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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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 300년후 후손들은 어떻게볼까 ? 정치,시사


 오늘날 우리가 조선시대 양반,선비들의 당파싸움이 얼마나 한심한것이었는지를 비난할 때 종종 단골소재로 도마위에 올리곤 하는것이 이른바 “예송(禮訟)논쟁”이다.  임금이 죽었을때 그 부모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예송논쟁. 그 시절의 속사정을 모르는채 생각해보면 도대체 오죽 할짓이 없으면 기껏 상복을 몇 년 입네마네 하는 문제를 갖고 죽기살기로 싸웠겠는가 생각되지만, 조금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조선 인조-효종-현종조의 복잡하고 민감한 정치적 사정을 알 수 있게된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17대 임금 효종이 죽고, 18대 현종이 즉위하게 된 1659년. 한편 효종에겐 아버지 인조가 나이 44세에 맞아들인 15세의 계비(繼妃) 장렬왕후(또는 자의대비)가 모후의 위치에 있었다.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보다는 열두살, 차남 효종보다도 다섯 살이 어렸으나 조선 궁중법도상 마땅히 어머니로 모셔야 할 위치. 그런데 그 나이어린 계모보다 의붓아들인 효종이 먼저 세상을 떠난것이다.


 그리고 그 효종의 상복을 장렬왕후가 몇 년을 입어야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것이 예송논쟁이다.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면 장남이 죽었을때는 3년복, 차자(次子) 또는 서자(庶子)가 죽었을시엔 기년복(朞年服) 즉, 1년복을 입도록 되어있다. 헌데 문제는 효종이 인조의 차자(次子)로서 왕실의 종통(宗統)을 이어간 상황. 헌데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9년만에 돌아왔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나중의 효종). 이 둘중 청나라를 통해 서양 선진문물을 접하고 이에 잔뜩 빠져있던 소현세자와 그 부인인 강빈(姜嬪)이 연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왕위는 차남 봉림대군이 이어받아 조선 17대 임금 효종이 되었다. 헌데 이제와서 새삼 효종이 적통(嫡統)이 아니니 3년복이 아닌 기년복을 입어야한다는 주장을 하면 어찌되는가 ? 바로 효종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결국 그 아들 현종까지도 부정한다는 소리 아닌가. 따라서 새로 즉위한 임금은 물론 앞서 세상을 떠난 선왕(先王)의 정통성까지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그 시절 왕실의 정통성 인정여부와 직접 관련이 있는 엄청난 논쟁으로 번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지루한 예송논쟁은 15년후 효종비인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났을때도 마찬가지로 반복되게 된다. (주자가례에 의하면 큰며느리가 죽었을때는 1년복, 그 외엔  9개월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


 요즘의 윤리기준이나 가치관으로 볼땐 도대체가 임금이 돌아가셨을때 그 어머니가 상복을 입네마네 하는 문제가 뭐 그리 대단한거라고 죽자사자 싸웠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 시절엔 왕실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는 엄청난 논란이 될수 있었음을 350여년이 지난후의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할수 있겠는가. 헌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또한 몇백년후 후손들에게 어찌 비칠까 좀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있다.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 불거진 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할 것인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새로운 논란이 되고있다. 이 문제로 교육부 역사교과서 위원 8명이 사퇴했을 정도로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이다. 논란은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 교육과정’ 한국사 부분에서 역사교과서 위원들이 제시한 ‘민주주의’를 교과부가 일방적으로 ‘자유 민주주의’로 바꾼데서 시작된 것이다.


 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글자 2자 차이지만, 이와같은 논란이 벌어지는 속사정을 살펴보면 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문제 그리고 현대사에 대한 평가등이 모두 한데 뭉뚱그려져있는 엄청난 논란으로 번질수도 있는 폭탄과도 같은 사안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보수,진보 양 진영의 주장만 일단 간단히 요약하면, ‘민주주의’가 되면 자칫 북한식 ‘인민 민주주의’도‘도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되니 안된다는것이 보수진영 입장이고, ’자유 민주주의‘는 반공과 독재를 옹호하는 논리가 되며, 또한 우리나라 헌법에 ’경제 민주화‘도 명시되어 있으니 ’사회 민주주의‘도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에 포함되니 ’자유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 맞다는것이 진보측 입장이다. 결국 글자 두자 차이지만 우리나라 보수,진보 양 진영이 바라보는 근,현대사에 대한 평가 및 대한민국의 정통성,정체성 문제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 엄청난 논쟁,논란거리가 되는것이다.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아마 이 부분에 관한 당위성을 역설할수 있는 논객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낙동강 모래알이나 다도해 섬숫자만큼 많을것이다. 허나 한번 생각해보자. 350년전 조선 현종조의 예송논쟁은 오늘날 우리의 윤리기준과 가치관으로 보았을땐 도대체가 논쟁할 이유도 가치도 없는 하나 쓸데없는 논쟁이지만, 그 시절엔 바로 왕실의 정통성을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결국 생사를 건 논쟁이 될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단지 글자 2자 차이지만 결국 이 속에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대한민국의 정통성,정체성 문제 이를 바라보는 보수,진보 양 진영의 시각차이가 모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것 아닌가. 따라서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하는 논쟁도 일단 불붙기 시작하면 정말 보수,진보 양 진영의 생사와 명운이 걸린 목숨을 건 논란이 될수도 있다.


 헌데 지금의 우리야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하는 글자 2자 차이를 놓고 싸우지만 지금부터 한 300년쯤 지난뒤의 우리 후손들은 ‘글자2자’차이를 갖고 싸우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또 얼마나 한심하게 보겠는가 하는 문제다.


 350년전 조선 당파 전체를 들끓게 만들었던 예송논쟁은 결국 한 당파가 죽고사는데서 마무리될수 있었다. 오늘날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하는 논란도 일단 보수,진보 양 진영에 불씨로 던져지고나면 과연 어떻게 마무리될지 도저히 장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겐 생사를 걸고 벌이는 논쟁이 될 지언정 지금부터 300년 아니 한 백년만 지나도 이와같은 사소한 문제에 목숨을 건 우리를 이해할수 있는 후손이 있기나 할까 하는 문제다. 솔직히 지금부터 한세기만 지나도 민주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는 문제는 도무지 논쟁을 벌일 이유도 가치도 없는 사소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역사는 돌고돈다는 말을 증명해주듯 350년전 예송논쟁의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 시절을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또한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소위 보수,진보 양 진영의 지도자급 인사 또는 여야 각 정당,정파의 지도자들에게 꼭 좀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 당신들이야 어차피 각자 자기 진영의 정치논리,정책논리,이념논리를 설파하는데는 대가(大家)급일테니, 감히 필부(匹夫)에 불과한이가 당신들과 그런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 봐주었으면 한다. 당신네들도 언제 어느 공사석(公私席)에선가는 분명히 씹었을터인 조선시대의 당파싸움. 하지만 당신들도 이미 언제부터인가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것 아닌지 그런 생각 해본적 없는가 ? 자유민주주의가 맞든 민주주의가 맞든 잘난 당신들의 주장의 논리와 당위성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 ‘글자2개’ 차이갖고 싸우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지금부터 백년,2백년,3백년이 지난뒤 그때 후손들에겐 어찌 평가받을 것이며 어떤 비난을 받을건인지 한번쯤 생각도 해봐달라는 것이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350년전 예송논쟁을 갖고 ‘오죽 할짓이 없었으면 고작 상복 몇 년 입네마네 하는 문제로 목숨걸고 싸우나 ?’ 비난하는것과 하나 다를것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도대체가 한 100년만 지나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그 무슨 정신이나 가치관,정서 이런것을 이해해줄 후손이 얼마나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 오늘은 우리가 ‘글자2자’ 차이갖고 목숨걸고 싸우지만, 한 백년만 지나도 우리 손자,증손자대에 가선 어떤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게될것인지. 그걸 생각해보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 상황을 상상하는것 자체가 끔찍한 악몽이 되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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