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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과 흥행공식 사이에서 방송,연예



 MBC 드라마 ‘기황후’가 총 50부작(최근 1회를 연장 51회로 종영 예정)중 어느덧 44회까지가 방영, 이제 종반부 스토리가 한창 진행중에 있다. 한편 ‘기황후’는 드라마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고려말 최악의 패륜,막장왕인 ‘충혜왕’을 미화하려 한다는 문제에서부터, 주인공인 기황후 조차 역사적 평가에서 논란이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역사왜곡’ 논란에 크게 휩싸인 드라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황후는 지금까지 대체로 시청률 평균 20퍼센트 초,중반대를 상회하며 무난한 시청률을 기록해왔고, 특히 최근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무한도전을 제치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역사적인 사실만을 놓고 봤을땐 그야말로 최악의 막장사극에 불과한 이런 드라마가 무난한 시청률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1위를 기록하기까지 했으니 역사학자,역사매니아들 입장에선 지켜보기 꽤나 불편하고 거북한 결과가 될수밖에 없었을것이다.


 따라서 이쯤에서 한번 기황후의 인기비결을 좀 살펴보고자 한다. ‘기황후’가 드라마 시작도 하기 전부터 빚어진 역사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이 시청률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스토리라인의 승리’라 볼 수 있을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스토리 그중에서도 극중 주요 등장인물의 설정과 갈등구도에서 여성 시청자들의 ‘감성코드’를 제대로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기황후의 작가는 ‘흥행공식’을 제대로 읽고 스토리를 써나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특히 젊은 여성들이 좋아했던 드라마들의 극중 남녀간 구도를 살펴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제법 입바른 소리 잘하고 정의로움까지 갖춘 ‘개념녀’. 그리고 이와같은 여주인공과 엮이게 되는 좀 시건방지고 철없는 면이 있는 잘나가는 집 아들(흔히 묘사되는 재벌2세). 그리고 인격이나 성격적인 면에선 모든 것이 완벽하긴 하지만, 대신 어떤 다른 문제나 장애요인 때문에 여주인공과의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자를 보이지 않는곳에서 지켜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캐릭터. 이와같은 삼각구도가 대체로 지금까지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속 등장인물간의 ‘러브라인’이었다.


 무엇보다 확실히 여자들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개념녀’가 철없는 재벌2세 길들이는 식의 스토리를 매우 좋아한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재벌2세와 사랑을 이루는’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드라마’를 보면 남녀 주인공의 설정구도가 대개 그와같았다. 그리고 이와같은 ‘재벌2세’와의 이야기는 사극에선 보통 일국의 왕자나 양반집 도령 정도로 대체된다. 따지고보면 오늘날 ‘재벌2세’의 환경이나 배경이 그 옛날 신분제,왕조시절 왕자나 양반집 귀공자와 별반 다를것이 없으니 이와같은 대체는 확실히 절묘한 구도다.


 기황후에서도 조금 찌질해보이고 시건방진면까지 있는 고려시대판 재벌2세격인 원나라 왕자 ‘타환’이 나온다. 그리고 이 타환과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개념녀’ 승냥이(기황후)의 구도. 하지만 이 승냥이에겐 어린시절에 자신을 구해주었던 인연에서부터 시작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줄곧 자신을 지켜온 ‘완벽한 남자’이자 ‘키다리 아저씨’ 왕유가 있다. - 원래 이 왕유가 바로 애초엔 ‘충혜왕’으로 설정된 인물이었으나 역사왜곡 논란 때문에 가상의 고려왕자 ‘왕유’로 대체된것이니, 만약 애초대로 그냥 ‘충혜왕’으로 밀고 나갔었다간 역사를 아는 역사매니아,사극매니아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속 뒤집어질 일이 될 뻔 했다.


 드라마 ‘기황후’의 전체 스토리는 한마디로 훗날 기황후가 되는 ‘승냥이’의 철없는 재벌2세(왕자) 타환도령 길들이기였다. 말이 왕자고 결국 황위에 오르긴 하지만 정작 실권은 없이 원나라 실세 원철 세력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찌질한 왕. 이 타환이 기승냥으로 인해 거듭나게 된다. 게다가 겉보기엔 황실에서 자라 뭐하나 부족할것 없을것 같지만, 아마도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이 빈번히 있어온 환경에서 자라온 탓인지 지금껏 평생 ‘사랑’이라고는 제대로 받아본적도 없고 누구한테 ‘사랑을 줘본 경험’도 없을것 같은 타환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눈에 들어온 ‘승냥이(기황후)’에게 그야말로 사랑에 목매달아하고 목말라한다. 그야말로 ‘승냥아, 난 너 없으면 못살아 !!!’ 하면서 울고불고 하는게 이 타환인가 원나라 순제인가 하는 친구(!)다.


 ‘기황후’는 재벌2세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드라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당차고 똑부러진 주인공 개념녀, 돈만 많지(또는 집안 배경만 좋지) 시건방지거나 혹은 찌질한 면이 있는 재벌2세 남자주인공. 그리고 이 철없고 시건방진 부잣집 도령을 철들게 만드는 여주인공의 스토리. 거기에 꽤 오래전부터 여주인공과 인연이 있었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진 못하고 그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인공을 뒤에서 지켜주는 키다리 아저씨 순정남형 서브남주까지. 이 ‘신데렐라 드라마’가 흥행할수 있는 모든 공식을 철저히 갖추고 스토리를 이끌어 나갔기에 성공할수 있었던것이다.


 ‘기황후’를 집필한 작가 장영철은 결코 그저그런 허접한 작가가 아니다. 2006년 가을부터 2007년 연말까지 장장 1년4개월에 걸쳐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소재로 134회짜리 대작을 만들어낸 작가이기도 하며, 그 외에도 시대극 ‘자이언트’ 우리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 ‘돈의 화신’, 중국고전의 캐릭터를 응용하여 현실사회의 직장세계를 풍자한 ‘샐러리맨 초한지’까지. 수많은 히트작들을 만들어낸 대(大) 작가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행공식’을 철저히 파악하고 그에따라 철두철미하게 스토리라인을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있는 작가다. - 장영철 작가의 부인인 정경순씨 역시 방송작가로 특히 이전작도 부인과 공통집필한 작품이 여럿 있는걸 생각해본다면, 기황후의 남녀 주인공간 러브라인이 수많은 여성시청자들을 제대로 애닳게 만들을수 있었던데는 아내 정경순씨의 조언도 적잖은 역할과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를 왜곡했을지언정 흥행공식을 제대로 읽어 성공한 드라마’. 이 부분을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혹시 ‘기황후’의 사례가 이후에 제작될 사극에도 어떤 본보기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간에 -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기황후’는 역사를 왜곡했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역사적 사실’은 아예 무시한채 오로지 ‘흥행공식’에만 철저하게 입각해서 드라마를 이끌어갔던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근데 개인적으로는 ‘흥행공식’이란말 별로 안 좋아한다. 드라마나 영화가 수학이나 화학도 아닐진대 대관절 무슨 ‘공식’이 있단말인가. 하지만 시청자나 관객의 감성을 제대로 울려 빅히트를 칠수있는 그런 작품으로서의 ‘흥행공식’이 분명 존재하는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역사학자,역사매니아들이 사극에서의 ‘역사왜곡’을 우려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만들면서 가상의 이야기를 전혀 끼워넣지 않은채 오직 ‘역사적 사실’에만 충실하게 드라마를 만드는것도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더욱이 사료가 적어 불과 몇줄의 기록으로만 수십수백회의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고대사의 이야기일 경우에 그 고충은 더해질수밖에 없다. (* 하지만 기황후는 ‘역사기록이 너무 적어 드라마를 만들기 쉽지 않은 사례’에 해당되진 않는다. 적어도 기황후는 지금 남아있는 고려사나 원사의 기록 정도로 50부작의 장편 드라마 만들어내기엔 충분한 드라마다)


 사실 시청률로 모든 것이 판단되고 평가받는 방송가의 현실에서 많은 역사학자,역사매니아들이 지적하는 ‘역사왜곡’ 운운하는 문제는 사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솔직히 어떤 드라마가 막장이네, 어떤 드라마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네 하는 이야기도 어느정도 시청률이 나오고 난 뒤에 부수적으로 딸려나오는 이야기인것이지, 시청률에서 참패한 드라마라면 그 내용이 막장이었건 아무리 역사왜곡을 심하게 했건 거기에 관심가질 사람은 별로 없다.


 가령 시청률에서 빅히트를 친 작품이라면, 설사 그 드라마가 아무리 막장논란이 있었던 드라마라 할 지라도 그 드라마 쫑파티 현장의 방송사 간부의 축사에선 ‘가족해체가 날로 심화되고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태에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드라마’란 평가를 받게 되어있고, 역시 아무리 역사왜곡을 한 드라마라 할 지라도 (만약 시청률에서 빅히트를 쳤다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전통문화와 우리 선조들의 슬기로운 지혜를 가르쳐준 훌륭한 사극’이었다는 격려사를 (쫑파티 자리에서 방송사 간부에게) 듣게되는 그것이 솔직한 현실인것이다.


 ‘역사왜곡을 하지 않으면서도 흥행공식을 제대로 읽어 성공하는 사극’을 만들수는 없을까 ? 사실 말이 쉽지 그것을 현실화 시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역사란 이미 역사속에 실재했던 사건과 인물들이 있는것이기 때문에, 이 기본골격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령 3각관계,4각관계 같은 러브라인 구도를 만들거나 스토리라인을 이끌어가는게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MBC 드라마 ‘기황후’는 ‘역사왜곡은 했을지언정 흥행공식을 제대로 읽어 성공한 드라마’다. - 그런면에서 확실히 장영철 작가는 무서운 사람이다. - ‘기황후’의 사례가 향후의 사극제작 방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지는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힘들다. 역사왜곡 문제와 작품으로서의 흥행. 정녕 사극(史劇)에서 이 둘은 한 방향으로 길을 가기엔 힘든 존재인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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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4/04/08 10:08 # 답글

    썰전의 평이 맞다고 봅니다. 정도전은 사극. 기황후는 아침드라마. 그런데 아침드라마를 만들려면 역사적 인물을 팔 필요없이 가상인물들로 고려시대라는 시대만 차용하고 만들면 될일입니다.

    저 물건이 수출된다니 얼굴을 들수가 없군요.
  • 훼드라 2014/04/08 11:22 #

    아침드라마용 사극...절묘한 표현인듯 ^^
  • 피그말리온 2014/04/08 07:47 # 답글

    흥행공식도 좋고 다 좋은데, 그걸가지고 역사를 운운하니까 문제겠죠. 차라리 해를 품은 달처럼 가상으로 만들었으면 모를까...
  • 훼드라 2014/04/08 11:21 #

    제 생각도 같습니다. 차라리 그냥 고려때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의 이야기를 다룬 가상드라마로 하던가 할 것이지...
  • rumic71 2014/04/08 15:50 # 답글

    저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다른 분들이 올리셨군요. 그냥 '김황후' 였으면 문제 싹 해결인데...
  • 훼드라 2014/04/08 18:08 #

    김황후...괜찮은 아이디어 ^^;;
  • 리에 2014/04/08 20:21 # 답글

    참으로 씁쓸하지만 시청률은 나오니까요 ㄱ-
    아예 싹 허구로 만들면 될 걸 가지고 왜 되먹잖게....(한숨)
  • 훼드라 2014/04/08 21:31 #

    제 말이 그 말 입니다 ^^
  • 을파소 2014/04/08 21:44 # 답글

    간단하죠.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3각관계,4각관계 같은 러브라인 구도를 만들지 말고, 추노처럼 실존인물도 나오더라도 러브라인은 가상 인물들에게 맡기거나, 공주의 남자차럼 폭넓은 변형이 용인되는 야사를 보티프로 따오거나, 해품달처람 완전히 가상의 역사를 창조하면 아무도 욕 안하죠. 추노나 공남은 오히려 호평까지 받은 사례고요.

    기황후는 처음엔 보도자료에서 작가의 이력을 '뛰어난 역사고증으로...'란 말을 집어넣고, 학자의 논문을 왜곡 인용하여 자기들이 맞는 것처럼 굴려다가 비판에 직면하고는 꼬리 내려 충혜왕을 왕유로 바꾸고 처음부터 허구였다고 슬쩍 말을 바꾼 터라 더 정이 안 갑니다.
  • 훼드라 2014/04/09 06:29 #

    방송가의 속사정이 워낙 알고보면 복잡한곳이라...
    가만보면 장영철 작가 나름대로 어떤 고집이 좀 있는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욕을 먹어도...자신은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여하튼 여러가지로 씁쓸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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