이 각기 관 한귀퉁이쪽을 맡아 그쪽에서 관을 들쳐메고 영구차로 옮기고 있었다. 나이 서른 안팎의 네 남자는 다름아닌 고인(故人)의 손자와 외손자들이다. 고인은 생전에 슬하에 총 2남5녀를 두었고, 그 밑으로 손자와 외손자를 모두 다섯을 두었는데 그중 정신이 성치못한 변재욱을 제외한 나머지 네명의 손자들이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인도하고 있는 중이다. 관이 영구차 안으로 들어가고 손자와 외손자들은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사라도 드리듯 가벼운 목례를 올린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타야하는 칸으로 들어가 차에 탑승한다. 다른 유가족들도 한명한명 영구차에 타고 있었다.
남주도 조금 늦게 그곳에 도착한 영화와 함께 영구차에 탔다. 첫날엔 비교적 평온한 얼굴로 문상을 드리던 남주였는데, 전날에는 아마 다른 문상객들 맞이하는 일을 도와드리느라 분주히 움직인 탓인지 인상이 비교적 피로해보인다. 장지까지 갈 예정인 영구차에 탈 사람들이 모두 타고 잠시후 버스가 움직인다. 남주는 말없이 창밖을 내다본다. 영화가 그런 남주에게 말을 건넨다.
“ 남주야... ”
자신을 부르는 영화를 바라보는 남주. 영화가 남주에게 뭔가를 건네준다.
“ 피로할텐데 영양제라도 하나 들지 그러니 ? ”
언제 준비했는지 그러면서 작은 알약을 하나 건네주는 영화. 아이스박스에 있는 생수통 하나를 꺼내 그것과 함께 건네주는 모습. 자신에게 그와같이 신경을 쓰는 영화에게 살짝 고마움을 느끼는지 남주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오른다. 처음엔 영화가 자신의 큰할머니 문상에 따라가겠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고 난감하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이 남자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것이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영화가 건네준 알약을 먹고, 남주는 여전히 별다른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일요일 오전시간이라서인지 시내길은 비교적 막히는 편이다. 그래서 제법 적잖은 시간이 걸려서 버스는 서울시내를 빠져나가고, 영화는 다소 의외인듯 남주에게 묻는다.
“ 화장터가...어디니 ? ”
요즘은 웬만하면 거의다 화장을 하니까, 아마 남주의 큰할머니란 분도 그렇게 장례를 치를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화장터라면 보통 서울시 외곽쪽에 마련되어 있는곳이 많다. 하지만 방향이 그쪽이 아닌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나보다. 의외인듯 묻는 영화에게 남주가 짤막하게 대답해준다.
“ 강화까지 가는걸로 알고 있어요. ”
“ 강화 ? ”
난데없이 웬 강화 ? 영화로선 의아하고 다소 놀란듯한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는데, 남주는 역시 거기에 대해서도 짤막하고 또렷하게 대답을 해준다.
“ 할머니 고향이 강화시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묻는걸로 알고 있어요. ”
그 정도 정보와 이야기쯤은 남주도 간밤에 다른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고 있을것이고,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짤막하게 영화에게 해준것이다. 헌데 남주 큰할머니 고향이 강화라니. 영화로선 어쨌든 다소 뜻밖의 사실을 접하게 된지라 공연히 남주를 위,아래로 훑어보는듯 하기까지 하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 할머니 고향이...강화셨구나... ”
남주는 별다른 대꾸가 없는 가운데, 버스는 계속하여 달리고 있고. 한두시간여쯤을 더 달려 결국 강화에 도착하였다. 강화에서도 내륙쪽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 있는 시골마을. 단순한 시골마을이라기엔 어떤 관광지 분위기 비슷한 느낌도 나고. 실제 가끔 단체 여행객들인듯한 등산객이 오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버스는 어느 산 인근 지역에 도착을 하고. 유가족들이 차에서 내린다. 잠시후 유가족 몇 명이 그곳에서 좀 떨어진 마을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누군가 몇 명을 데리고 오는것이 영화의 눈에 들어왔다. 영화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장지(葬地)로 올라가는 유가족들을 따라 남주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장지는 산 중턱쯤에 마련된 묘역이었고 거기에 남주 할머니가 묻혔다.
한편 매장 의식을 다 마친 유가족들은 산을 내려와서는 어느 모퉁이 골목쪽을 돌아 웬 작은 집채로 들어간다. 낡고 허름한 집채는 지은지가 꽤 오래되어 보이는 느낌인데, 그곳에서 흰 옷 차림새를 한 남녀 몇몇이 나와 유가족들을 맞이했다. 정중하게 제법 합장까지 하고. 영화는 흰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들도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인가 짐작했다. 헌데 들어가보니 그 집채안의 분위기가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얼핏보니 무슨 돌탑 같은게 있기도 하고 여기저기 부적이나 족자 비슷한게 붙어 있기도 하고. 무슨 점집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잠시후 유가족들은 그 집채의 사람들과 함께 어느 방으로 다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후 그 안에서 어떤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의식의 순서는 제법 길고 요란했다. 무슨 징소리,꽹과리 소리, 요령소리 같은것이 들려오기도 했고. 무당 옷차림 비슷한것을 한 나이많은 여자가 앞에서 한참을 요령을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도 보였다. ‘대체 여기가 뭘 하는 곳인가 ?’ 영화로선 어리둥절함과 의아함으로 가득할수밖에 없는 가운데. 의식은 한참동안 진행되었다. 잠시후엔 유가족들이 차례대로 방 앞에 놓여진 영정사진과 제단 앞으로 가 차례대로 절을 올렸다. 가족들은 잠시후 남주와 영화에게도 절을 올리라 했다. 그렇게 한시간여쯤 걸쳐 제법 긴 그와같은 의식 절차가 진행되었다.
“ 남주 너 여기 기억나니 ? ”
장례의식이 그렇게 다 치러진후 유가족들은 집채의 다른 방에 삥 둘러앉아 그곳에서 제공된 식사를 하며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에게 손자뻘이 되는 젊은 사람들은 그 집채안이 좀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지 저마다 밖에나와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남주도 영화와 함께 집에서 나와 집 뒤쪽의 제법 넓은 들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들판은 꽤 넓은 평야 비슷한곳. 여기서 축구나 농구같은 운동을 해도 될것만 같은 그런 평평하면서 드넓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남주는 영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대충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집채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와 남주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러고보니 그저께 문상을 처음 갔을때 남주를 맞이했던 그 여인이었다. 남주는 그녀를 ‘고모’라고 불렀고. 그녀와 또 다른 여자 한두명이 여인의 뒤를 따라나섰다.
“ 남주 너 여기 어릴때...자주 놀러와서 놀고 그랬었잖아. 미영이언니,은영이 언니
그리고 지연이랑 혜수. 그리고 너희 은주랑 남주까지. 니들 여섯이 맨날 여기와
서 뛰어놀고 그랬어. 그거 기억 안나 ? ”
“ 언니도 참...남주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우 ? 한참 어릴때 일인데...남주는 아마
기억 못할걸 ?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니말야. ”
“ 얘는...그게 무슨 남주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니 ? 남주 초등학교때도 여
기 몇 번 왔었을걸 ? 안 그래 ? 기억 안 나 ? ”
남주에게 고모뻘이 되는 60 안팎의 여인 두명이 그렇게 자기네들끼리의 지레짐작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지만 남주 입장에선 진짜 생판 영문모르는 소리가 되는 것인지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살짝 그녀들을 흘겨보기만 한다. 영화가 그 분위기의 어떤 어색함이라도 느껴지는지 남주 앞을 살짝 막아서며 여인들에게 말을 건넨다.
“ 저...저희 남주가 많이 피곤한것 같아서요...가자 남주야. ”
그러면서 살짝 자리를 피하는 두 사람. 남주와 영화가 그렇게 저만치 가는 뒷 모습을 보면서도 여인들은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 저이는...남주 남자친구인가보네 ? ”
“ 그러네요 ? 젊은 친구가 그래도 참 지성이네. 여기까지 따라와주는걸 보면...그
리고...그러고보니 진짜 남주도 이제 시집갈때가 되었구나 ? ”
“ 남주 나이가 지금 몇 살이지 ? 대학은 아마 남주도 졸업했을테고...아직 서른
은 안 되지 않았나 ? ”
“ 아이구...그래도 시집 갈때는 다 된 나이죠. 하여튼 요즘 애들은...웬만하면 결
혼할 생각들을 안해서 큰일이라니까... ”
장례절차야 모두 마무리 되었지만, 집채안에서 아마 유가족들끼리 환담이 계속되고 있는지 돌아가야할 영구차는 아직 출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남주는 집채안에서의 일을 좀 도와드려야 한다며 그 안으로 들어갔고, 영화는 근방 여기저기 경치를 대충 돌아보며 구경하는 중이다.
그러고보면 영화가 강화도를 와보는것은 태어나서 처음의 일이다. 그의 나이 서른둘. ‘마니산 참성단’으로 유명한 강화를 어찌 영화인들 모를리 있을까. 하지만 그야 지금까지 특별히 강화까지 와야할 연고나 이유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밟아보는 강화땅이 되는것이다. 그것도 하필 공교롭게도 여자친구의 큰할머니 장지까지 따라가보려 한것이 그곳이 하필이면 강화였다니. 참 인연도 이런 묘한 인연이 다 있나 나름대로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중이다. 여하튼 영화 혼자 근방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 여 ! 거기 젊은 친구... ”
부르는 소리에 처음엔 자신을 부르는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자신을 부른 남자 한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먼 거리에선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진 못했는데, 바로 문상을 왔을때 보았던 이 집안의 맏상주였다. 그러니 남주 큰할머니의 장남이 되는것이다. 처음 보았을때처럼 비교적 큰 키에 삶의 굴곡이 꽤나 많았던듯 초췌해 보이는 인상. 나이는 얼핏 칠순정도 되어보이는 그런 남자였다. 아마 집채에서 친지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미 술이라도 몇잔 했는지 술냄새도 확 풍겨왔다. 실은 영화는 술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 술마시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순간적인 거부감에 살짝 뒷걸음질 쳐보기까지 한다. 그러나 남자는 영화에게 제법 친근감이라도 표하고 싶은지 씨익 웃으며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준다. 영화는 어쨌든 남주의 친척뻘 되는 사람이니 예를 표하게 위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남자는 조금전까지 영화가 돌아보던 산쪽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을 건넨다.
“ 젊은이...이 산이 무슨 산인지 아나 ? ”
“ 글쎄요...전 강화는 처음이라서 잘 모르는데요. 무슨 산인가요 ? 아마 마니산은
아닌것 같구. ”
“ 예끼 ! 이 사람아...강화에 산이 마니산 하나뿐인줄 알았나. 저 산은 마니산은
아니고... ”
“ 그러면요... ”
영화야 강화에 대해 아는것은 ‘마니산’과 그곳에 있는 ‘참성단’ 정도가 전부니 그러면서도 느낌에 마니산은 아닌것 같아 그와같이 말한것인데, 여하튼 대충 찍어보려는게 틀린답을 한것은 분명 아닌것같다. 남자가 설명을 덧붙여준다.
“ 저 산은 혈구산이라고 해. 그리고... ”
“ ...... ”
“ 내 고향이면서...우리 아버지,어머니 고향이기도 하지. ”
“ 아, 예에... ”
이 남자가 이 집안의 맏상주니 여하튼 이 사람에게 부모님이라면 결국 남주의 할아버지와 큰할머니. 그 두분의 고향이면서 자신의 고향이라는 소리다. 남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 아버지 어머니와...나 국민학교 졸업할때까지 쭉 여기서 살았어. 그러니...6.25
끝나고 한 1,2년쯤 되었을때까지가 되는 셈이지. 그때까지 여기 살다가...아버지가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겠다며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갔지...휴우...
그렇게 강화를 떠난게 그러니 벌써 60년이 되어가는 일이군. ”
60년 ? 6.25 직후라고 남자가 말했을때도 그렇게 오랜 시간처럼 느껴지진 않았는데, 60년이라니 진짜 긴 세월이란게 새삼 느껴진다. 그리고 남주 입으로는 남주 할아버지는 큰할머니와의 사이에 모두 6남매인가 7남매를 낳았다고 했는데 - 남주 입으로는 영화에게 그와같이 설명을 해 주었다. - 이 남자가 국민학교 졸업할때라고 했으니 대충 짐작해보면 그 슬하의 6남매든 7남매든 모두 세상에 태어난 뒤의 일일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이 남자의 이야기로는 그렇게 강화에서 태어난 온 식구가 전쟁 끝나고 한 1,2년 지난뒤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다. 남자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회한에 잠기는것이 많은지 착잡한 표정으로 눈 앞의 혈구산을 바라보고 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듯. 살짝 눈물을 닦는다.
“ 아버지 어머니...이제 다 당신들 태어나신 저 혈구산에 잠들어 계시고... ”
“ ...... ”
“ 나도 이제 머잖아 우리 아빠,엄마 따라 가게되겠지. 저기 저...우리 엄마,아빠
잠들어 있는 혈구산 중턱 어딘가에 말야...거기에 잠들게 되겠지. ”
그러고보면 혈구산 중턱 어딘가쯤은 이 집안의 선영(先塋)이 되는것인가. 그렇다면 어쨌든 이 남자가 ‘자신도 언젠가 저기 묻히게 되겠지’ 하며 회한에 잠기는 정서. 아직 젊은 영화이지만 뭐 그런대로 이해해줄수 있는 심리상태일것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했던것보다 자신의 여자친구 김남주 집안은 꽤나 흥미롭고도 신기한 내력을 갖고 있는것만 같다. 남자가 다시금 회한에 잠기며 눈물을 닦을때쯤이었다.
“ 오라버니... ”
아까 남주와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60대 여인이 한명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가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 응, OO아. 뭐하니 ? ”
“ 이제 다들 서울로 갈건데. 뭐하세요 ? 어서 차 타셔야죠. ”
“ 어어...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 그래, 그럼 가야지. 자네도 장의차로 갈 생
각인가 ? ”
영화도 집으로는 가야할터이니 남자가 그렇게 물은것이고 영화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짤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후 집채안에서는 조금전 장의차를 타고 왔던 유가족들이 하나하나 나오고 있었다. 남주도 집에서 나와 영화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 선배... ”
영화에게 다가오며 말을 건네는 남주. 그가 괜한 걱정이라도 되는듯한 표정이다.
“ 많이 심심하셨죠 ? 죄송해요. 집안에서 저희 식구들끼리 이야기가 좀 길어지다
보니. ”
‘식구’의 범위가 어디까지를 말하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오늘 장례를 치른 유가족 전체를 포함하는 의미인듯 했고. 여하튼 지금은 장례도 다 마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까 타고왔던 장의차를 타는중이다. 남주는 영화와 함께 아까 앉았던 좌석을 찾아가서 앉는다
“ 남주야... ”
“ 네, 선배. ”
자신을 부르는 영화의 말에 남주는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영화가 그런 남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 남주네 집안 그러고보면 생각보다... ”
“ ??? ”
“ 꽤나 복잡한 사연과 내력이 있는 그런 집안인것 같구나. ”
“ 선배도 참...별 소리를 다 해요. ”
난데없이 좀 엉뚱한 소리라 여겼음일까. 남주가 영화를 살짝 흘겨보는듯 하며 대꾸를 하고. 하지만 처음에 친척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남주의 말을 듣고 자신도 문상을 드리기위해 따라나섰다가, 졸지에 그 돌아가셨다는 친척할머니의 실체(!)에 대해 알게되고. 그리고 이렇게 장지인 강화까지 따라와놓고 보니 남주 집안 내력이 뭔가 생각보다 심상찮아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아까 이 집안의 맏상주인 남자가 했던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 여기...강화 혈구산이 내 고향이야. 우리 아버지,어머니가 태어나 자라신곳이고
그리고 나도 태어나서 자란곳이고...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사업을 하신다며 가족
을 모두 이끌고 강화를 떠난것이 60년전의 일. 그리고 이제...이렇게 우리 어머니
를 고향 혈구산에 묻어드리게 되었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나도 우리 아버
지 어머니를 따라...저 혈구산 중턱 어딘가에 잠들게 되겠지... ”
큰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난 며칠이 지난 금요일. 퇴근후에 남주는 영화와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사실 원래 지난주에 영화는 남주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중이었는데, 남주가 갑자기 큰할머니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래서 영화 입장에선 모든 것이 무산되어버린 셈인 이벤트자리.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에 영화는 다시 남주와 단둘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다만 지난번 잔뜩이나 별러서 준비한 이벤트가 무산되어버려 김이 다 새어버린 탓일까. 지난번처럼 제법 특별한 이벤트까진 준비하지 않았고, 다만 두 사람이 인근의 다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게된다.
“ 남주야... ”
“ 네, 선배. ”
남주와 영화는 같은 회사에서 5년동안 일해온 동료이자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5년동안 함께 일해오면서 그동안 서로가 공유해온 그 무엇이 많았던 탓일까. 영화를 바라보는 남주의 눈빛에는 그에대한 어떤 깊은 신뢰감이 담겨있다. 하지만 지금 영화는 어떤 작은 안타까움 같은것이 배어있는 모습으로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 그러고보면... ”
“ ??? ”
“ 내가 생각보다 남주에 대해 모르는게 참 많았던것 같다. ”
“ 선배... ”
하지만 영화의 그와같은 말에 다시금 어떤 안타까운 감정을 담아 영화를 부르는 남주. 영화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러고보면...지금까지 남주와 한 직장에서 일해오면서...꽤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
“ ...... ”
“ 아직까지 남주의 가족에 대해선 한번도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는것 같아. 적
어도 지난번 그...너희 큰할머니란 분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는 말이지. ”
“ 선배도 참... ”
마치 공연한 소리를 한다는듯 남주는 그와같이 내뱉고. 사뭇 어떤 착잡한 감회라도 잠기는듯 다소 묘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남주. 그러다 영화에게로 눈빛이 향한다. 물 한모금을 마셔 목을 축이고 남주는 입을 연다.
“ 그...지난번에...저한테 고모님 되시는분들 하신말씀 사실이에요. ”
“ 고모님 ? 아아... ”
순간 어리둥절했던 영화는 바로 뭘 말하는것인지 짐작이 가는듯 했다. 그날 장지의 어떤 의식을 치르던 집채에서 그곳의 의식을 치른뒤 나와있었던 집 뒤의 들판. 그때 남주에게 고모뻘이 되는 60대 전후한 여성 몇몇이 다가와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남주 너 여기 기억이 나냐 ?’며. 사촌언니들과 어릴때 뛰어놀곤 하던곳이라며 그러면서도 그분들끼리 남주야 어릴때인데 그걸 기억인들 하겠느냐며 말을 주고받곤 하던 모습. 하지만 남주는 불편한것인지 어색한것인지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헌데 지금 그 이야기를 왜 꺼내는 것일까. 영화가 궁금해하는 가운데 남주의 말이 이어진다.
“ 어릴땐...명절때뿐만 아니라 여름이나 겨울방학 같은때도 종종 놀러가곤 했었어
요. 그러다보면...대개는 친척들 다 모여있고...저는 비슷한 또래 사촌언니들과 거
기서 뛰놀곤 하던곳이거든요. 사실 어릴땐 거기가 강화인지도 몰랐는데...나중에
좀 더 커서야 알았어요.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큰할머니 고향이
강화라는 사실까지도요. ”
“ 그렇구나. ”
어쨌거나 강화라면 대체로 ‘마니산 참성단’등의 이미지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에겐 비교적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곳이기도 한데 남주 친가쪽 고향이 바로 그 강화라는 점은 여하튼 영화로서도 괜시리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고보면 덕분에 영화도 남주 큰할머니의 장지까지 따라가느라 졸지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로 그 강화땅까지 밟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 하지만 그건 뭐...어릴때 일일뿐이고...어느정도 크면서는 다들 공부하느라 바쁘
고...또 사춘기때야 뭐 그런 친척들 모이는데 따라가는거 좋아하기 보다는...다들
지들 친구끼리나 어울려다니고 그러니까...- 뭐 저도 실제로 그랬고요 - 그래서
어느정도 나이 들어서는 대체로 왕래도 거의 끊기고 거의 서먹한 사이가 되더라
구요. 그냥 그렇게 살아왔던것 뿐이에요. ”
“ 그렇구나. ”
어릴때야 뭣도 모르고 명절같은때 보통 친척들끼리 모이다보면 비슷한 나이의 어린 사촌들끼리는 비교적 잘 어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크면서는 다들 사춘기도 되고 각자 공부하기도 바쁘고 하다보니 그런곳에서 만날 기회도 줄어들고, 차츰 서먹한 사이가 되어가기 마련. 남주도 대체로 그렇게 살아온 이 땅의 보통 20대 여성일 뿐이다. 여하튼 그런 남주의 어린시절 추억담이 조금은 길게 더 이어진다.
“ 어릴때 기억이 그러고보면...사촌언니가 한 네명인가 다섯명 - 물론 큰할머니쪽
사촌들이죠 제게는 - 그렇게 되었고. 나이터울 좀 지는 사촌오빠도 몇 명 있었
던걸로 기억해요. 그리고...사촌자매들중엔...그렇게 사촌언니 너댓명과 그리고 저
랑 저희 은주언니까지. 그렇게 한 6-7명이서 그렇게 어울려다니곤 그랬어요. 그
러면서 같이 인형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고...그러며 지냈던것 같아요. ”
“ 그랬구나. ”
고개를 끄덕이는 영화. 그런데 그러고보니 얼핏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것이 있어서인지 영화가 이번엔 다시 남주에게 말을 건넨다.
“ 아, 참 근데 그... ”
“ 근데 뭐요 ? ”
갑자기 뭐가 궁금한것인가 남주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영화의 물음이 이어진다. 영화는 썰고있던 스테이크를 한조각 베어문뒤 남주에게 말을 건넨다.
“ 그...정신이 좀 이상하다는 사촌오빠말야...그 문상같던날...첩의자식이 어쩌구 하
던... ”
“ 아...그 오빠요 ? ”
남주는 물론 영화까지도 무척이나 황당하게 만들었던 그 이상한 사내. 그렇게 남주와 영화를 보고는 이상한 소리를 해대더니 나중엔 접객실에서 저혼자 듣보잡이 어쩌구 멸치대가리처럼 생긴 세계적인 미학자가 어쩌구 하는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던 그 이상한 남자. 영화가 새삼 그 남자에 대한 궁금함이 생기는지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건넨것이다. 남주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다시 덧붙여준다.
“ 말했잖아요. 태어나자마자 간호사가 병실에서 떨어뜨리는 바람에 뇌를 다쳐서
정신이 이상해진 사촌오빠가 있다구. ”
“ 그 말은 지난번에 했엇지. ”
그 부분은 문상을 갔던날 병원에서 나와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미 남주가 설명해주었던 이야기다. 헌데 영화 입장에선 또 다른 무슨 궁금함이라도 생기는것인지. 남주가 그런 영화를 바라보며 별로 대수롭지는 않은 존재라는듯 비교적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 저도 정확하게는 몰라요. ”
“ 모르다니 ? 어릴때 다쳐서 정신이 이상해진 친구라면서 ? ”
영화가 그 변재욱이란 남자와 나이터울이 얼마나 질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남주에게 사촌오빠뻘 되는 사람인데 ‘친구’ 운운하는 표현은 좀 어색한 표현임이 분명한것 같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그걸갖고 싸우거나 할 상황은 아닌것 같고, 다만 남주가 다시금 그 변재욱이란 남자에 대해 궁금해하는 영화에게 설명을 덧붙여준다.
“ 저도 그냥 어릴때부터...저희 아빠나 엄마한테 이야기로만 막연히 들은 이야기에
요. 그냥...사촌오빠중 어릴때 간호사가 병원에서 떨어뜨려서 정신이 이상해진 오
빠가 한명 있다구. 그런데 실제 명절때 가끔 가보면...그...지난번에 봤던것처럼...
뭐...듣보잡이 어쩌구...멸치대가리 같이 생긴 뭐가 어쩌구...자꾸 이상한 소리를 입
에 담는 그런 오빠가 한명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아 ! 저 오빠가 바로 그 오빠
인가보다.’ 그렇게 알고있는것 뿐이지. 저도 그 이상은 몰라요. ”
남주가 말하는 것으로 봐선 확실히 그녀는 그 변재욱이란 사촌오빠에 대해선 평상시에 별 관심이 없었던것 같다. 하긴 멀쩡한 사촌오빠라도 관심을 가질까 말까인데 하물며 듣보잡이 어쩌구 멸치대가리가 어쩌구 하는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는 ‘정신이 이상한 친척오빠’에게 굳이 남주가 관심가질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 오히려 무섭게 여겨져 피하거나 했다면 몰라도 - 따라서 그 변재욱이란 이름을 가진 이상한 사촌오빠에 대해선 더 이상 별다른 할 이야기가 없어서인지 그 부분에 대한 화제도 그 정도에서 대충 마무리된다.
- 3회에 계속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