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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밑의 욕망'과 부족한 연기력 X-FILE



 ‘느릅나무 밑의 욕망’이란 연극이 있다. 이 작품을 최근 대경대 연영과 학생들이 공연한다고 해서 가서 보게 되었다. (* 얘가 빈털터리 백수라면서 무슨 국립극단 창극 보고온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대구까지 내려가서 연영과 학생들 연극을 ??? 하며 의혹을 제기할...분이 있을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건 넘어가자 ^^;;;;)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미국의 대표적인 희곡작가 유진오닐의 작품으로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칠순의 농장주인 캐버트는 30대의 젊은 여성 애비와 재혼하게 된다. 한편 캐버트에겐 이미 장성한 세명의 아들이 있는데 애비는 그만 그중 셋째아들인 에번과 정분이 난다. 깊은 관계에 빠진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애비는 하는수없이 처음엔 그 아이를 캐버트의 아이인 것으로 하려 하지만 애비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떠는 에번을 보고는 그 에번에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답시고 아이를 살해하고 마는 이야기다.


 ‘아니 이게 웬 막장드라마 ?’. 혹 여태껏 이런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다가 알게된 사람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겠지만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그 초연 당시부터 미국사회에 적잖은 충격과 파장을 던져주었던 제법 유명한 작품에 속하는 이야기다. 실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보니 연기학원이나 연영과에서 이 희곡을 연기교재로 삼는곳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인터넷에서 ‘느릅나무 밑의 욕망’과 관련한 검색을 하다보면 이 작품이 연기과제이거나 숙제라서 그에관한 분석글등을 올린 연영과 학생이나 연기학원 학생의 개인 블로그 글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심지어 ‘느릅나무 밑의 욕망’의 한 장면으로 연기 테스트를 한 어느 연기학원의 학원생들 연기 동영상까지도 찾아볼수 있다.


 다만 작품 내용의 충격성 때문일까. 대개 10대 중,후반 정도나 20대 초,중반 정도로 추정되는 연영과나 연기학원생들의 해당작품 과제용 글에는 그야말로 ‘이게 웬 막장드라마’ 하는식의 충격을 받은듯한 그런 수준의 분석글을 상당수 접하게 된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란 개념이 생겨난게 대략 2천년대 중,후반 무렵부터 같은데 바로 그러한 사회분위기속에서 자라난 10대-20대들이라서인지 ‘느릅나무 밑의 욕망’이란 작품이 그저그런 막장드라마중 하나 그 정도의 느낌으로밖에 와닿지 않은 듯 하다. 사실 뭐 틀린 이야긴 아니다만 -


 심지어 인터넷 백과사전중 하나인 나무위키의 편집진 조차도 이 희곡을 그저그런 막장극중 하나로밖에 인식하지 못했는지 약간 비아냥 섞인 문장으로 작품에 대한 소개를 매우 짧게 해놓았는데, 만약 ‘유진오닐’이 안다면 제법 화를 낼만한 그런 처사다. 실제 유진오닐은 한때 미국에서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미국엔 유진오닐이 있다’는 평가까지 받았을 정도로 대표적인 희곡작가로 1936년 미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퓰리처상 역시 세차례나 수상(1920.22.28)한 빛나는 전력을 갖고있는 작가다. 그리고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밤으로의 긴 여로’와 함께 유진오닐의 대표작 격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994년 ‘공연예술서 전문출판사 예니’가 발행한 희곡 ‘느릅나무 밑의 욕망’ 작품해설에서는 이 작품의 주제를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물론 에번가 애비와의 결합은 처음부터 사랑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성적 충동과 재산에 대한 욕심,복수심 등 각자의 이기적 동기에서 시작된다. 그

  러나 그 성욕과 소유욕과 복수심은 이 무지하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 나름

  으로는 절실하고 안타까운 문제들이었다. 그들은 갈등하고 고통스러워 했으며

  그 갈등과 고통의 과정에서 이들의 동물적 욕정은 사랑 – 자신보다 상대편을 더

  욱 아끼는 사랑 – 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 연극은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인격의

  한 인간이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


 30대의 애비가 칠순의 캐버트를 선택했을진대 정상적이거나 건전한 사고로 선택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것은 극중 애비의 대사에서도 충분히 나타난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어떤 물욕(物慾)을 애비는 바라고 있었을 것이며, 하지만 그런 애비는 언제부터인가 젊은 에번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간다는...솔직히 공감하긴 쉽지 않지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애비의 자아를 이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이 연극 2막3장 에번과 애비의 키스씬 지문은 이 장면을 이와같이 주문하고 있다. ‘육욕과 모성애의 끔찍한 혼합(위 번역본 참조)’이라고. 늙은 아버지의 젊은 후처와 장성한 전처소생 아들간의 관계라니까 두 남녀 주인공을 비슷한 젊은 나이로 언뜻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이 연극에서 원래 설정된 나이는 애비가 30대 중반이고 에번은 20대 정도. 실제 애비가 에번보다 열 살정도 연상이다. 아버지의 후처고 계모고 이런문제를 떠나서 애비가 에번에게 큰누나뻘은 되는 연상의 여인인 셈이다. - 물론 이 작품에서 애비의 나이는 연출자가 어떤 눈으로 이 작품을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보다 좀 더 많은 나이로도 훨씬 더 어린나이로도 재설정이 가능하다. 10대부터 어쩌면 한 40대 초반까지 다양한 재창조가 가능한 것이 극중 애비의 나이이기도 하다.


 그 애비가 에번을 유혹하는 장면은 어느정도 능숙한 여자가 아직 서툰 남자를 다루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한편 에번은 친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극 초반부에 에번은 ‘아버지의 모진 학대외 괴롭힘’이 자기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만들었다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하는 감정을 어느정도 나타내기도 한다. 한편 에번에게는 시미언과 피터라는 두 형이 더 있는데 사실 이 두 형도 에번에겐 이복형들이다. 시미언과 피터가 캐버트 첫 번째 부인의 아들, 에번이 두 번째 부인의 아들이고 애비는 케버트의 세 번째 부인인 셈이다. 극 초반 시미언과 피터는 에번의 엄마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니 엄마는 우리에게 잘 했지. 좋은 새엄마는 흔치 않다’고. 그리고 그 시미언과 피터는 아버지 캐버트가 또 재혼을 해서 훨씬 더 어린 아내를 맞이헀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해한뒤 ‘캘리포니아로 금이나 찾으러 떠나자’며 퇴장한뒤 극중에선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에번의 자아도 그러고보면 적잖이 황폐되어 있는 셈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어머니의 돌아가신 원인을 아버지에게 돌리는 원망하는 마음. 이복형들 밑에서 함께 자란 어린시절 등등...그 에번에게 애비가 이렇게 말하며 유혹한다. ‘내가 엄마처럼 잘 해줄게’......


 흔히 남자들의 경우엔 자기 어머니 같은 여자, 여자들의 경우엔 자기 아버지 같은 남자를 이상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마음에 드는 이성의 성격이나 스타일 이런 것을 말할 때 하는 이야기고, 애비와 에번의 경우로 돌아가면 전혀 다른 성질의 이야기가 된다. 일단 두 사람은 아버지의 젊은 후처와 전처소생 아들의 ‘부적절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번의 경우엔 자신의 모정결핍이 그를 안으려는 애비 앞에서 은연중에 드러나고 만다. 애비의 경우 솔직히 에번을 유혹하는 그 진의가 좀 불분명하다. 정말 나이많은 남편대신 젊은 에번의 육체에 끌린것인지 아니면 농장을 차지하기 위한 치밀한 계략인것인지. 하지만 에번을 유혹하면서 애비는 이미 모정과 욕정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보통 ‘친구이상 연인이하’나 ‘플라토닉과 에로틱’ 사이 같은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친구이상 연인이하의 감정이나 플라토닉과 에로틱 사이의 그 무엇은 한두마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의외로 넓고 복잡한 세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에번과 애비는 흔들리고 있었다. 유진오닐의 지문처럼 ‘모정과 육욕의 끔찍한 결합’이란 표현이 딱 절묘한, 그리고 그 ‘끔찍한 결합’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며 돌아다니다 보면 ‘느릅나무 밑의 욕망’을 갖고 분석글이나 과제물을 올린 연영과 혹은 연기학원 학생의 글을 꽤나 접하게 되고, 심지어 이 연극의 한 장면으로 연기학원 학생들의 연기테스트를 한 그런 영상까지 찾아볼수 있는데, 하지만 이 작품이 미성년자들에게 적절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여물지 않은 사춘기 청소년들이 연기교재로 쓸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 않나 그 우려가 적잖이 있기도 하다.


 ‘느릅나무밑의 욕망’은 아무래도 작품의 충격성과 비윤리성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웬만해서 잘 공연을 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한다. 하긴 미국에서 초연 당시에도 심지어 출연한 배우들까지 체포되는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 공연기록을 찾아보면 80년대 중반쯤에 전운-유인촌-손숙 주연의 공연작이 있고 2011년 춘천 국제연극제때 공연기록(극단 성좌)이 있다. 연극영화과 학생들의 학예회같은 아마츄어적 연기로 소화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는 공연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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