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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뉴스 기고문 - 세조는 고서(古書)를 불사르지 않았다 정치,시사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중 소위 세조가 옛 사서를 불살랐다는 즉 분서(焚書)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보통 유사역사학이나 유사종교와 관련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떠도는 이와같은 소문은 결국 유사역사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퍼트리는 루머로 보인다. 그러잖아도 단종을 몰아내고 사육신등 충신들을 무참히 죽였다고 비난을 받는 세조로선 21세기에 와서 졸지에 없는죄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형국이다. 헌데 세조는 정말 분서를 단행했을까 ? 이 루머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엔 세조 3년 5월 26일, 예종 1년 9월 18일, 성종 즉위년 12월 9일 세차례에 걸처 민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책을 거두라는 ‘수거령’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일단 기록에선 민가에 있는 책을 수거(收去)했다는 말만 있을뿐, 어디에도 분서(焚書)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수거의 목적이 결국 분서 아니겠느냐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세조가 분서를 했을거란 추정을 하기엔 그 근거가 희박하다.


 우선 근본적으로 조선은 유교와 성리학의 시대다. 그리고 유교의 선비들은 무엇보다 책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그래서 동양권 모든 왕들중 가장 폭군으로 미움을 받는 이가 바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한 진시황 아니던가. 만약 세조가 분서를 실시했다면,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며 벼슬을 버린 사람들은 분명 그와같은 만행을 기록했을것이다. 그러나 일단 사육신이야 병자옥사가 일어나는것이 이보다 1년 앞선 세조2년의 일이니 해당이 안된다 치더라도, 생육신의 경우는 세조가 분서를 한 만행을 분명히 기록하고 비난했어야 되는것 아닌가 ? 하지만 ‘육신전’을 지은 남효온이라던가 생육신중 그 누구도 세조가 분서를 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세조가 책을 불사른 사실이 없음을 입증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다.


 오히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엔 세조의 찬술(撰述)활동 업적을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분서는 커녕 오히려 책을 만드는 찬술활동에 힘쓴 임금이라 기록하고 있는것이다. 연려실기술에 찬술활동 업적이 별도로 기록되어있는 임금은 세종대왕과 그 아들 세조가 전부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세조는 신숙주등에게 명하여 ‘동국보감’, ‘국조보감’등을 편찬했고, 그 외 ‘통문관지(通文館誌)’,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등을 지었다.


 그리고 연려실기술은 결코 세조에게 우호적인 사서가 아니다. ‘단종조 기사본말’에는 사육신의 옥사라던가 단종이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이야기들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사육신중 성삼문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세조가 편전(便殿)에 나와 좌정하니, 성삼문이 승지로 입시하였다. 무사로 하여금 끌어 내려, 김질이 고한 말로 심문하매, 성삼문이 한참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가 아뢰기를, “김질과 대질하기를 원한다.” 하였다. (중략) 세조가 말하기를, “너희들이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는가.” 하니, 성삼문은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옛 임금을 복위하려 함이라, 천하에 누가 자기 임금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는가. 어찌 이를 모반이라 말하는가. 나의 마음은 나랏 사람이 다 안다. (중략) 세조가 말하되, “네가 신이라 일컫지 않고 나를 나으리라고 하는데, 네가 내 녹을 먹지 않았느냐. 녹을 먹고 배반하는 것은 반역이다. 겉으로는 상왕을 복위시킨다 하지마는, 실상은 네가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성삼문이 말하기를, “상왕이 계신데, 나으리가 어떻게 나를 신하로 삼을 수 있는가. 내가 또 나으리의 녹을 먹지 않았으니, 만일 믿지 못하거든 나의 집을 적몰(籍沒)하여 따져 보라. 나으리의 말은 모두 허망하여 취할 것이 없다.” 하였다. 세조가 극도로 노하여 무사로 하여금 쇠를 달구어 그 다리를 뚫고 그 팔을 끊으나,얼굴빛이 변하지 않고 다른 책에는 쇳조각을 달구어 배꼽에 놓으매, 기름이 지글지글 끓어 탔다 하였다. 쇠가 식기를 기다려 말하기를, “다시 달구어 오게 하라. 나으리의 형벌이 참 독하다.” 하였다. (이하생략) ’


 단종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지다고 발을 굴렀다. 도사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으나, 도사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通引) 하나가 항상 노산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 그 때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통인이 미처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고을 동강(東江)에 몸을 던져 죽어서 둥둥 뜬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고, 이날에 뇌우(雷雨)가 크게 일어나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고 맹렬한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검은 안개가 공중에 가득 깔려 밤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


 (중략)


 사기에 말하기를, “노산이 영월에서 금성군의 실패를 듣고 자진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여우나 쥐 같은 놈들의 간악하고 아첨하는 붓장난이다. 후일에 실록을 편수한 자들이 모두 당시에 세조를 종용(慫慂)하던 자들이다. 《계유 실록》이라는 것에 대개 이러한 내용이 많다. (중략) 슬프다, 옛부터 충신ㆍ의사가 반드시 대가 세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당시에 임금을 팔고 이익을 꾀하던 무리들은 반드시 자기 임금을 혹심한 화란에 몰아넣고야 마음에 쾌감을 느꼈으니 이런 자들을 엄흥도에 비하여 보면 어떠한가.


 (중략)


 ○ 노산이 해를 입자, 명하여 강물에 던졌는데, 옥체가 둥둥 떠서 빙빙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가냘프고 고운 열 손가락이 수면에 떠 있었다. 아전의 이름은 잊었으나, 그 아전이 집에 노모를 위하여 만들어 두었던 칠한 관이 있어서 가만히 옥체를 거두어 염하여 장사지냈는데 얼마 안 되어 소릉(昭陵 단종의 어머니 능)의 변이 있어 다시 파서 물에 던지라고 명령하였다. 아전이 차마 파지 못하고 파는 척 하고 도로 묻었다.


○ 노산이 영월에서 죽으매, 관과 염습을 갖추지 못하고 거적으로 초빈을 하였다. 하루는 젊은 중이 와서 슬피 울고 스스로 말하기를, “이름을 통하고 구휼을 받은 정분이 있다.” 하며, 며칠을 묵다가 하루저녁에 시체를 지고 도망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산골에서 불태웠다.”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강에 던졌다.” 하여, 지금의 무덤은 빈 탕이요 가묘라 하니,두 말 중에 어떤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점필재(佔畢齋)의 글로 본다면, 강에 던졌다는 말이 틀림없다. 그러면, 중은 호승(胡僧) 양련(楊璉)의 무리로서, 간신들의 지휘를 받은 자인가. 영원히 한이 그치랴. 혼이 지금까지도 떠돌아다닐 것이니 참으로 슬프다. (이하생략) ’


 본의아니게 인용한 내용이 너무 길어지고 말았는데, 어쨌든 연려실기술이 사육신의 옥사와 단종의 죽음에 대해 세세하게 적으면서 세조를 비난하고 있음에도, 그와는 별도로 ‘세조조 기사본말’에는 세조의 찬술활동 업적을 별도로 기록하고 있는것은 분명 음미해볼만한 일이다. 이 정도의 근거만 갖고도 세조가 분서(焚書)를 행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입증된다 할수 있겠다.


 그렇다면 실제 세조가 수거해간 책들은 어떤 책일까 ? 일단 세조때의 수거령엔 책 제목만 막연히 나열되어있어 대체 어떤 내용의 책들을 수거해간것인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예종과 성종조에 있었던 똑같은 수거령에선 ‘천문.지리,음양’과 관련된 서책이란 표현이 보여 예언이나 비결과 같은 도참사상과 관련된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눈길이 가는것은 예종조때 수거령엔 ‘책을 숨긴자는 참형에 처한다’고 할 정도로 꽤나 강경한 모습이 보이나, 오히려 성종 즉위년의 수거령엔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收納)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收納)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며 꽤 누그러진 모습을 보인다. 어떤 목적으로 수거를 했든지간에 그 책들이 완전히 멸살시키거나 흔적을 없애버려야 할 정도로 절박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는 그런 비서(秘書)는 아니었을것이란 점을 입증할수 있는 근거다. 아마 예종때에 ‘참형에 처한다’고 까지 한 것은 세조때의 수거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기에 그와같은 강경한 표현까지 나왔던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대관절 세조,예종,성종조 세차례에 걸쳐 수거한 책들의 정확한 진상은 무엇일까. 예종,성종조의 ‘천문,지리,음양’ 관련서적이란 표현 외엔 마땅히 그 책 내용을 파악할만한 방법이나 근거가 없어 막연하긴 하지만 일단 책 제목부터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첫째로 눈에 띄는것이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다. 언뜻 역사책이 아닐까 착각하기 쉽지만 한자가 ‘비밀할 비(秘)’에 ‘말 사(詞)’자다. 즉, ‘옛 조선의 비밀스러운 말(또는 노래 ?)’이란 뜻인데 역사책이라기 보단 어떤 동요나 참요가 전해져내려오는 것들이 적힌 책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눈길 가는것은 ‘안함노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 이걸 갖고 어떤이들이 바로 ‘환단고기’중 ‘삼성기(三聖記)를 쓴 안함로의 책을 말하는 것이라 주장하는데, 미안하지만 안함로가 아니라 삼국유사에 나오는 ‘안함’이란 고승을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책에도 안함,로원,중동이란 이름의 고승이 등장하는것을 봐서 ‘안함 노원 중동 삼성기’는 ‘안함과 노원과 중동이란 세명의 성스러운 고승’에 관한 기록으로 봐야할 것이다.


 또 다른 눈에띄는 책으로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가 있는데, 표훈 역시 신라시대 승려 이름이다. 또 하나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기록(三人記錄)’이란 책이 있는데 이중 문태산과 설업은 어떤사람인지 알아내기 어려우나, 왕거인의 경우 신라시대 문인이다. 문태산,왕거인,설업이란 세 사람에 대한 단순한 ‘기록’일 뿐이다.


 헌데 이런 사람들에 관한 책들을 왜 수거해갔을까 ? 삼국유사를 봐도 알수있듯이 사실 소위 고승(高僧)이나 도승(道僧)들의 일화는 허무맹랑하고 신비주의적인 이야기가 많다. 조선이 억불숭유정책을 편 나라임을 감안한다면 고승이나 도승 또는 옛 기인(奇人)들에 관한 책은 자칫 민심을 현혹할 우려가 있다며 경계했을 가능성이 많다.


 또 다른 책들을 보면 ‘통천록(通天錄)’이란 책이 있는데 ‘하늘과 통하는 기록’이란 뜻이다. 지화록(地華錄), ‘땅을 빛나게 하는 기록’이란 뜻이다. 아무래도 예언서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책이다. ‘도선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역시 예언이나 비결서 느낌이 난다.


 그 외의 책들도 살펴보면 대개 불가에서 전해오는 고승,도승의 신비로운 이야기나 혹은 도인,기인의 이야기 또는 예언이나 비결, 참요 같은 성격의 책들이었을 느낌이 강하게 난다. 특히 이런 책들은 보통 현 왕조를 비난하거나 또는 새로운 왕조가 일어날것이라는식의 예언일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였다면 그런류의 책들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다. 결국 세조 입장에선 이런 책들이 혹시 자신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소재, 또는 자신을 미워하는 무리들이 민심을 현혹하고 교란시키는데 이용하지나 않을까 그런 우려에서 수거해갔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은 대체로 유교와 성리학으로 나라기강을 바로잡으려는 나라였으며, 따라서 불교는 상대적으로 핍박받았으며 그 외 도가나 무속신앙도 천시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었다. 그와같은 사회분위기에서 민심을 현혹케하는 예언이나 비결서, 또는 고승,기인들의 일화집 이런책들을 민가에서 돌려보는것은 아무래도 금기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세조,예종,성종이라고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것이며, 무엇보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로선 그와같은 예언이나 비결, 고승들의 일화같은 책들이 행여 자신을 공격하거나 헐뜯는 소재로 이용되진 않을까 신경쓰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다.


 세조는 고서(古書)를 불사른 사실이 없다. 더욱이 역사서를 불태우지는 더더욱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엔 다만 세조,예종,성종조의 ‘수거령’만 기록되어 있을뿐이고, 해당되는 책들은 대개 예언이나 비결 또는 도참이나 무속신앙 혹은 고승,기인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이 억불숭유 정책을 펴며 성리학을 바탕으로 나라기강을 바로 잡으려 한 왕조임을 감안한다면, 이런 책들이 민심을 교란하지 않게하기 위해 수거해갔을 가능성은 충분히 추정해볼수 있는 일이다.


 이런식으로 비유해본다면 어떨까 ? 세조,예종,성종조에 수거령이 내린 책들 요즘으로 치면 ‘개벽, 이것이 진실이다’, ‘OO 스님의 충격 대예언’, ‘조상공양으로 전생업보 풀어드립니다’ 이런식의 책자들은 아니었을지. 요즘이야 민주주의 사회니 국가권력이 그런류의 책들을 강제적으로 통제할수는 없으나, 조선시대에는 그런식으로라도 민심을 교란하고 현혹시키는 책이 유포되는것을 막았었다고 이해할수도 있겠다.


 하긴 요즘도 소위 유사역사학 또는 유사종교인들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나 갖가지 궤변으로 민심을 교란,현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것을 보면 조선시대에 그와같은 비결서들이 돌아다니던 사회분위기와 그것을 통제하려한 국가권력의 고충도 어느정도 이해할듯 싶다. 여하튼 세조가 ‘분서(焚書)’를 해서 우리나라에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수많은 역사서들이 사라졌다던가 하는식의 이야기는 분명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며, 민심을 교란시키는 선동수단일 따름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유사역사학과 유사종교인들이 퍼트리고 있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인한 폐단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주지시키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덧글

  • 지나가던과객 2011/10/09 06:27 # 삭제 답글

    세조가 책 태워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정감록 같은 책이라면 모를까.
  • 훼드라 2011/10/09 15:01 #

    그러게요 ^^
  • 치우 2019/06/05 14:52 # 삭제 답글

    이런 논리는 사람이 좋아보이니 나쁜짓은 안할거란 막연한 추측이군요. 무슨 새로운 사료나 나온줄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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