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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갑'을 더 이상 방송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길 바라며 방송,연예



 종편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약칭 ‘이만갑’)’이 어느덧 100회를 맞이했다. 이만갑은 원래 6.25때 월남한 실향민들의 사연을 담고, 아직까지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기획된 프로였으나, 6.25가 있은지 이제 워낙 오랜 세월이 지나다보니까 6.25때 월남한 실향민이나 이산가족은 이미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떴거나 또 아직 살아있더라도 고령이나 기타 사정등을 이유로 출연을 꺼려해서 실향민을 섭외하는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한번은 이벤트성 차원에서 젊은 탈북여성 여러명을 초청 스튜디오에서 토크쇼를 벌이는 탈북여성 버전 ‘미녀들의 수다’를 기획했다가 이것이 뜻밖에 반응이 좋자 아예 이 코너를 메인으로 고정 편성 ‘이만갑’의 성격 자체가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는 탈북여성 버전 ‘미녀들의 수다’가 되어 어느덧 100회를 맞이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이만갑’이 100회를 기록했다는 것은 종편 프로그램으로서는 뉴스,시사 프로를 제외하고는 최초로 100회를 돌파했다는 점, 그리고 종편 출범과 함께 시작한 프로로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프로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수 있으나 무엇보다 놀라운것은 ‘젊은 탈북여성들이 증언하는 북한의 실상’이란 아이템 하나만을 갖고 2년 가까운 시간을 끌어올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는 모습이라면 우리에게 지금까지 뇌리에 강렬히 박혀있는 모습은 주로 7,80년대 냉전시대에 휴전선을 넘어온 인민군 출신들이 기자회견이나 안보강연등을 통해 딱딱하고 경직된 모습 그리고 억센 말투의 이북 사투리로 그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이었다. 80년대 후반 동구 공산권이 붕괴되면서 전철우,장영철,김지일등 약 10여명에 달하는 북한의 동구권 유학생들이 줄줄이 귀순했을때도 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90년대 들어서 북한체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북한 고위층 출신의 귀순,망명이 연달아 있었을때도 ‘귀순자의 증언’이라면 딱딱하고 경직된 모습 그리고 억센 이북 사투리. 그 이미지가 크게 달라진것은 없었다.


 헌데 ‘이만갑’은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는 모습을 젊은 탈북여성들이 대거 나와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는것을 보여준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이만갑’ 같은 프로가 가능했던것은 특히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의 약 60-70퍼센트가 여성인 점등, 탈북자의 성비(性比)나 북한에서의 신분,계층등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왔다는 점에서 기인된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실제 ‘이만갑’은 가장 열악했던 꽃제비 출신에서부터 평양이나 청진등의 대도시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던 당간부의 자녀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계층의 탈북 여성들이 나와 북한사회에서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 ‘이만갑’에서는 고정출연하는 탈북여성들 사이에서도 평양이나 청진등 대도시 상류층 북한주민의 삶과 꽃제비등 하류층으로 살았던 탈북여성의 삶이 너무나 달라 서로 놀라기도 하는등. 그런 모습을 여러차례 보여주기도 했다. 단속을 피해 몰래 남한 드라마 DVD를 구해보면서 알게 모르게 남한사회에 대한 동경심을 품어갔다는 사람에서부터, 장마당에서 실제 동물의 배설물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까지 주워먹어 보았다는 꽃제비 출신 여성의 충격적인 증언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형태의 북한에서의 삶을 보여주면서 북한사회 전반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는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만갑’은 또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을 주게하는 프로이기도 하다. 아무리 북한체제가 엄혹한 독재체제고, 도대체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엽기적인 사회이기로 그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는 아이템 하나만을 가지고 2년 가까이를 끌어올수 있었다는 점.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북한이란 사회가 얼마나 기가막힌 세상인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 아닌가. 하지만 그렇기에 2년 가까이 ‘이만갑’을 이끌어올수 있을 정도로 풀어나갈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는 점 자체가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만갑’은 애초에 실향민들의 사연을 담는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가 고령의 이산가족들 섭외가 쉽지 않자, 중간에 ‘탈북여성 버전 미녀들의 수다’로 기획을 변경했던 프로다. 하긴 이제 6.25가 있은지도 어느덧 6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으니 도대체 전쟁이나 분단 이전 이북에 두고온 고향과 가족에 대한 기억이 있을수 있는 사람이 이제 되면 얼마나 되겠는가.


 1983년 대한민국 온 전체를 들끓게 만들었던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6.25때 헤어져서 지금까지 가족들 소식을 모르는 ‘남한내 이산가족’을 찾아주는게 주 목적이었다. 이 방송을 통해 1만여 가족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6.25때 헤어진 부모,형제와 30여년만에 소식이 닿는 기쁨을 누리긴 했지만, 이 프로 또한 한편으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다소 씁쓸한 생각이 들게하지 않을수 없는 프로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열악했고, 그 외 전쟁이후 6,70년대 복잡했던 정치상황등. 여러 가지 이유가 많았기로 고속버스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대여섯시간이면 오갈수 있는 작은 나라에서 30년동안이나 헤어진 가족을 찾지 못했다는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정부당국은 물론 이산가족 개개인도 무성의했다는 비판만은 피하기 힘들것 같다.


 하지만 ‘남한내 이산가족’은 그렇게 공영방송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으로나마 뒤늦게 만나게 해줄수 있었지만, 그 뒤에도 남은 숙제는 역시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길이었다. 통일이 되기전까지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 ‘이산가족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저희(KBS)는 가능한한 마지막 한분까지 모든 이산가족을 다 찾아드릴때까지 최대한의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당시 유철종,이지연 아나운서가 클로징 멘트때마다 늘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6.25가 있은지도 어느덧 60년 세월.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지기 전 자신이 살던 고향이나 부모형제의 기억이나 있을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 다들 칠순을 넘은 고령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다. 정말이지 남북의 상황이 앞으로도 큰 변동이 없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한 5,6년 정도만 더 지나도 ‘남북 이산가족’을 찾는다는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정말이지 이제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 한 2020년대 정도로만 접어들면 이제 6.25때 헤어진 이산가족을 찾아줘야할 연령대의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극소수만 남아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보는 중이다.


 허나 6.25때 헤어진 실향민과 이산가족은 점차 고령이 되어가더라도 ‘탈북자’ 문제는 아직까지도 진행중인 현재진행형이며 실제상황이다. 북한의 식량난이나 엄혹한 정치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하여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언제까지 ‘이만갑’ 같은 프로를 통해 계속해서 들어오는 탈북자들로부터 북한의 저 기가막힌 실상을 듣고만 있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숙제가 남는다.


 ‘이만갑’은 근본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선 안 되는 프로다. 설사 통일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북한에 정치적 변화가 있어 조금이라도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간에 자유왕래나 하다못해 휴대폰,인터넷등을 통한 연락이라도 가능해져 서로간의 소식과 동향을 자유롭게 주고받을수 있는 그런 시절이 오기만 한다면 더 이상 지속해야할 이유가 없는 프로다. 그때가 되면 ‘탈북자’라기 보다는 돈을 벌거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남한으로 이주해오는 북한주민이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그때는 굳이 ‘탈북자’란 개념을 쓸 이유가 없을것이다. - 마찬가지로 북한에 경제,산업,문화방면등의 진출을 위해 북으로 갈 남한 사람들도 많아질것이고.


 결국 이 모든 것이 분단의 비극이다. 이산가족도, 실향민도, 탈북자 문제도 기왕 말 나온김에 굳이 따지자면 역대 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을 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이유 조차도 결국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이 정치적 명분이 아니었던가. 그런식으로 따지고보면 정말 분단이라는 놈이 낳은 죄악이 너무나 많은것 같다.


 혹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련지 모르겠지만 1989-90년경 북한의 동구권 유학생들이 줄지어 귀순해 올때, 그때 그 10여명에 달했던 유학생 출신 귀순자중 러시아 여인과의 사랑을 북한당국이 허락해주지 않아 사랑하는 애인과 그 애인과의 사이에 낳은 딸과 함께 귀순해 온 ‘김지일’이란 청년이 있다.


 그 무렵 KBS에서 러시아 여인과의 사랑 끝에 귀순해온 김지일군의 사연을 듣는다며 김동건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대담프로를 한번 마련한적이 있었다. 그때 김동건 아나운서가 김지일군이 러시아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보여주며 이와같은 클로징 멘트로 방송을 마무리했던것을 기억하고 있다. “김지일군의 딸이 이 다음에 커서 성인이 되었을때쯤엔 더 이상 ‘이와같은 비극’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헌데 그 일도 어느덧 20여년전의 일이니 아마 지금쯤 김지일군의 딸도 20대 중반 정도의 성인이 되어있을것이며, 유감스럽게도 ‘이와같은 비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만갑 100회 특집에는 이 프로 고정멤버이면서 2천년대 중반 베트남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유현주씨의 일곱 살난 아들, 그리고 이만갑이 진행되던 도중 결혼과 임신,출산의 과정을 거친 윤아영씨의 갓 태어난 아들 사진이 잠시 소개되기도 했다.


 정말이지 유현주씨의 아들, 윤아영씨의 아들이 이 다음에 커서 성인이 되었을 무렵엔 더 이상 ‘이와같은 비극’이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는 정말 더 이상 탈북자도 없고, 북한체제에도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 남과북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며 경제교류, 문화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그 정도 까지의 변화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설사 통일까지는 좀 오래 걸리더라도. 그렇게 되어 ‘이만갑’ 같은 주제의 프로를 더 이상 방송해야할 이유가 없는 그런 시대가 하루빨리 좀 다가왔으면 좋겠다.






덧글

  • ue1308 2013/12/06 22:35 # 삭제 답글

    좋은글이네요.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를 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통일 좋지요. 그런데 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만큼 부자나라는 아닙니다. 그저 중산층에 속할지는 몰라도... 통일이된다하더라도 북쪽의 배고픈 난민들을 먹여살리랴. 정신나간 김부자가 다른나라에서 꿰간 천문학적 돈 갚으랴... 과연 통일후에도 우리가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요? 어쩌면 바로 지금의 북한의 모습이 우리의 일상이 될 수도 있을거 같네요...
  • 훼드라 2013/12/07 07:53 #

    동의합니다. 요즘 일부 강경보수 성향 젊은 인사들중에 지금 당장 흡수통일 밀어붙이면
    청년실업 문제도 해소되고 경제활성화도 되고 마치 모든것이 만사형통일것처럼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합니다.

    또 어떤이는 북한의 경제규모래봐야 우리나라 호남이나 영남의 1개군 정도 수준인데
    무슨 통일비용을 걱정하냐며 제법 논리적인 주장을 하기도 하던데...역시 동의하기
    힘듭니다. 단순히 (경제규모로만 따져서) 경북이나 전남의 1개군 정도의 규모가 편입
    되는 그런 수준으로 인식할 문제는 분명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실리적으로 봐도 어차피 통일은 장기적으로 시행해야하는 과제라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사실 말이 반도지 북한때문에 섬이나 마찬가지인 처지잖아요. 하다못해
    중국이나 몽골 정도는 기차타고 오가는 그런 정도는 되어야지요.

    또 대외적 이미지로 봐도 그렇고요. 도대체 김연아보다 김정일이 더 유명해서야 어디
    우리가 외국 나가서 체면이 제대로 서기나 합니까...적어도 이젠 좀...인터넷 어느어느
    사이트에 가보니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일로 되어있더라. 이래서 부랴부랴 시정
    요구하는...이런일들은 좀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의 과정은 남북이 경제,문화 교류를 활발하게 해서...상호간의 이질감이 거의
    사라지고 동질감이 생길때...그때쯤가서 정치적 통합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
    다. 그리고 적어도 남북간 경제,문화교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려면...하다못해 북한
    최고 지도자가 지금보다는 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인사로 교체되는게 바람직하다
    고 봅니다.

    한가지만 더 덧붙이자면...요즘 종편에 자주 출연하는 (이만갑 말구요) 고위층 출신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북한이 진짜...붕괴직전까지 간 고비가 90년대 중
    ,후반에서 2천년대 초,중반 사이에 최소한 3-4차례 이상은 있었던것은 확실한듯 합
    니다. 한 5퍼센트 정도 과장해서 말하면...정말 기름 한방울이 없어서 탱크한대 제대
    로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의 위기까지 갔던적이 3-4회 정도는 있었나보더군요.

    그래서..." 왜 그때 흡수통일을 과감히 밀어붙이지 못했느냐 ? " 아쉬워하는 고위층
    출신 탈북자들이 꽤 됩니다. 그리고 그런점을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북한에서 중산
    층 이상 정도의 삶을 살았던 탈북자들이...고사직전까지 간 북한을 기사회생 시켜준
    햇볕정책을 추진한 정권들에 대해 원망하는 정서가 생긴것은 분명 이해할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글이 좀 길고 장황해져서 요약을 하자면 (1) 지금 당장의 묻지마 흡수통일 주장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2) 남북간 경제,문화교류가 활발하기 진행된뒤 남북한 주민들
    간의 동질감이 어느정도 형성된 뒤에 '정치적 통합'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이상입니다.
  • 슬픈 북한 2014/04/19 21:50 # 삭제 답글

    더이상 이만갑에서 슬픈일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 멋진만남 2014/09/15 10:42 # 삭제 답글

    탈북미녀들만 보면....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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