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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애프터스쿨 레이나 (8.마지막회) 걸그룹 팬픽 5 (애프터스쿨)




                                    부제 : 금메달 엘레지



 2014년 가을 현재. (* 2014년 봄에서 반년 정도가 지난 상태)

 덴마크로 가기 위해선 보통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허나 일반적으로는 중국에서 덴마크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마련이다. 혜린 역시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고, 그 안에서 혼자 상념에 잠겨있다. 핸드볼을 시작한후 지난 20년 동안의 일들이 그야말로 영화 티저 예고편마냥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남편 없이 혼자 딸을 키우면서 하나밖에 없는 딸이 기왕이면 공부쪽으로 출세하길 바랬던 그녀의 어머니.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핸드볼이 좋다며, 운동이 좋다며 핸드볼을 시작한 혜린. 그리고 뜻밖의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며 유망주로 성장해나갔던 시간들. 임진아,박수영등의 친구를 알게된 시간들. 고등학교때 열린 ‘고교 핸드볼 대잔치’에서 MVP와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신문,방송 인터뷰까지 가졌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어린아이를 유괴,살해한 흉악범이 붙잡혔는데 그 여인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자신과 동명이인인 ‘오혜린’이라 정작 핸드볼 대잔치에서 MVP등을 수상한 자신의 기사는 한글자도 언급되지 않고, 동명이인 흉악범 오혜린의 기사가 신문과 방송을 뒤덮어 버렸던일. 뭐 그 정도의 일쯤은 살다보면서 겪을수 있는 하나의 해프닝쯤으로 여기고 넘어갈수도 있지만, 성인으로 접어들면서 혜린이 겪게된 일들이 비인기종목 선수인 핸드볼 선수로서의 생활과 그 의미에 차츰 회의에 젖게 만들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뜻밖에도 핸드볼협회에 신임 이사로 취임한 임채섭이란 사실을 알게되고, 그러나 정작 그 채섭은 자신의 유전자검사까지 다 해놓고도 행여나 자신의 정치여정에 방해가 될까봐 자신의 딸인것을 말하지 말아달라며 지금까지의 시간들처럼 서로를 모르는 사이로 하자고 신신당부 했던일. 많은 충격이었고 상처였지만 그래도 감수할수는 있었다. 어차피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은채 20년 넘는 세월을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새삼 아버지가 생기는게 무슨 그리 특별한 의미가 있겠나 여기며 스스로를 달랬다. 어머니가 혼자 자신을 키우며 고생한 시간들이 안타깝고 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랬다. 딱 거기까진 그래도 견딜만했다. 하지만 어머니마저 그렇게 리조트화재 대 참사로 잃고 나서는 그야말로 자신의 핸드볼 인생 그 자체가 송두리째 회의감이 들게 만들어버렸고, 자신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엄청난 회의감과 비애에 젖게 만들어버렸다.

 무엇보다 그래도 명색이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 두 번의 금메달과 한번의 은메달을 따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오혜린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오혜린이기에 이미 은퇴한 상태인 그녀를 세대교체가 여의치 않았던 대표팀이 다시 현역으로 불러들였던것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새로 구성된 대표팀과 팀웍을 맞춰보기 위해 떠난 해외팀과의 친선경기도중, 뜻밖에도 고국에서 들려온 리조트 화재 대 참사 소식으로 인해 혜린은 어머니를 잃고 말았다. 어머니 역시 자신이 직접 마련해준 10년 가까이 운영해온 식당의 그 식당이 소재한 상가건물 상가회 아주머니들과 모처럼 함께 떠난 늦겨울의 여행길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되고야 만 것이다. 뭐 거기까지도 그런대로 이해해줄수 있을만 하다고 치자. - 이미 이 정도로도 혜린의 인내심을 넘어서게 만든 단계가 되어버렸지만 - 그 어머니의 생사마저 그 알량한 친선경기 일정 마저 소화해야 한답시고 혜린의 중도 귀국을 막았던 대표팀이고 핸드볼협회가 아니던가. 따라서 도대체 내가 이 X의 핸드볼을 왜 해야 하는건지. 그리고 도대체 내가 피땀흘려 싸운 그 무슨 조국의 영예니 조국의 영광이니 하는것들이 대관절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 그 알량한(!) 금메달 몇 번 따오기 위해 그래도 자신은 혼신의 힘을 다 바쳤는데, 그야말로 청춘을 불사른 것인데. 그 청춘을 불사르며 싸웠던 조국이 자신에게 주는 보답이 겨우 이것이란 말인가. 자신을 30년세월 키워오며 고생하신 어머니를 앗아가게 만들고 그 어머니의 죽음조차 제대로 확인할수 없게 만드는것. 이것이 오혜린이란 여자가 30년을 살아왔고 무엇보다 청춘의 투혼을 불살랐던 그 조국이란 말인가. 그 한없는 비애감과 서러움이 혜린에게 몰려들었다. 그래서 핸드볼 선수 생활도 접고 한국에서의 생활도 접고 덴마크로 이민을 가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는것이다.

 ‘ 아버지... ’

 새삼 아버지 임채섭의 얼굴이 떠올라졌다. 그것이 2006년 가을의 일이니 그 일도 벌서 8년전의 일이다. 한밤중에 자신을 납치하다시피 해서 별장으로 불러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히며 하지만 자신이 숨겨진 딸임이 세상에 알려지면 자신의 향후 정치여정이 곤란해질수도 있으니 서로가 부녀간이란 사실만 확인한걸로 만족하고 더 이상은 이전과 같이 모르는 사이인걸로 하자고 신신당부 하던 그 아버지 임채섭. 그리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의뢰해 알아온 유전검사 결과표마저 태워버렸던 그 채섭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섭을 한번 만나는 보고 떠날것을 그랬나 하는 후회감이 새삼 밀려들었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한국땅도 떠나기로 한 마당에 채섭을 만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고보니 아버지가 어머니 사망 소식을 알고는 있는지도 궁금한 일이다. OO 리조트 화재사고 정도면 채섭도 아주 모르는 일은 아닐테고, 다만 그 사망자 명단에 전직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 오혜린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는지 그것까지 일부러 확인해보지는 않았을것 같다. 적어도 그런 문제로 지금껏 자신에게 전화 한통화 없었던 채섭인것을 보면 여태 어머니의 사망소식 조차 모르는것이 분명했다.

 ‘ 나쁜사람 같으니... ’

 바로 원망스러움이 밀려들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잊어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이제 다 소용없는 일들이다. 부질없는 일들이다. 어차피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접고 해외로 나가버리기로 한 이상, 그 땅에서 지난 30년 어떤 일이 있었든 다 잊어버리자, 묻어버리자. 그렇게 스스로 몇 번이고 다짐해보고 있는것이다.

 덴마크에 도착 일단 하숙을 받는 집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지 차근차근 생각해보기로 했다. 한편 혜린은 덴마크에 온지 며칠 지나지 않아 미카엘에게 연락을 취했다. 막상 이렇게 덴마크까지 오고나니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미카엘이었다. 현역선수시절 종종 올림픽등 국제경기에 출전할때마다 만날 기회가 있어 친분이 쌓여갔던 덴마크 남자 핸드볼선수 미카엘. 그리고 선수생활에서 은퇴한뒤 스포츠 잡지 기자가 되었다며 한국으로 와서는 ‘한국 핸드볼’에 대해 취재를 하려 한다며 도움을 청하기도 했던 그 미카엘에게 혜린이 연락을 취한것이다.



 “ 혜린, 니가 덴마크에 웬일이야 ? ”

 혜린이 덴마크에 왔다는 사실에 미카엘은 꽤나 놀랍고 반가워하고,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나...덴마크에 살러왔어. ”

 “ 살러오다니 ? 덴마크에서 핸드볼을 하겠다구 ? ”

 덴마크에 살러 왔다는 혜린의 말에 미카엘로선 그런 짐작이 들수밖에 없어 그렇게 물은것이고, 하지만 혜린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은뒤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 아냐, 나 이제 핸드볼은 더 안해. 덴마크엔 이민온거야. ”

 “ 이민을 왔다구 ? 아니, 대체 왜 ? ”

 “ 한국땅이 싫어져서. ”

 미카엘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과 주저함도 없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고 태연자약하게 대답하고 있는 혜린. 진심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이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와같은 말을 입에 담는 혜린의 표정은 웬지 밝고 발랄한 느낌마저 든다. 혜린이 미카엘에게 말을 건넨다.

 “ 참, 미카엘. ”

 “ 왜 ? 말해봐 혜린. 내가 뭐 도움을 줘야할 일이라도 있어 ? ”

 “ 너 저번에 한국에 취재차 왔을때...한국이 핸드볼을 잘하는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알고싶다며...그걸 취재하러 온거라 했었지. ”

 “ 응, 그랬었지. 바로 그걸 취재하러 내가 저번에 한국에 간거잖아. ”

 바로 그 문제로 혜린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 연락을 했던 미카엘. 그때의 일을 떠올려보며 혜린은 미카엘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보인다.

 “ 그러면 미카엘... ”

 “ 응, 말해봐 혜린. ”

 “ 이번엔 니가 나한테 도움을 좀 줄수 있겠어 ? ”

 “ 도움...아니, 대체 어떤 도움이 필요한건데 ? ”

 저번에 미카엘이 한국에 갔을때 혜린의 도움을 받은것이 있으니, 그 신세도 갚는 차원이라면 얼마든지 혜린을 도와줄수 있는것인지. 미카엘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혜린에게 그와같이 묻고. 혜린은 그런 미카엘을 바라보다 잠시 씨익 미소를 한번 지어보인뒤 말을 건넨다.

 “ 미카엘... ”

 “ 응, 말해봐 혜린. 대체 어떤 도움이 필요한건데 ? ”

 “ 도움이라기 보다는 미카엘...내가 미카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번 들려줄

  께... ”

 ....................

 혜린이 덴마크로 떠나고 한달여쯤 뒤. 혜린의 단짝 친구이자 우정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진아는 여전히 국가대표팀에 몸담고 있었고, 한편 수영은 이 무렵 작은 부상을 당해 협회측의 요청으로 복귀한 핸드볼을 계속 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중인 상태였다. 진아는 시합이 없는 날이라 집에서 책을 보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때 수영에게서 전화가 한통화 걸려왔다.

 “ 언니...언니 혹시 인터넷 보셨어요 ? ”

 “ 인터넷 ? 나 인터넷 별로 안 하잖아. 근데 갑자기 왜 ? 인터넷에 무슨 안 좋은

  기사라도 떴어 ? ”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안한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만, 운동선수인 진아는 실제 일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터넷 이용은 거의 안 하는 편이었다. 혹 사용하는 일이 있다면 무슨 정보가 필요하거나 기사같은것을 볼 필요가 있을때 정도 ? 하지만 요즘은 특별히 그런것을 찾아볼 일도 별로 없고 해서 잘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진아에게 수영이 화급히 전화를 걸어온것이다.

 “ 언니...지금 인터넷에...인터넷에 이상한 기사가 떴어요. ”

 “ 무슨말이야 그게 ? 인터넷에 이상한 기사가 뜨다니 ? ”

 “ 그게...덴마크의 한 스포츠 잡지에...이상한 기사가...한국 핸드볼을 비하한 기사

  가 떴다나. 뭐 여하튼...은퇴한 전직 한국 핸드볼선수의 이름으로...우리나라 핸드

  볼에 대한 비화와 비리를 폭로한다는...그런 기사가 떴다고...그와같은 소식이 우

  리나라 언론에 언급이 되었어요. ”

 “ 뭐...뭐라구 ? ”

 수영이 전한 이야기는 덴마크의 한 스포츠 잡지에 전직 한국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의 폭로(!)로 한국 핸드볼의 비화와 여러 가지 난맥상이 최근 보도가 되었다는 소식이 있고, 그 해당 잡지기사를 국내 일부 언론이 소개,보도하며 전해지게 된 것이다. 바로 얼마전까지 한국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였다는 이 인터뷰 대상자는 자신의 개인사를 비롯하여 한국 핸드볼계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덴마크 스포츠 잡지 기자와 만나 털어놓았는데, 그에대한 기사가 꽤나 긴 분량으로 그야말로 ‘특종’이자 ‘특집기사’라고 할만큼 상세하게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수영이 전해준 말에 진아도 황급히 인터넷에 접속해보았고, 해당 기사가 소개된 국내 신문기사를 클릭해보았다. 기사내용은 수영이 전해준 그대로였고, 두 사람이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언니 근데...이건 진짜 너무하지 않아요. 기사진위 여부도 확인해봐야 겠지만...

  아니 대체...전직 우리나라 대표팀 선수가 폭로를 했다니. 대체 누가 이런걸 폭로

  해요. ”

 수영의 말은 아무리 그렇기로 국가대표 선수까지 했다는 사람이 그것도 핸드볼에선 라이벌 국가인 셈인 덴마크까지 가서 기자한테 그런일을 폭로했겠느냐는 사실이 아닐것같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이야기였고. 하지만 그러다 진아와 수영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외쳤다.

 “ 설마... ”

 “ 설마 혜린이가... ? ”

 지금으로선 덴마크까지 가서 그런 폭로를 할만한 사람으로 두 사람에게 바로 떠오를만한 사람은 오혜린밖에 없다. 물론 국내의 실업 핸드볼 여건이 맞지 않아 실력이 있음에도 핸드볼을 계속 할 형편이 못 되는 선수중 독일이나 덴마크 같은 핸드볼 여건이 좋은 북유럽 국가에 가서 선수활동을 계속하는 사람은 꽤 많이 있다. 하지만 인터뷰를 했다는 사람은 분명 ‘전직 국가대표 선수’라고 했고. 일단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두 사람에게 바로 떠올려질 사람은 결국 오혜린이지 않는가.

 “ 언니 설마...혜린언니가 아무렴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 그리고 지금 덴마크 가

  있는 한국선수 많아요. OOO 언니도 있고...OOO 오빠도 있고... ”

 “ 일단 차근차근 상황을 좀 더 알아보자. 사실 우리가 그 해당 덴마크 잡지 기사

  를 직접 본것도 아니고, 국내언론이 인용보도한것 뿐이잖아. 그러니...기사를 번역

  하는 과정에서 착오나 오류가 생겼을수도 있는거고. 아직 확실한건 아니니 좀 더

  구체적으로 진상이나 경위를 파악해보도록 하자. ”

 하긴 근본적으로 수영이나 진아가 접해본것은 “덴마크의 한 스포츠 잡지에 ‘전직 한국 핸드볼 선수’라는 사람이 한국 핸드볼계의 난맥상과 실태를 폭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는 것을 국내신문이 인용보도한 기사내용이다. 기사에는 물론 해당 덴마크 잡지에 ‘이런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더라는 형식이니, 근본적으로 번역 과정에서 어떤 착오나 오류가 생겼을수도 있는 일이고, 해당 덴마크 잡지가 인터뷰를 했다는 ‘전직 한국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의 진위 여부도 확실치가 않다. 적어도 진아나 수영의 입장에선. ‘설마 오혜린은 아니겠지.’ 반신반의 하는 가운데서 두 사람은 일단 덴마크에 있는 혜린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때 혜린에게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 언니... ”

 사실 해당 기사 내용과 관련 ‘한국 핸드볼 협회’측도 발칵 뒤집힌 상태다. 대체 누가 이와같은 인터뷰를 덴마크까지 가서 했다는것인지 진상과 진위를 파악하느라 동분서주 하는 중이었고, 국내 네티즌들의 여론도 각양각색이었다. ‘꼭 그런 인터뷰를 덴마크까지 가서 해서 나라망신을 시켜야 하느냐 ?’며 분개하는 사람도 있고 ‘그 선수도 오죽 했으면 외국까지 나가 그런 인터뷰를 했겠느냐 ? 이렇게 된게 다 체육계나 우리사회 모두의 책임이다.’라며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했다는 한국 핸드볼 선수를 옹호하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한편 아직은 기사의 진위 여부가 확실한것도 아니니 좀 더 진상을 알아보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신중론’도 어느정도 있었다. 워낙 여러 가지로 오류나 착오가 많은 국내언론이다보니 그런 신중론도 생기는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그런 와중에 유럽에서 직접 그 잡지를 구해 기사를 봤다고 주장하는 재외교포나 유학생이 해당기사내용 원문과 자신이 직접 번역한 내용을 일부 인터넷에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진위여부는 확실치가 않았다.

 ‘조국의 영예를 위해 뛴 국가대표 선수에게 돌아온것은 대형참사로 인한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

 ‘인터뷰에 응한 선수는 대한민국 유력 정치인의 숨겨진 딸.’

 진아가 어렵사리 해당 스포츠 잡지를 구해보았다. 덴마크에서 출판하는 잡지이니 한국에서 구한다는것인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하는수없이 진아는 덴마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한국인 핸드볼 선수에게 연락을 취해 해당잡지를 구해달라고 했다. 한편 진아로부터 연락을 받은 선수는 ‘한국에 소개된 해당기사내용이 모두다 맞다’면서 다만 인터뷰에 응한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지금 덴마크에 있는 한국인 선수들끼리도 그 당사자를 파악해보려 하는 중이란 이야기까지 전해주었다. 아울러 그 기사로 인해 같은 한국 출신 선수인 자신들도 무척 곤혹스러워졌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주었다.

 “ 설마...설마 그럼 진짜 혜린이란 말야 ? ”



 혜린이 덴마크로 떠난지 석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혜린은 미카엘의 도움으로 덴마크의 한 치즈공장에 취직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거처도 새로이 마련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덴마크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을 무렵인 어느날의 일이다.

 “ 아얏~! ”

 갑자기 어디서 뭔가가 날아들어 혜린을 맞췄다. 대충보니 누군가 달걀을 던진듯 했다. 혜린은 누군지 범인을 찾기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덴마크엔 백주대낮에 멀쩡한 사람한테 계란을 던지는 그런 미친X도 있나 기가막혀 하고 있는데, 그런 혜린에게 다가오는 한 여자가 그녀의 눈을 휘둥그래지게 만들었다.

 “ 나야, 오혜린 ! ”

 혜린에게 계란을 집어던진 사람은 다름아닌 임진아였다. 진아가 이곳 덴마크에 갑자기 나타난것도 놀라울 일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혜린에게 계란을 난데없이 집어던지다니. 혜린으로선 기가막히기만 할 따름인데, 그런 혜린이 진아에게 뭐라고 말을 붙일 사이도 없이 진아가 먼저 그런 혜린에게 따지고 들었다.

 “ 니 짓이었냐 ? ”

 “ 뭐...뭐라구 ? ”

 “ 잡지 인터뷰말야 ! 니가 한 짓이었냐구 ? ”

 그제서야 혜린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진아가 그것을 따지기 위해 여기까지 날아왔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왜 당황해야 하나 싶어 순간 다소 억울한 생각도 들고 해 혜린도 되받아치듯 진아에게 한마디 던졌다.

 “ 왜 그래 ? 대체 나한테 갑자기 이게 무슨짓이야 ? ”

 “ 그걸 몰라서 물어 ? ”

 “ 임진아 ! ”

 이러다가 진짜 두 사람 사이에 크게 싸움이라도 붙을듯한 기세고, 진아가 일단 다른 조용한곳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둘은 인근의 한 커피숍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대체 이게 뭐하자는 짓이야 ? 여기서 이게 무슨 짓이냐구 ? 너 때문에 지금 한

  국에선...특히 핸드볼협회랑 체육계는 얼마나 발칵 뒤집혔는지 알기나 해 ?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 ? ”

 “ 몰라서 묻니 ? ”

 하지만 혜린은 진아에게 꿀릴것도 당황해할것도 없다는듯 사뭇 당당하게 진아에게 되묻는다. 하긴 따지고보면 정말 너무나 억울한 그녀의 지난 30년 인생이고 20년 핸드볼 인생이 아닌가. 그런 설움을 외국의 스포츠 잡지에 토로했기로 뭐 그게 그리 큰 잘못이란 말인가. 바로 그 억울함이 울컥 치솟아오를 지경이었다.

 “ 너...그래...겨우 이러자고...이짓 하자고 덴마크로 가겠다고 한거야 ? 내가 그러

  지 말고...협회에 정식으로 항의하자고 할때는...그럴 생각 없다고 발을 빼기까지

  한 애가...외국까지 나와서 나라망신을 시켜 !!! ”

 “ 나라망신 ? ”

 나라망신이라니.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냐며 혜린이 되려 따져묻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그 잘난 나라가 조국이 자신에게 해준게 무엇인가. 비인기종목 선수로서의 설움. 그런것이야 혜린 자신만이 겪는 문제도 아니니 거기까진 그래도 감수할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핸드볼로 조국의 영예를 위해 혼신을 다해 청춘을 바쳤던 오혜린에게 돌아온 결과는 어머니의 싸늘한 죽음이었다. 그것도 자신은 외국에서의 친선경기 일정 때문에 사고가 났을때 귀국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그 잘난 핸드볼협회와 체육계 그리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지금와서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혜린은 그 인터뷰를 하고 나서 속이 그렇게나 후련할 수가 없었다. 평상시 친분이 있었던 덴마크 핸드볼선수 미카엘이 선수생활을 마치고 스포츠잡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더니, 그 미카엘을 만나 한국 핸드볼과 비인기종목의 난맥상과 실태를 모조리 폭로해버린것이 얼마나 속이 후련하고 분이 다 풀리는 기분이던지. 그 쾌감. 그 짜릿함을 느낄 지경이었는데. 진아는 그런 혜린을 찾아와서는 계란을 집어던지고, 나라망신을 시켰다며 분개하고 있는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진아가 자신을 그런식으로 비난하니 혜린은 발끈하는 심정이 더 들었다.

 “ 그래도...적어도 국내에서 머물며 해결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잖아. 내가 그

  렇게 협회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집단행동이라도 취해서 항의하자고 할때는 발

  을 빼더니...혼자 덴마크로 와서는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구 ? ”

 “ 내 일에 상관하지마. ”

 기왕이면 이렇게 외국에까지 나와 나라망신을 시키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할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그것이 적어도 지금 진아가 혜린에게 갖고있는 안타까움과 분개였다. 그래도 나라안에 머물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것도 아닌데, 자신이 그런쪽으로 일을 추진해보려 했을때는 ‘생각없다’며 발을 빼더니 이렇게 덴마크까지 와서 고작 외국잡지와의 인터뷰로 나라망신을 시키는게 할 일인가. 그것이 진아가 혜린에게 분개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혜린은 그런 진아의 말에도 전혀 미안함이나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혜린의 태도는 더더욱 떳떳하고 당당하기까지 했다. 대체 누가 자신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느냐는. 그것도 다른사람도 아닌 그 잘난 대한민국의 핸드볼이나 체육계 관계자들은 자신을 욕하고 비난할 자격 없다는듯한 그것이 지금 혜린의 심리상태인것이다.

 “ 그렇게 청춘을 불살랐던 내게...국가가 돌려준것은 엄마의 싸늘한 죽음이었을

  뿐이야. 근데 이제와서 나보고 뭘 어쩌라구 ? 너 정말...그땐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 그 기가막힌 참사로 나 한사람 바라보며 고생하신 엄마가 돌아가시고...그

  엄마가 사망했는지 확인조차 할수없게 만들어놓은...그런 처사가 얼마나 분하고

  기가막혔는지 알아 ? 정말이지 그땐 협회고 체육계고 뭐고 전부 다 때려부시고

  싶은 생각이더라. 이 기가막힌 나라 정말 다 때려부시고 싶은 생각이었어. 근데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거야 ?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 내가 한

  짓이 그렇게까지 비난받을일이니 ? ”

 “ 혜린아...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냐 !!! ”

 “ 안될건 또 뭐가 있는데 !!! ”

 진아가 그럴수록 오히려 혜린은 지지않고 더더욱 당당하게 맞대응했다. 말로는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 진아는 갑자기 혜린을 잡아이끈다.

 “ 너 나와 ! ”

 “ 왜 그래 갑자기 ? ”

 갑작스러운 진아의 행동에 당황하는 혜린. 진아가 그런 혜린에게 말한다.

 “ 너와 꼭 좀 해보고 싶은게 있어. 그러니까 일단 나와. ”

 그리고 혜린은 진아를 데리고 인근에 있는 한 실내 체육관으로 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구입한 핸드볼 공 하나를 가져왔다.

 “ 생각해보니...내가 너와 대결에서 제대로 이겨본적이 없는것 같다. ”

 “ ??? ”

 “ 오늘 우리 다시 페널티드로우 대결한번 해보자. 20년전 그랬던것처럼 다시 한

  번 겨뤄보자고. ”

 진아가 혜린에게 처음 다가왔을때, 벌써 20년전의 일이기도 한 그때. 초등부 핸드볼 경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진아의 팀이 혜린의 팀에 패하고나서. 그 이후에 진아가 혜린을 직접 찾아와 누가 더 잘하는지 다시한번 정면으로 대결해보자며 ‘페널티 드로우’ 시합을 제안했었다. 그때와 같은 시합 제안을 또다시 하고있는 것이다.

 “ 대결은...그때와 똑같이 각기 스무개씩 공을 던져보는거야. 먼저 내가 20개 던

  질테니 니가 막아봐. 그리고 그 다음엔 니가 던져보고... ”

 “ ...... ”

 “ 그리고 만약 니가 이기면 내가 사과하마. 나 한 사람의 사과가 아닌...널 이렇게

  만든 대한민국과 체육계 그리고 핸드볼협회 모두를 대신해서 내가 무릎꿇고 사

  과하지. 하지만 만약 니가 지면... ”

 “ 내가지면 ? ”

 “ 너...밟아 죽일거야... ”

 진아는 정말 혜린을 용서할수 없다는듯한 어떤 투지의 눈빛마저 불타오르고 있었다. 다른것은 몰라도 이런식으로 외국까지 나와 인터뷰 기사로 나라망신을 시킨것만은 용서할수 없다는 그게 지금 진아의 생각인것이다. 무엇보다 진아는 처음에 혜린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방안으로 집단으로 협회에 항의하는 방식도 제안해보지 않았던가. 헌데 그때는 생각없다며 내뺐던 혜린이 정작 외국에 나와서는 그런식의 인터뷰를 했다는것. 그것이 진아가 그녀에게 가장 분개하고 가장 용서할수 없게 만든 점이었다. 임진아에게 무슨 대한민국이나 체육계의 모든 권한이 위임된것은 아니겠지만, 진아는 오늘 마치 그 모든 것들의 대변자라도 되는양 혜린에게 페널티드로우 대결을 제안한것이다.

 경기는 20년전 그날처럼 각기 페널티 드로우 스무개씩을 던져보고 상대가 막아보는것. 그리고 오늘 결과는 아깝게도 13 : 13. 무승부였다. 스무개를 다 던지고 그 다음에는 혜린의 스무개 공을 막아보려 한 진아는 시합이 다 끝나고나서 지친듯 바닥에 쓰러졌다. 어찌보면 재대결이라도 한번 제안할법도 한데, 하지만 진아는 의외로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스무개 공을 던지고 막고 하다보니 많이 지친것도 이유로 볼 수 있겠지만.

 “ 비겼구나... ”

 “ ...... ”

 “ 어쩌면 이게 운명인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런식으로 여기까지 나와서 외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비인기종목과 체육계의 구조적 난맥상을 폭로하는...

  그런식으로 울분을 토로하는 너와...너의 그와같은 방식에 분개하는 나. 어느쪽

  이 더 합리적이고 합당한 방식인지 그것인 쉽게 판단하기 힘들것인지도 몰라.

  오늘의 이 무승부 결과는 어찌보면...그것을 상징하는 승부 결과로 내가 받아

  들이마... ”

 “ ...... ”

 “ 그 대신... ”

 진아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그리고 작심한듯 한마디 내뱉는다.

 “ 우리 절연하자 ! ”

 “ ...... ”

 “ 무슨 말인지 알겠어 ? 너와 나의 20년 우정은 오늘로 끝인거야. 너와 나 두

  사람 오늘 이후로 모르는 사이인걸로 하자구 !!! ”

 그렇게 말하고 진아는 저벅저벅 체육관을 빠져나가고 혜린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몇 년후.

 혜린은 미카엘과 덴마크에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예쁜 딸도 한 명 낳았다. 딸을 출산하고 얼마후. 혜린은 미카엘과의 사이에서 낳은 예쁜 아이를 품에 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달링... ”

 미카엘이 그런 아내 혜린을 사랑스럽게 안아보고 지금 이 순간이 마냥 행복하고 흐뭇하기만 한자 감격의 눈물까지 지어보이는 혜린. 미카엘이 그런 혜린에게 말을 건넨다.

 “ 우리 이 아이...어떻게 키울까 ? ”

 “ 글쎄... ”

 “ 자기도 핸드볼 선수출신이고 나도 핸드볼 선수 출신이니...그 피를 물려받은 아

  이니 이 아이도 핸드볼선수로 키울까 ? ”

 “ 그거야 뭐...우리 생각보단 이 다음에 아이 판단과 선택을 존중해줘야 하는 문

  제겠지요. 하지만... ”

 순간 사뭇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린이 아기를 바라보며 말한다.

 “ 그래요...기왕이면 꽤나 실력있고 훌륭한 핸드볼 선수로 한번 키워보고 싶네요.

 ”

 남편과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는 혜린. 여러 가지 미묘한 감정이 복합된 뜨끈뜨끈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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